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엔지니어>
엔지니어링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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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다
  • 엔지니어링데일리
  • 승인 2012.04.1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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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칼라트라바

푸른 하늘에서 수영을 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싱가폴 마리나 베이 샌즈’의 모셰 사프디, 도시의 상징인 차가운 콘크리트를 활용했지만 마치 명상하는 건물인 듯 따뜻한 정갈함을 표현한 안도타다오, 자연이 빚어낸 협곡을 연상케하는 ‘월트디즈니콘서트홀’의 프랑크 개리 등 21세기 인기 건축가들을 관통하는 특징 하나가 있다. 사람을 향하고 자연과 조화롭고 싶어한다는 것. 이들의 연장선상에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 valls)가 있다.

자연의 섭리, 그것이 곧 디자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는 다른 현대 건축가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을 꿈꾸는 건축가다. 그러나 여러 건축가들이 정지된 자연의 모습을 정지된 건물에 표현하려고 시도할 때,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는 살아있는 자연을 건물에 표현함에 따라, 보다 역동적인 건축물을 구현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의 스케치를 보면 ‘살아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주로 사람이나 동물이 모티브가 된다. 거의 모든 건물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런 특징을 작가정신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밀워키 미술관(Milwaukee Art Museum, 2001作, 미국)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는 그동안의 작품들에서 디자인뿐만 아니라 구조공학적인 설계를 통해 자유로운 형태를 표현했다. 그의 대표작인 ‘밀워키 미술관(Milwaukee Art Museum, 2001作, 미국)’은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약진할 것 같은 새의 형상이다. 그러나 타임지가 2001년 베스트디자인으로 선정한 것은 외관때문만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접혔다 폈다를 반복하는 가오리모양의 차양이 포인트다. 이를 통해 살아있는 피조물을 표현하고 싶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바람을 실현한 동시에, 조형미와 기능성을 인정받아 공공시설물로서의 고유가치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작품은 밀워키 주민들의 자랑스러운 휴식처이자 글로벌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사람, 동물의 관절 및 뼈의 모습을 통해 구조적·디자인적인 건물을 설계한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 2005作, 스웨덴)’가 있다. 190m의 주상복합건축물로 북유럽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터닝 토르소’는 사람의 몸통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에서 온 조각용어로 꽈배기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바닥부터 최고층까지 뒤틀린 정도는 90도. 이러한 특징이 ‘터닝 토르소’의 역동적인 모습에 활력을 더한다.

한편, ‘터닝 토르소’가 의미하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2003년 현대중공업은 스웨덴 말뫼 최대 조선업체의 골리앗 크레인을 단돈 1달러에 인수한다. 이 크레인은 1970년대부터 말뫼의 심벌과도 같은 존재로서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일대 조선업계의 번영기를 상징했다. 이것이 유럽에서 한국으로 옮겨진 일은 세계조선업계의 지각변동으로 해석되면서, 이 크레인을 ‘말뫼의 눈물’로 불렀다. 이후 도시는 활력을 잃어갔고, 말뫼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IT 및 지식산업을 기반으로 한 자원에너지사업에 주력했다. 결국 지식기반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도시로 탈바꿈했고, 이러한 시기에 건설된 것이 ‘터닝 토르소’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활력을 되찾은 말뫼의 자존심을 상징할 수 있는 또 다른 심벌을 갖게 된 것이다.

▲ 사람의 관절 및 뼈를 형상화한 구조적·디자인적인 건물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 2005作, 스웨덴)

공학에 예술을 벤치마킹
이처럼 그의 현실을 초월한 다수의 건축물들을 선보이며 21세기를 이끄는 세계적인 건축가들 중 한명으로 지목될 수 있었던 배경은 그의 어린시절이었다. 1954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는 수출업에 종사했던 가족의 영향을 받아 어릴적부터 국제적 시야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8세때부터 예술·기술학교에서 경험한 미술수업은 자연스럽게 체득한 국제감각에 창조적 감성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받은 학위만 해도 3개. 건축학위와 도시학학위를 딴 후 보다 명확한 진로를 설계하기 위해 토목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가운데 역사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을 통해 건축의 수학적 질서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첫 교량인 ‘Bach de Roda Bridge(1984)’를 시작으로 토목공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편, 조각가와 화가로서의 여러 작품을 남긴 바 있다.
일련의 과정은 공학분야에 예술을 자유자재로 벤치마킹할 수 있는 지금의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를 만들었다.

초현실주의를 현실에 실현하는 작가
한 인터뷰에서 그는 “에너지, 운동과 함께 움직이는 구조물을 창조해 내는 것이 목표이자 이상이다”라고 말했다. 흔들리는 나뭇잎을 가리키며 언젠가는 태양 주변을 자전하는 지구를 형상화 한 건축물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함께 밝혔다.

마치 예술인들처럼 꿈을 품고있는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그의 순수한 이상과 상상력이 새로운 건축영역의 장을 연 원동력이 되어준 것처럼 보인다. 일각에서는 자연의 환상에 젖은 몽상가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디자인에 치중하느라 건설자재를 낭비했다거나, 실용주의 측면에서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건물이 무가치하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한국의 경우,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와 같이 건축, 토목, 수학,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합건축물을 짓는 일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국 건축가들의 운명은 대학입학때부터 결정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건축, 토목 등으로 처음부터 나누어진 전공을 따라 사회에 진출한 뒤 해당 분야에 고착되는 경우가 많다. 이 가운데 건축의 비용대비 실용성이 강조되는 보수적인 업계문화는 융합기술의 부가가치창출에 본의아닌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경제성만을 추구하는 건축물들 사이에 놓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건물은 그러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모든 건축물이 예술성을 갖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건조한 빌딩숲에서 칼라트라바의 건물 하나가 인근 환경과 어우러져 갈증이 해소되듯 회색빛 도시를 덜 삭막하게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말뫼의 눈물’을 말끔히 씻어준 ‘터닝 토르소’나 프랑스의 에펠탑처럼 지역이 상징이 된 위대한 건축물이 한국에 없는 현실이 아쉽다. 융합기술에 유연치 못한 한국의 건설업계도 이따금 비장한 건축물에 넉넉한 박수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기사작성일 2011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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