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엔지니어링 호구론
상태바
[사당골]엔지니어링 호구론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2.09.01 11:42
  • 댓글 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구. 어수룩해서 이용을 잘 당하는 순진한 사람을 말한다. 호구의 원인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 때문인데 자기 자신보다 남을 기쁘게 하는데 초점을 두고 착취나 학대를 향해 자신을 열어놓고 있다. 악순환이 계속되면 자신의 한정된 에너지 자원을 착취하고 고갈시키는 과정에서 우울감을 느끼고, 분노, 울화, 심지어는 자기혐오에까지 이를 수 있다.

엔지니어링업계는 발주처 입장에서 명백한 호구다. 퇴직하면 높은 임금으로 취직도 시켜주고, 종종 찾아와 용돈도 주니 얼마나 좋겠는가. 현시점의 발주처 목표는 시설물의 퀄리티보다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해 엔지니어링업계를 지속적으로 호구잡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얼마전 발표된 국토부 종합심사낙찰제 평가위원POOL 개편안을 보면 그들의 목표가 확실해 보인다. 토목POOL은 내부 335명, 외부 136명으로 국토부와 산하공사의 비율이 외부보다 2.5배 높다. 왕의 귀환처럼 실로 막강한 파워를 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전관의 연봉과 영업비용이 더 치솟을 것이 분명하다. 이미 종심제 이후 전관의 몸값은 크게 뛰었다.

예전 같으면 A급 전관은 연봉 1억원에 그랜저 맞춰 줬다면, 요즘에는 1억4,000만원, 제네시스, 카드, 골프를 보장해줘야 한다. 문제는 이걸 엔지니어링사가 정하는게 아니라 발주처에서 급수에 따라 정해준다는 것이다. 심의가 있을 때마다 소요되는 비용은 말할 것도 없다.

종심제를 혼탁하게 하고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심의위원에서 사립대 교수를 배제시킨 것 또한 “맞는 말이지만 니가 할 말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내부던 외부던 똑같이 비용이 투입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지난해 LH사태 이후 자구책 삼아 외부심의위원 100%로 바꾸고 LH전관 몸값이 떨어진 것만 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관과 이로 인한 발주처 영업이 엔지니어링업계에 미치는 폐해는 크다. 어림짐작이지만 종심제 등 기술형입찰에 많이 참여하는 곳은 매출액의 15%는 전관연봉과 영업비로 사용되고 있다. 엔지니어링의 목표가 ‘제대로된 시설물을 국민에게 제공한다’라고 한다면, 그런 이유로 엔지니어링대가를 정해서 지급하고 있다면 15%는 목적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더 토악질 나오는 것은 공무원연금 안 깎이려고 연봉을 4,000만~5,000만원 수준으로 맞추는 퇴직공무원들이다. 하는 일 없이 월급 받고 연금은 또 안 깎이려고 성과급은 따로 현찰로 요구하고 있으니 그들 입장에서 엔지니어링사가 호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세태가 계속된다고 당장 성과품의 품질이 나빠질리야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상대적 박탈감과 낮은 대우로 인해 인재유입을 막고 결국에는 엔지니어링산업의 부실로 돌아오는 셈이다. 엔지니어링 해외진출은커녕 종국에는 외국인노동자를 받아서 국내 인프라나 간신히 유지하는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국민세금이 퇴직공무원과 발주처에게 살살 녹아갈수록 산업은 황폐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어떠한 업종에서 이토록 상시적으로 전관을 보유하고 영업을 하는 곳이 있나. 시공사조차도 영업을 하면 했지 전관을 쓰지는 않는다. 엔지니어링대가를 논하기 전에 엔지니어링산업에 전관들을 배제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기술형입찰은 대대적으로 손을 보고, 대형사의 자회사를 통해 생존하는 전관에 대한 진출통로를 막아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엔지니어링업계 스스로 호구를 부정하고 자정작업에 나서야 한다. 영업과 전관이 없어도 어차피 설계감리는 엔지니어링업계에서 할 수밖에 없다. 공중으로 사라진 15%의 전관과 영업비용을 기술개발과 엔지니어 복지향상에 힘써야 보다 나은 내일을 약속할 수 있다. 외쳐보자. 나는 호구가 아니다.

정장희 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야 2022-09-03 01:11:15
기사 진짜 맛있다... 저 울고있습니다 특히 우리업계는 실행하는 실무자들이 피를 잔뜩흘려야하는 구조인 것 같습니다

감성돔 2022-09-01 20:15:21
엔지니어링 밥 먹은지 어느덧 7년, 앞길은 보이지 않고 회사에서 전관의 훈화말씀 들으며 내 월급으로 돌아와야 할 돈이 그들의 쌈지돈이 되가는 현실 앞에서 굴복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참담하고 이 업계는 입사 부터 퇴사까지 호구짓 당하며 살아야 한다는게 너무 암울한데 이 일 말고 무슨일을 할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다. 비판적인 글도 좋고 다 좋은데 개선의 여지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설계자 로서의 자부심이나 포부 대신 발주처 앞에서 굽신거리고 그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한 엔지니어링 업계는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

호구맞음 2022-09-01 20:17:03
맞습니다. 발주처도 문제지만 오너들도 문제입니다. 엔지니어링 업계 대대적 수술이 필요합니다.

호구김대리 2022-09-02 08:45:49
기사에 좋아요 버튼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네용

엔지니어링바보 2022-09-06 13:48:48
출근도 안하는 전관들 연봉 1억이상, 제네시스가 거짓말인줄알았는데 진짜더라 ㅋㅋ 이런 나라는 망해야지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