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문제가 없는 게 문제라는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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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문제가 없는 게 문제라는 여당
  • 김성열 기자
  • 승인 2022.01.0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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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열 기자
김성열 기자

지난해 12월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총 11명의 국회의원이 건설산업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입찰담합으로 과징금 부과처분을 받고 9년 이내에 똑같은 사안으로 총 3회 적발되면 건설업의 등록을 말소하는 현행 기준을 10년 이내 총 2회 적발되면 말소하는 것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제안이유에서 입찰담합이 적발부터 처분 완료까지 수년이 소요돼 9년 이내에 3회 이상 과징금 부과처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실제로 등록말소된 사례가 전무하다며 입찰담합을 근절하기 위해서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등록말소된 사례가 전무하다는 이유로 법의 실효성을 논하는 것은 황당한 논리다. 법을 지키기 위해 업체들이 입찰담합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아무도 법을 위반하지 않았으니 등록말소된 사례가 없지 않겠는가.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을 문제라고 말하며 법을 바꿔 버리는 게 맞는 건가 싶다.

이런 여당의 정책은 서울시의 여성안심보안관 제도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여성 몰래카메라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제도를 도입했다. 도입 첫해, 서울시는 단 한 건의 몰래카메라도 찾지 못했지만 보안관 인원은 50명에서 82명으로 늘렸다. 어떻게든 범죄자를 잡겠다는 의지였다. 

도입 후 4년간 총 48억5,700만원을 들인 보안관 제도는 폐지되는 날까지 0건의 실적을 기록했다. 정작 다른 곳에서 벌어졌던 몰래카메라 범죄는 막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나마 보안관 제도는 예산을 이유로 없어지기라도 했지, 건산법은 없어지긴커녕 기준을 낮춰서 더 곤란한 규정으로 다시 태어나게 생겼다.

이쯤 되면 여당이 그냥 건설업계를 처벌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 분명히 잘못을 저질러야 하는데 아무 탈 없이 잘하고 있으니까, 잘못할 때까지 몰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규제만 늘어나는데 업계가 전부 피해 가며 죄짓지 않는 것도 장한 일이다. 

천 의원은 개정안에서 건설산업의 고질적인 입찰담합 병폐를 끊어내고 건설산업의 공정과 경쟁력 확보에 기여한다고 밝혔다. 9년간 3회의 입찰담합도 없었던 업계 어디에 고질적인 병폐가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공정과 경쟁력은 좋은 말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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