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와 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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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와 모루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2.07.0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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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치와 모루 전술로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대왕
전투력이 동일하다는 전제아래 평원에서 정면승부로 전투를 펼칠 경우 승리하는 쪽은 보다 많은 병력을 확보한 곳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정면승부는 소모전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승리한 측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겠죠.

만약 열심히 정면에서 싸우는데, 뒤나 옆에서 기병이 우르르 몰려온다면 어떨까요? 당황스럽겠죠.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적이 밀려오면 진영은 쉽사리 붕괴될 것이고, 여기에 운좋게 사령관 목이라도 잘라 버리면 상대 병사들은 금세 오합지졸이 돼 도망치고 말겠죠.

아군과 적군이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별동대를 투입하는 전술을 ‘망치와 모루’라고 합니다. 아무리 강한 쇠라 할지라도 모루(받침대) 에 대고 망치로 두들기면 버티는 쇠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모루 역할은 정면에서 싸우는 보병대가 맡고 적을 때려 부수는 망치역할은 주로 기병대가 맡습니다.

▲ 망치와 모루 전술의 개요
망치와 모루 전술의 핵심은 별동대인 기병대가 아니라 받침대인 보병대입니다. 별동대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2~3개로 분산시켜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모루역할을 하는 보병대의 힘이 저하될 수밖에 없겠죠. 만일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군대가 이 전술을 쓸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때문에 망치와 모루 전술을 쓰려면 장비도 튼튼하고 경험이 많은 질 높은 병사가 필수적입니다.

망치와 모루 전술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알렉산더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입니다. 그리스 북부 산동네에서 은거해있던 필리포스는 이 전술로 발칸반도 전역을 손아귀에 넣게 됩니다.

완성판은 동방원정의 최대 전투인 가우가멜라에서 알렉산더에 의해 실현됩니다. 다리우스3세가 지휘하는 페르시아군은 전차부대, 숙련된 궁수, 도끼병 등으로 이뤄진 20만 대군으로 이뤄진데 반해 마케도니아군은 파르메니온이 지휘하는 장창부대와 알렉산더의 기병대 등 총 4만7천명에 불과했습니다.

2004년 개봉된 올리버스톤 감독 콜린파월 주연의 영화 알렉산더는 이 가우가멜라 전투를 확실히 고증하고 있습니다. 다리우스 3세는 전진해오는 알렉산더군에 수만발의 화살을 날린 뒤, 수백대의 전차와 코끼리 부대를 출격시킵니다. 하지만 숙련된 알렉산더군은 전차돌격에 효율적인 쥐덫방진을 펼쳐 쉽게 격퇴합니다. 이어 페르시아 도끼병과 파르메니온의 보병은 치열한 육박전이 펼쳐지게 됩니다.

이 때 우익에서는 알렉산더와 카산더, 헤스파이스온 등 기병대가 장장 10km를 돌아 다리우스군의 후위를 강타합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알렉산더 기병대의 돌격으로 다리우스는 당황하게 되고, 급기야는 병사들을 버리고 도주하게 됩니다.

전투결과는 20만의 다리우스군의 거의 전멸한데 비해, 알렉산더군은 4,000여명의 손실만 보고 말았죠. 결국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심장 바빌론을 입성하고, 이후 박트리아와 인도 북부까지 점령해 곳곳에 신도시인 알렉산드리아까지 건설합니다. 당시로써는 로마는 도시국가에 지나지 않았고, 중국은 거대한 히말라야에 막혀 있었으니 알렉산더는 사실상 전세계를 통일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SOC발주가 급감하면서 엔지니어링업계가 많이 힘듭니다. 하지만 선도적인 엔지니어링사는 해외진출, 신기술을 이용한 신사업개발, 운영사업 등을 펼치며 위기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선도엔지니어링사는 경영자의 리더십 아래, 뛰어난 엔지니어를 보유해 레드오션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즉 기본인 모루를 보다 강인하게 만들었죠. 기본이 튼튼하니까, 신사업을 찾는 별동대 즉 망치를 제대로 휘두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기본이 없는 엔지니어링사는 신사업을 찾을 여력도 없이, 어렵다 싶으면 구조조정을 단행하니까 서서히 체력이 빠져 종국에는 폐업하고 마는 것입니다.

망치와 모루는 한마디로 기본이 튼튼해야 딴 생각 즉 신사업도 펼칠 수 있다는 다소 도덕적이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결론입니다. 당연히 모든 사업분야가 망치와 모루 전술이 정답은 아닙니다.

전쟁사적으로 볼 때, 최고의 경기병으로 오직 망치만을 휘두르는 전술을 사용했던 칭기즈칸은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고, 히틀러는 탱크로 밀고 보병으로 정리하는 전격전(blitzkrieg, 電擊戰)으로 유럽을 손아귀에 넣었죠.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은 역사상 최고의 기습인 진주만 폭격으로 미국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전력상 차이가 있는 양자가 전투를 벌인다면, 원래 전력 차이의 제곱만큼 그 전력 격차가 더 커지게 된다는 란체스터의 이론을 깨버리고 13척으로 333척의 왜구를 소탕한 바 있죠. 란체스터의 법칙은 육상전투에서는 크게 적용받지 않지만, 피할 곳이 없는 해전에서는 정확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서양에서도 이순신 장군을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겁니다.

결론은 기업이든 군부대든 상황에 따라 최적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정답이 없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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