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누구를 위한 합산벌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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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누구를 위한 합산벌점인가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2.09.1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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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일 기자
조항일 기자

내년 합산벌점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의 무사망 사고 인센티브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동안 건설사업자와 주택사업자에게만 적용하던 이 제도는 무사망사고 기간에 따라 벌점을 최대 59% 경감시켜주는 것으로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만 제외돼 왔다.

무사망사고 인센티브의 건설엔지니어링업계 적용은 합산벌점 개정안이 발의된 이후 업계가 꾸준히 요구해왔던 사안이다. 물론 엔지니어링업계는 설계-건설사업관리의 분리나 건설사업자와 엔지니어링사업자의 PQ 경중이 다른데서 오는 불이익 개선 요구도 주장했지만 대부분 ‘이게 어디냐’는 반응이다. 개정안 시행까지 채 100일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업계의 요구사항이 추가적으로 반영되기 어렵다고 가정할 때 이대로 합산벌점이 시행되면 대형사에서 시뮬레이션했던 결과들보다는 벌점의 수가 줄어들 것이 확정적이다. 애당초 합산벌점 시행이 2년간 유예된 동안 상위 엔지니어링사들은 CEO가 직접 통제하는 안전관리팀 등을 신설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았고, 또 실제로 벌점을 잘 막아 왔다.

중소사도 합산벌점 이전의 누계방식 회귀가 아니니 나쁘지 않다. 애당초 대형사에 비해 수행하는 프로젝트 현장의 수가 적다. 벌점방식의 변경에 따른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래서 한 때는 문재인 정부 시절 김현미 장관이 대형사를 윽박질러 중소사에 일감을 나눠주기 위한 강압적인 정책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여하튼 이제는 대형사와 중소사 모두에게 윈윈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발주처다. 발주처는 내 흔적을 남기는게 나의 업무성과고 인사고과다. 여전히 벌점부과사유가 애매한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생기는게 당연하다. 2020년 감사원이 공개한 건설산업 불이익 제도운영실태를 살펴보면 합산벌점 개정안이 공개된 이후 벌점부과 발주처가 매년 증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 모 발주처는 10여년전 끝난 프로젝트를 다시 꺼내들고 벌점을 부과했다가 철회했는데 다시 해당 지자체 감사위원회가 이를 문제삼아 결정을 번복하고 벌점을 주도록 했다. 당시 벌점을 준 공무원은 승진해서 더 높은 자리에 앉았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결국 여기에 연루된 엔지니어링사들은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지만 바뀌는건 시간이요, 나가는건 돈 뿐이다. 아직 1차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한 대형사는 변호사선임에만 벌써 수천만원이 깨졌다는 후문이다. 연간 프로젝트 현장이 100여개 이상인 이 회사는 합산벌점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어디서도 보상받을 수 없는 법적비용만 수십억원씩 쌓일 판이다.

업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벌점을 피하기 위해서는 결국에 또 로비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법적비용과 로비를 저울질 해보면 어느쪽이 더 수지타산이 맞는지는 안봐도 뻔하다. 종심제 로비를 끊어내기도 전에 엔지니어링업계에는 또 하나의 로비문화가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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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돔 2022-09-13 12:17:52
조항일 기자님을 국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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