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유치원 붕괴. 유사전문가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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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유치원 붕괴. 유사전문가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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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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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밤 11시반 상도동의 한 신축빌라 시공현장의 사면이 붕괴되면서 위에 있던 상도유치원 건물의 일부가 붕괴됐다. 지난달 31일에는 가산동 오피스텔 건설 현장에서 터파기 가시설이 무너지면서 인근 아파트 단지 주차장의 일부가 무너지는 사고도 발생했었다.

두 사고 모두 건축공사현장의 토목공사 공종에서 발생한 사고다. 상도동 사고의 경우 빌라를 짓는 작은 시공사였지만 가산동 사고는 대우건설이라는 대형시공사였다. 지난해 10월 23일에 발생해 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용인물류센터 절토부 가시설이 붕괴사고도 대형시공사인 롯데건설이었다. 시공사의 규모를 막론하고 붕괴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건축공사 현장의 토목공종에서 왜 붕괴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일까? 건축현장의 유사전문가들 때문이다.

의료계를 예로 들어 보자. 의사는 일반의가 있고 전문의가 있다. 큰 병이 아니면 일반의가 약을 처방해서 치료하지만 증상이 심각한 병의 경우 전문의를 찾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건설현장에서 흙을 다루는 것은 하나의 전문분야다. 토목중에서도 지반분야 전문가가 따로 있다. 의사라고 해서 모든 병을 다 고칠 수 없듯이 토목을 전공했다고 해서 모두 지반전문가는 아니다.

토목은 지반, 구조, 물 등 여러개의 전문분야로 나눠져 있다. 흙을 다루는 문제는 토질분야다. 국가기술기술자격증도 토질 및 기초기술사라는 별도의 자격증이 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제대로 건축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사고는 많이 줄어들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건축설계는 건축사만이 할 수 있도록 법제화 돼 있다. 건축법 제23조 1항에 따르면 '건축물의 건축등을 위한 설계는 건축사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건축관련 사업의 모든 계획은 처음부터 건축사가 한다.

계획 단계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건축사가 건물은 물론 부지계획까지 하게 되는데 땅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 무리한 사면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이번 상도유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건축주의 의뢰를 받고 설계를 하는 건축사는 될 수 있으면 건축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쪽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나중에 해결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리한 사면 계획을 세우는 사례도 허다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도유치원의 경우에도 매우 어려운 현황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10미터가 훨씬 넘는 토사지반을 수직으로 세우려면 땅에 앵커를 심어야 하는데 그 앵커가 사유지를 침범하기 때문에 적용할 공법이 매우 한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처음에 잘못된 부지 계획이 결국 문제를 만들어낸다. 무리한 사면계획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추가 비용이 들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시공을 맡은 현장소장이 무리한 사면계획을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보강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건물주와 공사비 계약이 돼 있기 때문이다. 건물주에게 추가 보강비용을 받아내야 하는데 건물주는 계약금액 내에서 해결하자고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기술적 판단보다는 돈을 기준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현장소장이 사면의 문제를 발견하면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확률은 높지 않다. 왜냐하면 현장소장은 건물을 짓는 사람이지 사면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토목기술자가 아니라 건축기술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주가 현장에서 벌어지는 기술적인 일을 해결하라고 고용한 감리는 어떨까? 감리역시 토목공종의 전문가가 아니라 토목 공종에 대해서 기술적 판단을 할 능력은 없다. 

결국 건축현장에는 토목전문가가 없다. 그래서 현장소장은 토공업체에 의지한다. 그나마 건축현장에 있는 토목전문가는 하청을 받아서 토공일을 하는 토공업체가 유일하다. 하지만 토공업체는 설계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설계된 대로 시공만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면의 안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결국 모두 유사전문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토목과 건축, 설계와 시공을 구분하지 못한다. 건설을 하는 사람들은 다 같은 줄 안다. 실제로 건설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스스로도 어깨 넘어로 본 걸 잘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허가 관청은 또 어떤가? 상도유치원 사고 이후 대부분의 언론이 동작구청의 인허가를 질타하고 있지만 관련 담당자도 사면이 안전한지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는 아니다.

무엇을 바꿔야 할까. 유사전문가들이 빠지고 전문가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설계단계에서 토목공종은 토목전문가가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건축법에 건축사만 설계할 수 있고 관계전문기술자의 협력을 받아야 한다는 애매한 문구를 토목분야는 토목분야 전문가가 설계해야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감리도 마찬가지다 토목 공종을 시공할 때는 토목전문가가 감리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참고로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건축공학과 토목공학으로 나눠져 있지 않다. 토목공학과만 있다. 그리고 건축학과는 예술대에 있다. 건물을 짓든 다리를 짓든 모두 땅 위에 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토목의 영역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학교에서부터 토목공학과와 건축공학과를 통합해서 건설공학과로 만들고 건축학과는 디자인계열로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더이상 유사전문가들을 양산하지 말고 전문화 해야한다.<이석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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