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국 이야기①] 캐나다 건설업계에도 영업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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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국 이야기①] 캐나다 건설업계에도 영업은 존재하는가?
  • 김성열 기자
  • 승인 2023.02.14 15: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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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랜만에 한국을 다녀왔다. 토목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주로 만났는데 어느새 은퇴를 목전에 둔 나이가 됐다. 요새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다들 “영업하지”라고 대답했다. 하는 일 중에서도 영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건축‧토목에서의 영업은 일을 많이 따오기 위한 행위다. 한국에서는 로비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발주처가 내는 사업을 로비를 통해 되도록 많이 따오는 것을 영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설업계에서 영업의 본질은 기존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공정한 시스템이 작동할 경우, 업체 간 변별력이 거의 없어서 프로젝트 수주 결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누구도 일을 딴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고 누구든지 수행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업으로 시스템을 벗어난 평가 과정을 만들어낸다. 영업이 다른 것보다 더 우선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영업의 실상은 마치 교통신호체계가 없는 사거리에서 보행자 개개인의 능력에 의존해 길을 건너는 현상과 같다. 예를 들면 일부 동남아시아 나라의 도로에서는 보행자,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들이 뒤엉켜 있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면 교통법을 지키는 사람이 길을 건너지도 못하고 손해만 본다. 알아서 눈치껏 길을 건너고 멈추고 해야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구성원이 룰을 지키고 있을 때 일부가 질서를 어기는 것은 티가 난다. 다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라면 동남아 건널목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진다. 모두가 눈치를 보며 법보다 빨리 가는 것을 선호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흐름을 막기 위해 한국의 시스템은 꾸준히 발전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다시 원상복귀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서 보면, 여기서도 일을 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 직위에 있는 직원들이 발주처 직원들을 만나 로비하는 일이 주 업무는 아니다. 프로젝트가 언제 발주될지, 아니면 어떤 제도로 나올지 등에 대해 일반적인 소통을 할 뿐이다. 물론 이곳에서도 네트워킹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 또는 이직할 때 네트워킹이 잘돼있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입찰 과정에서 네트워킹만으로는 사업을 수주할 수 없다. 설계‧시공 발주는 철저하게 시스템 내에서 작동된다. 

이와 관련해서 엔지니어링데일리 기자가 질문을 했다. “어쨌든 모든 일이 사람이 하는 것인데 일하는 사람이 로비로 영향을 받으면 그게 영업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물론 캐나다에서도 친분이나 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입찰 과정, 정부 지침, 엔지니어의 윤리지침 등 각종 시스템 속에서 대부분 걸러진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부가 질서를 어기면 쉽게 표가 나서 눈총을 받듯이, 이런 사회에서 커다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한 일탈을 꿈꾸기는 쉽지 않다.

또 담당자가 이해 상충에 놓이면 스스로 밝히고 담당업무에서 벗어나야 하는 게 캐나다의 룰이다. 나중에 밝혀지면 여러모로 곤란해지고 법정에 설 수도 있다. 추후에 기회가 되면 이부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렇다고 ‘캐나다 건설업계에는 전관이란 관행이 전혀 없는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하게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필자와 같은 공무원 출신 엔지니어 퇴직자는 크게 두 종류의 퇴직 패턴이 있다. 첫 번째 패턴은 진짜 은퇴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사회보장제도가 나름 잘돼있고 공무원연금이 있으니 특별한 경제적 이유나 욕심이 없는 한 중산층의 삶을 영유할 수 있다고 여겨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두 번째 패턴은 퇴직 후 사기업에서 일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전관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캐나다에서 대다수 엔지니어는 60세 전후로 퇴직하게 된다. 많은 수의 엔지니어들이 퇴직 후 사기업에서 일하는데, 전관으로서 입찰단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30여년 이상 엔지니어로서 축적된 경험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일하게 된다. 본인의 의지에 따라 파트타임으로 일하거나, 풀타임으로 일하기도 한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 일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사기업에서 전관을 고용하는 주된 이유도 엔지니어로서 경험과 업무수행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프로젝트 진행 중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면 발주처 직원들과 소통이 원활하고 내부의 프로세스를 잘 알기 때문에 해결책을 가져올 가능성도 높다. 한국처럼 단순히 사업 따오는 영업맨이 아닌 발주처와 친한 실적 좋은 엔지니어 정도라고 보면 된다.


내가 이번 연재 글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한국 업계에 소문으로만 들리던 여러 해외사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맞는 말과 부정확한 말이 혼재돼 있다 보니 이왕이면 현직에서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전해 듣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이 글을 통해 독자나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해외시스템을 참고하고 한국의 건설업계 시스템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앞으로 작성할 글에는 개인적인 시각이 많이 반영될 것이다. 필자가 건설업계의 다양한 세대 사람들과 소통도 제한적인데다가 전적으로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해서 업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엔지니어링업계 경험보다 캐나다에서의 삶이 더 길었기 때문에 문화, 가치관 등의 차이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 부분을 감안해서 글을 읽어주길 당부한다. 아무래도 한국을 떠난 지 오래돼서 최근 동향이나 시스템에 대해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기사의 댓글이나 이메일로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면 참고해서, 되도록 정확한 비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필자 소개 : 필자는 현재 캐나다 온타리오주 교통부 수석 교량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지난 1990년 동국대학교 토목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엔지니어링사에서 근무하다가 캐나다로 이민을 선택하게 됐다. 캐나다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엔지니어링사에 입사해 약 10년 정도 설계 업무를 맡아 왔다. 이후 온타리오주 교통부로 이직해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벤 허(Ben Huh)
캐나다 온타리오주 교통부 수석 교량 엔지니어Ben.Huh@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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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현 2023-05-03 10:50:08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가 연재가 기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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