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금쪽이로 커버린 종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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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금쪽이로 커버린 종심제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3.04.05 16:2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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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일 기자
조항일 기자

“우린 로비 안해요”

공공연한 사실을 표면적으로나마 부정했던 엔지니어링사들의 민낯이 종심제로 인해 드러나고 있다. 당초 기술력만 있으면 된다던 종심제는 사실상 전관영업과 수주의 상관관계가 밀접하다는 것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종심제 출범 전부터 우려되던 문제가 특별한 반전 없이 시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다분히 예상됐던 결과다. 최저가낙찰시절에도 끊어내지 못한 로비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기술력을 중시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판이 바뀔리 만무하다. 그저 가격→기술력으로 항목의 비중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기술력의 실체는 전관영업이다.

전관의 보유력과 수주의 상관관계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현재 업계의 전관은 약 200여명 안팎으로 추정되는데 이들 대부분을 상위사가 보유하고 있다. 제도가 시행된 이후 4년간 정부가 발주한 종심제 건수는 전체 80%를 차지했고 이중 90% 이상을 상위사들이 쓸어담았다.

그런데 지난해 종심제 평가위원 풀이 확대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국토부는 평가위원 풀을 단기간에 100명→200명→500명으로 확대했다. 종심제 발주건수가 많아지면서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평가위원 숫자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업계 입장에서는 영향력있는 전관의 숫자가 5배나 늘어나게 된 셈이다.

이때야말로 힘을 합쳐 제동을 걸었어야 했는데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최선보다는 차선을 선택했다. 어차피 확대될거라면 평가위원 구성을 내부위원, 즉 발주처 출신으로 채워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응당 받아들이고 내부위원 비율을 90%까지 끌어올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짜고치는 판이 아닌가 싶지만 로비의 대상이라도 줄이자는 업계의 깊은 속내가 작용한 탓이다.

스스로 발주처와의 종속관계를 강화한 호구같은 모습에 이제는 타부처도 숟가락을 얹겠다고 나섰다. 최근 행안부는 지방계약법 개정을 통해서 지자체 사업에서도 종심제(종평제)를 하자고 나서고 있다. 하다하다 이제는 지자체 출신 전관도 모셔가라는 소리다. 이것만은 너무하다 싶었는지 종심제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대형사들이 뒤늦게 중소사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종심제 축소 방안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글로벌하면 다 좋다는 정부의 사대주의가 강하고 일부 대형사는 안정적인 수주를 위해서는 현 상황을 유지하는게 이상적이라며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누군가는 아예 종심제와 전관의 상관관계를 부정하기까지 한다. 모두가 속내를 숨기고 있다.

분명한건 로비로 점철된 현재 엔지니어링업계의 판도를 이끌어가는게 누구인지다. 돈 주는 회사가 “채용해 줄게”가 아니라 전관집단이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냐”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주인인지는 명확하다. 이러한 현실을 모른체하고 엔지니어들에게 사명감만 강조하는 것이 그들의 탈토목을 얼마나 부추기고 있는지 오너와 CEO들은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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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 2023-06-08 09:19:31
기자님 글 응원합니다...

엔지니어 2023-04-05 17:03:37
정말 개탄스럽습니다.....엔지니어링판이 발주처 전관들 놀이터가 됐습니다.....그들은 부끄러움도 없습니다.....정말 개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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