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르포] ①발주시스템
미국 설계대가 4배, 기간 2배… 설계사, 발주처 모두 엔지니어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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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르포] ①발주시스템
미국 설계대가 4배, 기간 2배… 설계사, 발주처 모두 엔지니어 중심
  • 이준희 기자
  • 승인 2016.11.04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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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가낙찰해도 100% 받아… 감리 무서워 시공 대충 못해
미국기술사 PE, 오픈북 테스트… 실무중심 문화가 QBS 이끌어

(워싱턴D.C.=엔지니어링데일리) 이준희 기자 = 미국은 후발주자들에게 시공분야 즉 하드웨어경쟁력은 내줄지언정 프로젝트 기획, 설계, 파이낸싱, 유지보수 등 엔지니어링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시공만 했던 Bechtel은 엔지니어링분야에서 수익을 내고 CH2M Hill은 엔지니어링컨설팅영역을 산업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엔지니어링 경쟁력을 기반으로 전 세계 인프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패권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에 본지는 미국 현지를 방문 3~4일(현지시간) 양일간 AECOM, CH2M Hill, AEGIS, 조지워싱턴대학교, 버지니아주정부, 메릴랜드주정부 등 미국 업계, 학계, 정부 관계자들과 주미한국대사관,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 미국의 입·낙찰자제도, 기술력현황을 진단하고 한국의 미국 엔지니어링시장 진출방안을 모색했다.

▲ 미국 국회의사당

한국에서는 ‘용역’으로 정의되는 엔지니어링은 미국에서는 ‘컨설팅’으로 불린다. 미국에서는 통상 'Design Bid Build' 즉 분리발주를 선호하고 있지만 연방국가인 만큼 굉장히 다양한 계약방식을 가지고 있다. 주마다 다르고 그 안에서도 상수도, 교통 등 부서마다 기준이 다르다. 특히, 미국은 국제표준계약인 FIDIC을 쓰지 않는 대신 발주처마다 표준계약서가 있으며, 상당기간 실적과 신뢰를 쌓아온 기업들에 한해 입찰기회를 부여하는 구도다.

AECOM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턴키발주 비중이 작고 통상 PQ 후 3~5개 숏리스트를 대상으로 입찰평가를 진행하며 인터뷰 비중도 크다”며, “가격을 제안서 낼 때 써내는 경우도 있지만 예를 들어 시카고에서는 가격 없이 제안서를 쓰고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후 가격 협상하는 일이 잦다. 다만 이는 전적으로 발주처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설계 후 시공분야 발주가 많다보니 제대로 된 설계가 전제돼야만 한다. 이를 위해 발주처는 한국보다 설계비를 3~4배 더 쳐주고, 과업기간도 한국은 통상 1년을 주는데 미국은 2년 정도로 넉넉히 보장한다. 미국에서는 스펙을 정하는데 만해도 상당한 시간을 들이는 반면, 한국에서 대가가 작고 과업기간도 작다보니 구조적으로 창의적 기술적 설계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A하수처리장을 설계하기 위해 B하수처리장의 것을 베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설계에 대한 가치를 낮게 보고 시공은 최대한 싸게 하려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사고 등의 문제가 생기면 발주처와 대충 무마하던지 책임을 업체에 전가하고는 한다.

미국의 시공분야는 설계 후 입찰안내를 하는데 통상 최저가낙찰자가 수주한다고 전한다. 특이한 점은 설계과정에서 책정된 사업비가 100원이라면 통상 100원을 받으며 그 이상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것.  미국에서는 최저가낙찰을 한다고 70~80원에 수주하는 것은 사실상 파산선언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때문에 한국처럼 60~70%에 낙찰자가 선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에서는 설계를 한 엔지니어링사가 동일사업의 감리를 하며, 엄격한 감리 때문에 시공사들이 근본적으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큰 사업의 경우 장비 하나 때문에 샷드로잉, 스펙 등의 오류를 지적, 8번 이상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저가수주로 인해 예산 및 인력운영에 차질을 빚게 되면 감리사로부터 100여개 코멘트가 달리다보니 80원에 수주했다가는 시공사는 하루아침에 망하게 되는 구도다.

▼ 미국, QBS 비결… 실무형 PE제도, 발주처의 전문성 
AECOM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업체가 기술중심의 제안을 할 뿐만 아니라 발주처도 기술력을 선별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최저가낙찰을 하더라도 기술력 중심의 사업자선정 즉 QBS가 작동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미국 1위 엔지니어링사 AECOM에는 고위직에 엔지니어출신이 포진해있으며 그들은 직접 설계에 참여한다. 심지어 부사장이 은퇴 후 낮은 연봉으로 펌프엔지어로 재입사하는 경우도 있다. 발주처인 버지니아 교통부에는 경력직 엔지니어들이 상당히 많다. 만약 5년차를 뽑으면 10년이상 근무한다. 설계를 하면 본사에서 충분히 내부검토를 거친다. 이후 기술고문으로부터 또 검토를 받으며, 발주처가 다시 검토를 하는 구조다.

PQ통과를 위해 최근 업체실적뿐만 아니라 기술자 개인실적도 구비돼야한다. 미국에서는 ‘Professional Engineer’는 가점이 아니라 필수요건이며, 설계도서에는 PE 도장이 찍혀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PE시험은 오픈북이다. 암기역량이 아니라 실무역량을 압증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기 사무실에서 설계하듯 책을 보며 계산할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PE에 가까운 기술사시험이 상당히 외울 분량이 많고 선발인원도 작아 고시에 가까운 상황이다. 미국의 PE시험은 이에 비해 통과가 쉽다. 다만 미국처럼 발주처의 기술적 안목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실무형 엔지니어를 구별하고 양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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