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세계 유일의 행정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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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전세계 유일의 행정엔지니어링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3.02.20 10: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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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일 기자
조항일 기자

“20년전이나 지금이나 설계는 매한가진데 현재는 업무의 90%를 탈나지 않게 하기 위한 일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만난 한 엔지니어의 말처럼 요즘 엔지니어링사는 본업인 설계보다 잡무를 더하고 있다. 사실 설계야 이미 컨트롤 C+V된지 오래라 업무시간이 줄어야하는게 맞는데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사업 하나에 신경써야할게 너무 많다는 얘기다.

일단 설계를 하면 발주처 평가위원회부터 통과해야 한다. 사업이 끝나고 나면 문제가 없었는지 후속평가를 받기 위한 서류를 또 만들어야 한다. 여차저차 시공에 들어갔는데 재수없이 설계가 잘못됐다는 누명이라도 쓰면 짧게는 해명으로, 최악은 법정으로 가서 풀어야 한다. 돈이 얼마가 들지 계산기 두드려보는건 차후 문제다. 간략하게 표현해서 이정도지 세부적으로는 무수히 많은 지난한 과정이 껴있다. 하나의 설계품을 둘러싸고 행정업무에 소진되는 에너지가 너무 크다. 행정하라고 공무원이 있는건데 법이며 규제가 몽땅 엔지니어에 떠넘겨져 있다.

숙련만 되면 기술력도, 자격증도 필요 없는 행정엔지니어링을 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나이좀 있으면 석박사급, 주니어 엔지니어도 4년제 학사에 기사는 기본이다. 그야말로 연비가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엔지니어링사들이다.

아무리 정년이 보장됐다 하더라도 손만 빨 수 없으니 역량을 키워야 할텐데 칸막이 규제가 심한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특히 세계적인 트렌드인 설계주도형PM은 겨우 걸음마를 시작하는 수준이고 그마저도 시장 정착까지는, 아니 될 수 있을지 자체가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덩치 큰 시공사가 움직이지 않으면 되는게 없다. PM활성화가 불가능한 이유다.

그렇다면 설계+행정만이 우리나라 엔지니어들의 유이한 먹거리라는 얘긴데 주력인 설계조차도 손바닥을 벗어나게 생겼다. 돈 좀 있는 회사들은 자체적으로 설계자동화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고 있으니 조만간 엔지니어가 설계를 할 필요가 없는 날이 멀지 않았다. AI가 빈 그림을 채워넣고 종합적 사고를 요구하는 논문도 쓴다는데 너도나도 뻔한, 이미 나올만큼 나와있는 설계도면이야 데이터러닝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뛰던 박지성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은 강력한 체력과 뛰어난 축구지능을 가감없이 발휘하던 프리롤로 뛰던 때다. 엔지니어링도 창의가 무기다. 해외시장 점유율이 1%도 안되는 상황에서도 수많은 개발도상국에 도전하면서 수주를 하고 있는 건 얼마없는 업계의 창의성이 발휘된 결과다. 하지만 엔지니어링은 축구가 아니다. 개인의, 한 업체의 노력으로 판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엔지니어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창의성을 펼칠 수 있는 정부의 제도개선이 절실하다. AI가 단순검색 엔진에서 창의성을 탑재하는 시대인데 우리만 엔지니어의 창의성을 빼앗고 있다. 한국형 행정엔지니어링으로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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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0 13:30:17
설계자동화가 실제로 상용화된다면 설계사들은 피만 빨리고 버려지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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