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이재완 FIDIC회장의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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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이재완 FIDIC회장의 4년
  • 정장희 팀장
  • 승인 2017.11.08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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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완 회장이 FIDIC 수장직을 내려왔다. 2013년 바르셀로나 총회에서 차기회장으로, 다시 2015년 두바이에서 회장으로 오른지 4년만이다. Alain Bentéjac 신임회장에게 공식적으로 바통을 넘긴 것은 지난달 3일이다. 이 회장은 그러나 한국에서 엔지니어링 리더 200명을 초청해 이임식을 다시 가졌다.

왜일까. 이 회장이 FIDIC 100년 역사상 동양인 최초로 회장직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한민국 엔지니어링의 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ITS기반으로 촘촘하게 짜인 도로망과 KTX, 인천공항, 최첨단 신도시까지 우리의 SOC인프라는 전세계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았다. 게다가 탁월한 엔지니어링 능력으로 역대급 초장대교량과 해저터널까지 구현해 내니, 헤게모니를 쥔 유럽권조차도 이쯤되면 한국에서도 FIDIC 수장이 나와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국엔지니어링협회는 한국인 FIDIC회장 탄생에 실질적 기여를 했다. 80년초부터 FIDIC에 가입해 40년 가까이 꾸준히 대표단을 파견해 한국의 엔지니어링을 세계에 알렸다. 대표단의 오랜세월 지난한 노력의 결과 이재완 회장을 FIDIC집행위원으로 올렸다. 그리고 FIDIC역사상 가장 화려했다는 2012년 FIDIC 서울 총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전세계 엔지니어들은 인천공항에 착륙해 인천대교를 건너며 송도신도시를 바라본 것만으로 한국SOC에 대단한 임팩트를 맞봤다고 입을 모았다. 상당수 개도국 인사들은 한국의 첨단엔지니어링을 자신들의 나라에 접목시켜야 한다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재완 회장은 차기회장 2년, 회장 2년 총 4년간 어떤 일을 했을까. 큰 틀에서 백인, 영미권 위주의 FIDIC 조직에 아시아, 아프리카의 인사를 대거 기용해 명실공히 전세계 엔지니어링을 대변하는 단체로 바꿨다.
 
“제가 FIDIC회장되고 난 후에도 여전히 백인들은 유색인종을 주류에 편입시키지 않았다. 가끔은 회장인 내가 이야기해도 시큰둥한 때도 있었다. FIDIC에서 가장 중요한 위원회가 계약분야인데 7명 모두 백인이다. FIDIC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사무총장을 해임시키고 아프리카인과 모로코인을 부회장으로 임명했다.” 이 회장의 이임사다.

YP-Young engineer의 확대도 손꼽힌다. 전세계 40세 이하의 젊은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YP프로그램을 확대해 FIDIC내 자리매김 시켰다. 이 회장은 YP에 대한 생각이 각별해 출장비를 아껴 1만8,000달러를 기부했을 정도다.

필자가 처음 총회에 참석한 부다페스트FIDIC 때만해도 대표급들만 참석하다보니 언어의 한계로 인한 유럽권과의 괴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자카르타총회에서는 YP를 통해 배출된 한국의 젊은 엔지니어들이 아시아권은 물론 영미권 엔지니어들과도 비즈니스미팅을 하고, 실제 사업으로도 연결시키고 있었다. 이뿐인가, FIDIC인증강사와 ASPAC회장도 이 회장 임기 전후에 이뤄졌다. 10년만의 성과인 셈이다.

이재완 회장은 앞으로 2년간 FIDIC자문위원장, 10년간 자문위원으로 활동한다. 물론 10년전보다 FIDIC내에서 한국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전히 계약, 분쟁과 같은 핵심분과에는 우리가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재완 회장의 4년을 기반으로 FIDIC 그리고 글로벌엔지니어링 시장에서 40년을 기약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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