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어주는 것이 정치다." 영화 광해에서 평생 광대로 살던 이병헌이 왕위에 앉아서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가치를 가지고 대신들의 상소를 처리하다가 도승지 허균에게 한소리 듣는 대목이다. 옳고 그름이 아닌 무수히 복잡한 이해관계와 경우의 수로 점철돼 있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사다. 다시 말해 정치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하는 것은 아마추어란 얘기다.
정부가 요소수 대란에 대한 대응으로 연말까지 개인 승용차 운전자의 요소수 구매를 10리터, 화물차 운전자는 30리터로 제한했다. 작년 마스크 대란이 다시금 떠오른다.
국가 입장에서는 전체 공익적 목적 차원에서 펼친 정책으로 십분 이해가 된다. 반면에 공급과 수요가 핵심인 시장경제의 논리를 옹호하는 자들에게는 정부의 기조는 심각한 자유의지의 침해다.
정답은 없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정책에 ‘정부가 정의’라는 가치가 짙게 깔려 있는 것이 불편하다. 애당초 박근혜 정권을 탄핵시킨 정의로운 촛불로 세워진 정부라는 대의명분이 있겠지만 지난 5년간 그 가치는 광기로 변했다.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여당을 지지하지 않거나 하면 ‘적폐냐’, ‘일베냐’ 같은 소리를 하며 이성을 가진 국민들을 난신적자로 만들었다. 입맛에 안맞거나 불편한 사실들에 대해 해명이나 사과보다는 가짜뉴스 프레임을 씌운게 대표적이다. 기사에 대한 정부부처의 입장문도 문재인 정권이 되면서 해명자료에서 반박자료로 그 뉘앙스가 아예 바뀌었다.
올해와 내년에 받는 벌점을 다 합쳐서 점수를 매기는 합산벌점은 2023년부터 불이익 적용을 앞두고 있다. 아직까지 어떻게 벌을 줄지 논의된 것은 없지만 시뮬레이션 결과가 여간 심상찮다. 대략적으로 대형사들은 일단 PQ에서 1~2점 마이너스 받고 시작하게 생겼다. 일을 잘해서, 업력이 오래되서 현장이 많은건데 이게 오히려 발목을 잡게 생겼다. 대형사를 옹호하자는게 아니라 면면을 보면 대형사가 관리도 우수한게 사실이다. 그보다 먼저 당장 두달뒤면 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된다. 현장에서 사망자가 나오면 CEO가 잡혀가고 수억원의 과태료도 내야한다. 이 모두가 정의로운 가치를 우선시해 생겨난 법들이다.
잘못되거나 보완이 필요한 법은 바꾸거나 하는게 맞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나온 이 법들은 수많은 이해관계와 산업에 대한 고심은 전혀 없고 정의로운 기치만 있는 아마추어적 성격이 강하다.
근데 이 정의로움은 또 선택적으로 발동되는 것이어서 그들 자신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현장관리의 일차적 책임은 기업이 맞다쳐도 정부부처에게는 책임이 없다 할 수 있을까. 중대재해법 적용을 최종결정권자인 CEO한테 주겠다는 논리면 국토부나 노동부나, 아니면 다른 관련부처도 다 포함돼야 마땅한데 어디에도 그런 적용은 없다.
이는 규모가 좀 작은 발주처에도 적용된다. 올 여름에 했던 발주처 갑질 실태조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기분을 맞추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강하다는 걸 보여줬다. 잘못된 발주처를 처벌해야하는데 결국 모두가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같은 입장의 분들만 있다보니 사실상 꼬리 자르기가 불가능하다.
강력한 제재와 법은 결국 제 목을 움켜쥐게 된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의 기틀을 만들었던 상앙은 강력한 법집행으로 나라의 체계는 잡았지만 결국에는 자기가 만든 법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그 진나라도 최초의 통일 중국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20년도 유지하지 못했다. 정의라는 광기를 앞세워 정부의 폭주가 계속되면 그때는 촛불이 아니라 또 다른 정의라는 횃불에 심판당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