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교수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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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교수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2.08.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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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일 기자
조항일 기자

“강남 침수 원인은 과거에 비가 가장 많이 내렸던 정점을 기준으로 우수관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서울 강남 침수와 관련된 기사의 내용 중 일부다. 아무런 지식도 없는 평범한 사람의 말이었다면 후하게 점수를 줄 수 있는 수준이지만 이것은 모 대학교 토목학과 교수의 대답이었다.

흔히 자기 전공이 아니면 모른다는 엔지니어들이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대부분이 데이터값을 통해서 설계를 한다. 단지 그 근거량을 몇 년으로 하는지 정도의 차이일뿐이다. 지적을 받고 있긴 하지만 서울시는 평균 30년의 강우량 데이터를 근거로 우수관 용량을 정했다. 3년전 국감에서 모 의원이 붕괴 우려를 제기한 팔당댐은 계획홍수량을 1만년에서 10만년까지 적용해 설계했다. 참고로 댐은 단 한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물론 모든 토목학과 교수가 무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남 침수 기사에 나온 교수는 국내 토목학과 최상위권 대학의 교수였다. 토목분야 최고를 자부하는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대답이 저정도라면 꽤 높은 확률로 교수 타이틀을 달고 있는 비전문가가 많다는 얘기다.

최근 국토부가 소속 5개 지방국토관리청과 LH, 철도시설공단, 도로공사 등의 종심제 발주에서 500여명으로 구성되는 평가위원 통합풀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이 90%를, 나머지 10%는 교수들로 구성된다.

발주처 공무원, 직원 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부작용 논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업계는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그동안 실무경력은 전무하지만 단지 교수라는 이유로 평가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공공학계 자격요건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이번 평가위원 풀의 교수 자격 요건을 국공립대 소속 조교수 이상으로 제한했다.

오랜시간 엔지니어들을 괴롭혀 온 것이 바로 교수 평가위원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은 발주처라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비전문가인 그들에게마저 고개를 숙여야 했다. 특히 전국에 수백개의 대학이 있는 상황에서 이름도 생소한 지방대 토목과 교수를 모셔야 했던 엔지니어들의 울분이 곳곳에서 쏟아져 왔다. 화이트컬러인 교수는 갑질을, 상대적 블루컬러인 엔지니어는 을의 입장에 서있는게 당연시 됐다. 공무원은 로비를 받으면서 눈치라도 보지만 이들은 거리낄 것도 없다.

이러한 구조를 만든 것은 언제나 그랬듯 기술자를 천시하는,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사농공상 때문이다. 법제도가 개정될 때마다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는 탁상공론 정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 역시 토목학과 교수라는 타이틀 하나로 아마추어인 이들이 여기저기에 이름을 올리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적은 냉철하고 전문적인 수준의 평가로 건실한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다. 평가위원에 이름을 올려 자신의 이력을 만들고 최종적으로는 연구비 지원을 이끌어내는, 젯밥에 더 관심있는 자들이다.

국토부의 평가위원 풀 구성은 환영할만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지자체와 그 외 발주처에서는 교수 평가위원의 비율이 높다. 교수가 ‘명망이 높다’, ‘모든 것에 정통한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모든 직업은 자신의 일에 매진할 때 가장 빛난다. 교수는 학자의 일을, 국회의원은 나랏일을, 엔지니어링은 엔지니어에게 맡기면 된다. 판사와 목수의 망치가 같을 수 없듯이 토목학과 교수와 토목 엔지니어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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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2022-09-15 12:06:32
이 사진이 더 나아요 ㅎㅎ

강남호구 2022-09-14 10:58:25
사이다 기사 고맙습니다.^^

비공 2022-09-02 15:19:28
공무원은 엔지니어인가?

대리김호구 2022-09-02 08:42:11
여기 기사 맛있다고해서 왔습니다.. 기사맛집 인정합니다

ㅎㅎㅎㅎ 2022-08-23 09:57:38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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