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PC社 10년간의 변화 1편-GS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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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EPC社 10년간의 변화 1편-GS건설
  • 이명주 기자
  • 승인 2014.09.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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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후 10년간 126% 외형 성장
10% 불과했던 플랜트 분야 50% 비중 넘어
2012년 이후 수익성 및 부채 악화 해결과제

국내 EPC업체들은 최근 10여 년간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중동건설 붐이 일어났던 70~80년대를 넘어 제 2의 성장의 시대에 들어섰다.

아울러 국내라는 한정된 시장을 벗어나 전 세계 EPC 시장에서 세계적 EPC사들과 경쟁을 펼치며 국내 EPC사들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 뒤에는 성장통이 존재하듯 수익성, 인력편중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국내 EPC를 이끄는 대형 EPC 10사들의 10년간의 변화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할 예정이다.

▼ 1969년 락희개발에서 2000년대 GS건설로

(엔지니어링데일리)이명주 기자= GS건설은 1969년 지금의 LG그룹의 모태인 럭키금성의 락희개발로부터 시작되어 왔다.

그 후 70년대 럭키개발에서 럭키해외건설로 이름이 바꾼 뒤 70~80년대 국내 주택부흥기에 편승하며 건설사로 성장하게 됐다.

90년대에는 럭키금성이 LG그룹으로 바뀜에 따라 LG건설로 사명을 개편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주택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건축건설회사에 머물러 왔다.

그러던 중 2000년대 들어와 GS건설을 탈바꿈 시킬 수 있는 시점이 마련됐다.

바로 2005년 LG그룹과 GS그룹의 계열사 분리 결정이다.

시장에서는 양사간의 분리를 두고 형제간의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시대에 허家와 구家의 신사적인 이별로 평가하기도 했다.

GS건설은 2000년부터 허창수 GS그룹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었던 관계로 자연스럽게 GS그룹의 방계회사로 편입되며 LG건설에서 GS건설로 상호를 변경하게 된다.

매출비중 주택 66.1%가 플랜트 50.6%로

2005년 LG그룹과 각각의 노선을 걷게 된 GS건설은 빠른 시간 내 홀로서기를 위한 사업체계 개편에 들어간다.

LG그룹과의 분리를 선언한 2004년 8월과 2005년 GS건설의 주택 매출비중은 전체 매출 비중 중 60%를 넘었다.

 
반면, 현재 GS건설의 매출의 주를 이루고 있는 플랜트 분야의 경우 고작 전체 매출 비중의 20%를 밑도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마저도 대부분이 LG전자, LG화학, LG필립스 등에서 발주된 일반 사업플랜트와 석유화학플랜트가 주를 이루었다.

실제로 2005년 GS건설의 해외 신규 수주 물량을 살펴보면 총 11건의 신규수주 가운데 라스라판 콘덴세이트 프로젝트를 포함한 3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LG그룹과 연계된 물량이 주를 이뤘으며 이마저도 1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전자 및 소재 분야 일반 플랜트에 머물렀다.

그러나 GS건설의 홀로 서기는 생각 밖으로 잰걸음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2009년에는 본격적인 플랜트분야가 주를 이루는 동시에 LG그룹의 아성에서 벗어나는 발판이 마련되기도 했다.

 
바로 UAE의 루와이스 정유플랜트 확장 공사와 이란 사우스파 가스개발 사업의 수주 성과이다.

GS건설은 2개의 공사에서만 총 60억달러에 육박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플랜트분야가 급성장하는 동시에 국내 주요 종합 EPC사로 발돋움하게 됐다. 아울러 이시기에는 싱가포르 도심철도 프로젝트 2단계 913공구를 수주하며 해외 토목분야 진출을 위한 초석을 놓게 된다.

이후 2012년에는 라빅 정유단지 개발 패키지2와 호치민 지하철 1호선 2공구 수주 등을 이어갔으며 2013년에는 플랜트 분야 매출 비중 50.6%, 주택부문 매출비중 34.9%의 실적을 보이며 2003년과는 대조적인 매출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해외 매출 비중 또한 2003년도에는 고작 11.2%에 그쳤으나 2013년에는 51.8%까지 비중이 늘어나면서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는 국제 EPC사로 인식되고 있다.

 
10년간 인력 2배증가, 그러나 정체기 올 수도...

급격한 매출증가와 함께 사업 구조변화는 인력의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2003년도 주택분야에 사업분야가 집중될 당시 GS건설의 인원은 고작 3,200명을 밑돌았다.

이는 국내 건축시장의 특징상 하도급을 통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본사 인력을 직접적으로 투입하기 보다는 하도급 아웃소싱을 통해 인력을 수급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2003년은 1990년대 말 발생한 IMF의 여파 또한 인력이 많지 못했던 또다른 이유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2009년부터는 인원구조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며 5,000명을 넘어 급기야 2011년에는 7,000명을 넘기에 이르렀다.

업계에서는 GS건설이 수주한 플랜트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대형 공사이고 플랜트 분야의 특성상 본사 인원들이 투입될 수밖에 없어 급격한 인원 증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GS건설은 8년만에 2배가 넘는 인력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2011년 급속한 증가세를 보였던 인력구조가 최근 들어 정체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수주했던 일부 해외플랜트 공사에서 출혈적자를 보이는 동시에 2012년 이후 국내 EPC사들의 텃밭이라고 여겨졌던 중동시장에서의 대형 발주가 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외 EPC사들 역시 공격적인 수주 정책까지 펼치고 있어 향후 수주전망을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GS건설의 인력수준이 이전과 같은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며, 향후 몇 년간은 지금의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High Return? High Risk!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파트 종합건설업체에 머물렀던 GS건설은 LG그룹에서 벗어나며 새로운 사업구조를 추진했고 그 결과 10년만에 매출액이 두 배가 넘는 8조5,000억원에 달하게 됐다.

이는 중동에서 수주한 석유 및 정유플랜트 등의 대형 프로젝트들의 영향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일명 High Risk, High Return이 대박을 가져다 주기 보다는 대형 손실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이다.

대형 프로젝트 수주로 급격한 외적 성장을 이루었으나 수익성은 오히려 낮아졌고 급기야 2013년에는 2000년대 들어와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에 2013년 6월에는 실질적인 오너였던 허명수 대표이사가 대표직을 사임하는 동시에 연말에는 사상 초유의 1조원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사태까지 이어지면서 10년만에 매출액 2배 성장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됐다.

 
시장에서는 2009년 이후 수주한 프로젝트들 중 일부를 사전 준비 없이 무리하게 저가에 수주하면서 발생한 당연한 결과로 보고 있다. 특히, 플랜트 시장의 특성상 건축과 건설 분야와 달리 공사 중에 다른 부문의 이득으로 손실을 메울 수 없다는 특성을 인지하지 못한 점이 실책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올해로 GS건설은 홀로서기에 나선지 10년차에 들어섰다.

어찌 보면 100년 기업을 목표로 하는 이 시대에 GS건설은 10년만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굴곡을 겪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지난 10년의 성장을 재현하기 위한 해법 찾기에 고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10년을 지나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GS건설, 그들의 해법 찾기에 대한 정답 여부는 시간만이 알고 있으며 시간만이 답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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