[취중토크] ‘문명과 지하공간’ 저자 김재성
‘신곡’을 곱씹으며 단테와 교감하는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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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토크] ‘문명과 지하공간’ 저자 김재성
‘신곡’을 곱씹으며 단테와 교감하는 엔지니어
  • 이준희 기자
  • 승인 2015.02.12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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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지하공간, “그리스 신화부터 미래 지하공간까지 관통”
차기작, “SOC의 공학적 아름다움 대중에 전달할 것”

(엔지니어링데일리) 이준희 기자 = “최근 4대강 사업이나 새만금 간척사업이 정서적 저항을 심하게 받은 것은 어쩌면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인간의 필요가 아닌 자연 자체인 강 또는 인간의 삶과 함께해온 갯벌에 대한 이해가 고려됐다면 어땠을까? 이 책이 지하공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인문과 공학의 통섭을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

지난달 출간된 ‘문명과 지하공간’이 잔잔하던 엔지니어링 세계에 인문학이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어둡고 위험하며 불결한 곳을 치부되던 지하공간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삶의 공간으로 전환되는 모멘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변혁의 선두에선 저자 동일기술공사 김재성 지반터널본부장은 작년 3월까지 1년에 걸쳐 ‘문명과 지하공간’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김재성의 Cilvil Engineering'을 본지에 연재한 바 있다. 본지는 이처럼 본지와도 연이 깊은  작가 김재성을 만나 경기도 안양 선술집에서 취중토크 갖고 ’문명‘ 그리고 ’지하공간‘에 대한 그의 철학을 담아봤다.

▲ '문명과 지하공간'의 저자 김재성

- 오늘 손에 책 한권을 들고 오셨다. 술자리에 오가는 길에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는 것은 일종의 활자중독 같다.
경제서적의 경우는 하루에 2권도 읽지만, 정량적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권을 2~3회 읽는 경우가 많고, 지금 들고 다니는 책은 10회독 이상했다. 최근 단테 신곡을 다시 읽고 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읽었고, 33세에 한 번 더 읽었지만 매번 느낌이 다르다. 특히, 작가가 된 후 신곡을 곱씹어 보니 짧은 문장 속에도 단테의 함축된 의도가 느껴진다.

단테는 신곡에서 그리스 고전 오디세이의 주인공 율리시즈 왕을 만난다. 사실 율리시즈가 트로이전쟁에서 이기고 먼 항해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후 아내 페넬로페를 괴롭히는 무리를 다 없애고 성을 되찾는 것이 고전의 결론이다. 율리시즈는 2,000년만에 단테의 소설에서 부활한 셈이다.

단테가 죽은 이유를 묻자 율리시즈는 “평생 지중해 섬나라를 다 복속시키고 항해를 다닌 사람이 마누라 치마폭에서 죽었을 리가 있냐”며, “선원을 끌어 모아 다시 항해를 떠났고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따라 5개월 동안 내려가다가 거대한 갈색 섬을 만나 침몰해서 죽었다”고 했다. 여기서 지반분야 전문가로서 율리시즈는 지브롤터 해협에서 5개월 동안 남쪽으로 항해하다가 남극을 발견했다고도 추측할 수 있다. 당시 아무도 남극이 있음을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증명된 상태에서 갈색 섬을 보는 순간 배가 침몰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 단테 신곡을 통한 이러한 추론은 인문학적, 철학적 배경지식이 충분히 쌓이지 않고는 불가능한 영역이라 생각된다. 문학의 세계에 발을 내디딘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는가?
YH사건, 부마사태로 시위에 민감했던 유신시절 친구들과 두발자유를 이슈로 대모를 했다. 주동자였던 나는 퇴학을 맞았었지만 다행히 무기정학으로 징계가 낮아졌다. 징계기간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 보조역할을 수행했다. 1시간 청소하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를 했다. 독서의 재미에 징계 후 학교수업보다 독서에 시간을 투자했다. 결국 교내 도서관 책을 모두 읽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이때가 문학에 눈을 뜬 내 인생의 결정적 터닝 포인트였다.

당시는 그 수많은 책이 머리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느꼈었다. 그러나 나중에 필요할 때마다 뇌가 서랍 속 기억을 꺼내 서로 조직화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소포클레스의 비극의 유사점을 몰랐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오이디푸스 왕이 죽고 동생 클레온이 왕이 되는 구조와 이후 선왕의 조카를 괴롭히다가 죽이는 서사적 구조가 햄릿과 유사하다는 점을 알게됐다.

- ‘문명과 지하공간’ 프롤로그에 “인문서로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공학서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가볍다”고 정의한 바 있다. 막상 읽어보니 오히려 인문학과 공학을 넘나들며 인류문명의 근간을 이뤄온 수많은 지하공간 에피소드에 대한 현학적 서술이 돋보였다.
책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유인원에서 분화된 연약한 인류가 맹수의 세계에서 700만년동안 살아남고 빙하기의 멸종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동굴이 있다고 본다. 지하공간은 인류사와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지하공간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지하세계에 살았던 그리스 페르세포네 신화, 이집트 고분에서 발견된 자신의 꼬리를 삼키는 뱀 ‘우로보로스’ 등 인문학 고전에도 내재되어 있다. 또한, 지하공간은 발전을 거듭한 끝에 우리 주변에 콘서트홀, 지하성곽 등 문화공간, 수로, 지하철 등 터널공간, 포도주저장고, 원자핵연구소 등의 기능공간으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이처럼 ‘문명과 지하공간’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지하공간의 인류문명사적 기여를 알리고, 공학자들에게는 과거와 현재의 문명적 통찰을 통해 미래 지하공간을 설계함으로써 인류문명의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놓고자 했다.

-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듣고 싶다. SOC의 ‘미학’을 주제로 차기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최근 한국사회에서 토목·건축이 복지와 상충된다는 아름답지 못한 이미지가 있다. 이런 인식전환이 쉽지는 않을 텐데.
동의한다. 최근 일반 대중들의 콘크리트에 대한 거부 반응이 상상 이상이다. 문학에서 문명도시에 ‘잿빛’이라는 수사를 지나치게 사용한 것도 한 몫 했다고 본다. 20세기 들어 고층빌딩이 우후죽순 건설되며 콘크리트 시대가 시작됐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이는 인장력이 강한 철근콘크리트다. 철근은 없지만 로마 콜로세움도 콘크리트로 건설됐다. 로마시대 유적 판테온 신전도 마찬가지 사례. 콘크리트는 인간과 친숙한 아름다운 건축물을 무수히 많이 만들어내며 문명의 발전에 오랜 기간 영향을 끼쳤다.

교량의 건축학적인 아름다움은 기하학적 미학이나 교량 밑을 흐르는 강이나 조명과 조화미를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공학적 아름다움은 다르다. 동부간선도로를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서울시민이 얼마나 될까? 도시 한가운데 하천위에 있어서 혐오시설이라고 낙인찍을 것이다. 그러나 엔지니어의 눈으로 보면 구조공학적 아름다움이 있다. 공중누각에서 동적으로 달리는 덤프트럭은 교량상판에 힘을 미치고 이 힘이 교대를 타고 내려온다. 이후 물 밑에 있는 지반에 전달되고 지반에 기초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땅으로 힘이 분산된다.

공학자들이 바라보는 힘의 균형성 등을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정리 중에 있다. 힘의 전달이 자연스러운 SOC 시설물은 기하학적, 구조적, 안정적, 경제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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