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재입법 리스크를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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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재입법 리스크를 기회로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3.05.1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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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일 기자
조항일 기자

설계와 건설사업관리로 구성된 엔지니어링과 사망사고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매우 낮다. 그 얼마 안되는 확률도 현장에서 운영되는 건설사업관리의 지분이 대다수다. 설계를 잘못해 사고가 나는 경우는 없다. 세계 탑급의 인프라 선진국인 일본의 것을 배끼면서 시작된 한국의 엔지니어링인만큼 설계대로만 지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설계로 사망사고가 났다면 현장에서가 아니라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한 산재 확률이 더 높을거다. 이마저도 요즘에는 업무중복도가 200~300%로 고정돼 있다보니 설계로 인한 과로사 확률은 사실상 제로다.

1분기 합산벌점 내역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충분하다. 주요 상위사의 최근 2년간 벌점 현황을 보면 벌점관리가 완벽에 가깝다. 관리우수비율은 만점기준인 95% 이상이 평균이였다. 경호와 신성 단 2곳만이 PQ감점 불이익 대상이 됐다. 제도 시행에 따른 철저한 대비로도 볼 수 있지만 건설엔지니어링과 사고의 인과율 자체에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엔지니어링업계가 합산벌점 도입 논의 과정에서 설계와 건설사업관리를 분리해달라는 요구를 괜히 한 게 아니다.

지난달 합산벌점 무사망사고 인센티브 적용을 건설엔지니어링까지 포함하는 개정안이 법제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안 통과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던 업계의 당황스러움이 곳곳에서 느껴지고 있다. 국토부는 업계의 의견을 다시 모아 재입법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지만 빨라야 하반기라는 전망이 대다수다. 업계는 재입법과 동시에 무사망사고 최대 경감 기준(59%)과 무벌점 마일리제의 즉시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국토부 앞에만 서면 작아졌던 업계의 모습과 대조적일 정도로 강경한 태도다.

타고난 장사꾼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이윤을 극대화한다고 했다. 입법을 재수하게 된 마당에 전보다는 나은 결과를 가져와야할 게 아닌가. 대부분이 추가적인 논의보다는 기존 안을 다시금 끼워넣기 바쁜데 합산벌점 도입 과정에서 나왔던 설계와 건설사업관리의 분리 카드를 다시한번 꺼내볼 만 하다. 엔지니어링업계의 무사망사고 인센티브 적용에 대해 오랜시간 뻣뻣한 태도로 일관했던 국토부가 이 사단을 만들었다면 일종의 빚을 남긴 셈이니 말이다.

시기적으로도 설계와 건설사업관리의 분리 제안은 필요하다. 최근 GS건설이 시공중인 아파트 주차장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달전에는 같은 브랜드의 서울역 인근 아파트 단지의 외벽이 갈라지는 일도 있었다. 광주에서 현대산업개발이 시공중이던 아파트가 붕괴된게 불과 1년전이다. 건설자재의 가격폭등으로 온갖 음모론이 판치는 상황에서 규제와 관리를 정책의 이데아로 삼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법망 강화의 명분이 차고도 넘친다. 시장의 성격이나 규모가 다른 엔지니어링에 어떠한 풍파가 몰아칠지 예측할 수 없다. 기왕에 입법 재수를 하게 됐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닌건 아니라는 납득이 필요하지 않을까. 설계는 억울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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