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약자배려와 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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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약자배려와 엔지니어링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2.06.21 09: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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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다. 이제껏 장애인, 노인, 아동 그리고 여성이 약자로 분류돼 사회적인 배려를 받아왔다. 특히 여성과 장애인은 할당제를 통해 취업과 창업을 비롯한 사회전반에서 보호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 때 신설된 여성부는 일몰제 부서로 “여성의 인권이 회복되고 남녀평등이 이뤄지는 시점까지 부를 유지한다”는 취지였다. 최근에는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어질 만큼 우리 사회의 남녀평등은 완벽히 이뤄졌다. 오히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만연해 성별간 혐오가 급증하고 있고, 결국 출산율 급감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윤석열 정부의 공약처럼 일몰제 부서인 여성부는 폐지되거나 역할을 180도 바꾼 형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엔지니어링업계도 배려와 할당제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지역사의 지분을 40%로 배분하고 있는 지역가점제와 컨소시엄 구성은 4~5개 이상으로 해야하는 공동도급이 그것이다. 전자는 지역과 중소사를, 후자는 중소, 중견사를 배려하기 위한 차원이다. 또 여성친화기업, 가족친화, 청년고용 그리고 소기업을 지원하는 판로지원법까지 엔지니어링업계에는 비기술적인 항목이 많다.

이 모든 배려책은 2000년대 중반부터 상생 또는 PC-Political correct의 시류를 타고 하나둘 만들어졌다. 때때로 엔지니어링의 가치를 말하는 엔지니어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특유의 모래알 조직인 이공계의 한계와 ‘요새는 다 이렇다’라는 마타도어에 낚여 지금은 제도권에 완벽하게 정착됐다. 발주처 입장에서는 배려와 상생의 가치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영업을 오는 업체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공동도급의 활성화로 인한 부작용은 상당하다. 우선 엔지니어링사의 덩치를 더 이상 키울 필요가 없어졌고, 기술력을 강화할 필요도 없어졌다. 1만명이든 500명이든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의 크기와 지분은 이미 정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역지분이나 공동도급 확대를 위해 수십~수명단위의 자회사를 만드는게 더 유리하다는 평가다. 오죽했으면 한 대형엔지니어링사에서 회사를 각 도별 10개로 나누는 방안까지 고려했겠나.

규모가 커진다고 기술력을 담보할 수는 없겠지만, 전세계 엔지니어링의 트렌드는 규모의 경제를 위시한 대형화라고 볼 수 있다. 본사를 주축으로 각국별로 끊임없이 자회사를 늘려나가는 것 말이다. 이 방식대로 글로벌엔지니어링사는 산업화가 한창인 개발도상국에서 막대한 수익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10년전 20년전과 다름없이 고만고만한 엔지니어링사의 나열에 불과하다. 그나마 최근 발주량이 늘어 상위사 50개사 기준으로 수주량이 상당량 늘었고, 중소기업은 창업 수가 증가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국내를 중심으로 발생되는 것일 뿐, 발주량이 줄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경영시스템과 기술혁신 없이, SOC발주의 한계를 보이는 정부에만 기대서는 현재 엔지니어링산업 규모를 유지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한국도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갈 수 밖에 없다. 합병을 통해 현재 상위업체의 3~5배 가량이 되는 대형엔지니어링그룹을 탄생시켜야 한다. 또 지금의 공동도급이나 각종 PC형 가점제는 일몰제를 적용, 축소해 나가는 방향으로 틀을 바꾸는 것도 고려돼야 한다. 세상은 무한경쟁인데 언제까지 상생과 배려만을 외칠 수 없지 않은가. 다만 대형화된 엔지니어링사는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을 주축으로 놓는 방식으로 중소중견과 밸런스를 맞춰야 할 것이다. 모든 선진국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결국 국내 발주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나름 호황인 현시점이 체질개선과 경영혁신의 적기가 아닐까.

정장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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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r 2022-06-25 23:47:16
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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