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이 끝난 후 일본에서는 1947년부터 1949년 시기에 860만여명이 태어났다. 한국의 베이비부머세대에 해당하는 단카이세대다.
이들은 1980년대 중간관리자가 되면서 직급이나 돈벌이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는데 곧바로 이어진 버블경제까지 겹치면서 그야말로 천황이 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거품이 꺼진 이후 일본의 우경화가 강해진 이유에는 이들의 몫이 작지 않다. 일본의 경제가 30년전에 머물러 있는데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니 젊은세대의 반발과 분노심이 극단에 달한 이유다. 쓰는놈 따로 있고 뒤처리하는놈 따로 있다보니 생긴 당연한 결과다.
단카이세대의 행태를 보자면 자연스레 한국의 엔지니어링업계가 떠오른다. 한국의 엔지니어링사들이 설립된 시기가 대부분 80~90년대에 몰려 있다. 한국 엔지니어링사의 호황기가 명백히 그 시절임을 보여주고 있다. 의대 아니면 토목과를 갈 정도로 인재의 풀도 넘쳐났고 전국에 인프라가 깔리기 시작한 태동기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논리에 따른 선택인만큼 그들에게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기회는 도전하는 자의 것이니까. 그렇지만 단카이세대 못지 않은 풍요를 누렸던만큼 골짜기 시절을 넘어 사양산업으로 가고 있는 한국 엔지니어링업계의 현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젊은 엔지니어세대의 불만이 여기에 있다.
현재까지는 직무유기 수준이다. 분명 기성세대는 출퇴근이 구분되지 않는 일과 속에서 야근과 철야를 밥먹듯이 해왔지만 시공사 못지 않은 대기업 연봉을 받으며 일한 게 사실이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은 월급만 잘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던 시대적 행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발주청과 형동생하며 지냈다던 그 시절이 낭만으로 포장될 수 있었던 건 로비의 산실이었다. PQ만점을 만들기 위해 후배들의 노고를 내 것으로 만드는 짓도 서슴치 않았다. 이렇게 기성세대가 스스로의 안위만 쫓던 사이에 턴키가 시장에 뿌리를 내렸고 고생길이 훤해 쳐다도 보지 않았던 해외진출은 남의집 잔치가 됐다.
그 시절이 30여년이 다되가고 있지만 기성세대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대다수가 그렇다는 얘기다. 그 좋았던 시절을 허송세월 보내고 이제는 일감이 떨어져가니 그동안의 관례만 더욱 돈독히 하려고 한다. 이게 틀렸다고 하면 “라떼는”하면서 귀를 닫는다. 답지가 아닌데 우기다보니 투명해져가는 사회 속에서 법 테두리만 강해졌다.
아집과 규제로 점철된 업계에 사람이 올리 만무하다. 산부인과나 소화기내과, 정형외과 등은 억대 연봉을 준다해도 사람이 없다. 삼성이나 SK가 전액장학금을 약속하고 팍팍 밀어주겠다는 반도체업종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지원이 없다시피하고 업계 연봉이 문과 수준인 엔지니어링업계가 사람 없다고 명함 내밀 급이 안된다.
뽑고 싶은 인재는 다 저기에 있으니 못마땅해도 지방대 출신을 뽑는다. “요즘 것들은 실력은 모자라고, 버릇은 없는데 끈기도 부족하다”고 혀를 차면서 우월감에 젖어있다보니 차부장급이 할 일을 상무, 전무가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앞이 안보이지만 돌고 돌아 결국 해결책은 기성세대의 변화에 있다. 합산벌점 시행을 막지 못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규제와 간섭이 업계를 둘러싸고 있다. 그저 수그리기만 했던 과거를 끊어내고 흉내만 내는 PM이나 말만 무성했던 설계사 주도 턴키도 다시 꺼내들어서 부딪쳐야 한다. 동시에 후배 엔지니어들이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최소한의 책임이자 보답이다.
시야가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