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PC社 10년간의 변화 2편 - SK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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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EPC社 10년간의 변화 2편 - SK건설
  • 이명주 기자
  • 승인 2014.10.1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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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매출액 3.5배 증가로 급성장
2000년대 중반 이후 플랜트 중심 EPC사로 변화 중
수익률 저하와 높은 부채 비율이 발목

국내 EPC업체들은 최근 10여 년간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중동건설 붐이 일어났던 70~80년대를 넘어 제 2의 성장의 시대에 들어섰다.

아울러 국내라는 한정된 시장을 벗어나 전 세계 EPC 시장에서 세계적 EPC사들과 경쟁을 펼치며 국내 EPC사들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 뒤에는 성장통이 존재하듯 수익성, 인력편중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국내 EPC를 이끄는 대형 EPC 10사들의 10년간의 변화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할 예정이다.

▼ 1977년 아파트+플랜트 중심 선경종합건설로 시작

(엔지니어링데일리)이명주 기자= 올해로 창립 37주년을 맞은 SK건설은 1977년 모그룹인 선경의 이름을 따 선경종합건설로 시작됐다.

70~80년대 아파트 및 신도시 부흥과 맞물린 건설시장의 중심은 단연코 주택시장이였다.

이에 대부분의 관련업체들은 건설시장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SK건설 역시 워커힐 아파트를 시작으로 건축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다른 건설사들과 차별화된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모기업인 선경을 배경으로 한 플랜트 분야였다.

특히, 창립 2년만에 선경합섬의 PET(Polyethylene phthalate)플랜트로 플랜트 건설 분야에 발을 내딛은 선경종합건설은 80년대에는 선경그룹의 유공인수로 인한 정유 및 석유화학플랜트 분야로의 영역확장과 함께 노하우 축적에 가속도를 내게 된다.

그 후 90년대부터는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 시장에서 해외시장으로 발을 넓히기 시작했으며 1998년 SK건설로 사명을 바꾼 후 지금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 해외 플랜트 EPC 본격화와 함께 성장한 10년

현재 SK건설 매출액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분야는 플랜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년 전인 2003년까지만 하더라도 플랜트분야가 매출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건설 및 토목, 건축 분야에서 매출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SK건설의 매출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이는 플랜트 매출의 대부분이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국내 시장이 주를 이루었으며 해외 수주 역시 대부분 중소형 프로젝트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으로 판단되고 있다.

 
실제로 2006년까지 해외신규 수주 물량 중 5억달러가 넘는 프로젝트는 원유집유소 10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그쳤으며 이마저도 진입장벽이 낮은 저장시설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7년 이후에는 9억달러 규모의 싱가폴 Jurong Aromatic 플랜트 건설 사업 수주 이후 2008년 20억달러급 쿠웨이트 Al Zour 정유플랜트 공사, 2009년 UAE Al Ruwais 정유를랜트 증설 공사를 수주하면서 플랜트 분야의 비중이 급증하게 된다.

아울러 플랜트 분야의 비중 확대와 함께 해외시장의 매출 비중 변화가 진행됐다.

2006년까지 전체 매출 실적 중 해외매출 비중은 채 20%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해외플랜트 수주의 증가와 함께 2010년에는 30%대를 기록한 후 2012년에는 전체 매출실적의 55%를 해외에서 달성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플랜트 이외에도 9억5,83만달러급 카타르 Doha 메트로 건설 프로젝트, 6억8,000만달러급 라오스 수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 등 토목분야 수주가 선전하면서 창립 이후 처음으로 해외 수주실적 중 토목 분야가 중심이 되기도 했다.

 
▼ 10년간 2.8배 구성원 '볼륨 업'

2003년도까지 SK건설의 인력은 1,694명에 머물렀다.

이는 경쟁업체들에 비해 규모가 작은 것으로 크게 2가지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 건축시장은 하도급 업체를 통하는 경우가 많아 200년대 초반까지 건축 비중이 높았던 SK건설 역시 본사 인력이 많지 않았던 원인이 됐다.

여기에 2000년 이후 IMF 사태 여파로 급감한 인력이 회복되지 못한 점 역시 또 다른 이유로 작용했다.

IMF 사태가 발생 직후인 1999년까지 SK건설은 약 3,000명 선의 인력을 유지했으나 2000년에는 1,835명, 2001년에는 1,780명, 2002년 1,345명까지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이후 인적구조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면서 IMF 이후 약 9년만에 3,000명 선을 회복했으며, 2011년 이후에는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 힘입어 6,000명이 넘는 인원이 SK건설에 재직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3년간의 급속한 성장과는 달리 이전과 같은 성장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주했던 일부 해외플랜트 공사에서 출혈적자를 보이는 동시에 2012년 이후 국내 EPC사들의 텃밭이라고 여겨졌던 중동시장에서의 대형 발주가 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한동안 SK건설의 급격한 성장 보다는 현 상태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 수익률 문제와 높은 부채, SK건설의 해결과제

2000년대 초반까지 1조6,511억원의 매출에 머물렀던 SK건설은 해외 플랜트 시장에서의 영역 확대와 함께 매출액 또한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2012년에는 7조원 이상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

이에 따라 10년만에 3.5배의 매출 실적 증가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급격한 성장을 위해 꺼내들었던 저가 수주 카드가 악재로 작용하면서 급기야 2011년 이후 수익성 지표로 볼 수 있는 영업이익률은 급락했고 2013년에는 4,95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수익성 악화와 함께 SK건설의 발목을 잡는 또 하나는 바로 높은 부채 비율이다.

2003년 SK건설의 부채 비율은 570.3%에 달했으나 2013년에는 326.2%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인 비율만 낮아졌을 뿐 금액으로 볼 때 3조7,411억원을 기록하며 10년만에 부채 규모가 2.9배나 증가한 상황이다.

 
문제는 현시황에서 이러한 고민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SK건설을 바라보는 시장의 우려는 높아졌으며 해결책을 찾기 위한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창립 4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 SK건설, 브레이크를 밟아 멈칫할 것인지, 가속 페달을 밟아 50년을 대비 할 수 있는 묘수를 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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