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INFP형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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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INFP형 산업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3.07.27 15:0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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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일 기자

최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그 고속도로’로 엔지니어링, 아니 용역업계는 그 어느때보다 많은 조명을 받고 있다. 필자에게는 익숙한 회사들이지만 99%의 국민들은 생소할만 한 회사의 이름들이 연일 매스컴을 탔다. 야당의 정치공작이건 아니건 간에 타당성조사를 마친 국가사업이자 대통령 공약사업을 백지화시키겠다고 할 정도로 날이 서있는 국토부장관의 분노에 사업에 참여한 용역사들은 그저 숨만 쉬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논란과 별개로 일부 기사에는 “용역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이라는 댓글이 꽤나 보인다. 용역, 용역 거리는 기자나 국회의원들에 대해 못마땅한 사람들이다. 노이즈마케팅이라도 이 기회에 제대로 알려보자는 심정에서 표출된 의견들이다. 분명한건 아무리 엔지니어링이라고 떠들어봤자 용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쓰라림만이 커질 뿐이다.

책임소재는 분명히 하고 싶다. 용역업자 타이틀을 벗지 못하는 이유는 엔지니어링업계의 책임이다. 일 특성상 발주처라는 정부 고객을 상대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비굴해지고 속박되온 선택을 한 것은 엔지니어링업계 스스로다.

고인물을 걷어낼 생각은 있어도 단체행동이 아니면 안된다. 뒤에서는 모여서 호박씨를 까는데 앞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너도나도 천연덕스럽게 로비를 계속한다. 임직원들을 대표로 목소리를 내야할 사람들마저 일개직원과 똑같이 익명성에 숨어서 얘기를 하니 바뀌는게 있을리 없다. 세 번이나 탄원서를 낸 종심제나 지방계약법, 하도급 반대 등도 개인보다는 무리에 몸을 숨겼을 뿐이다. 탄원서 제출마저 회사 실무진 모임이 했다. 3년전 "통과되면 다 죽는다"면서 온갖 호들갑을 떨었던 합산벌점 문제 때도 대표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표가 나서면 스스로 “급이 떨어진다”는 심도있는 판단에서였겠지만 정부입장에서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구나” 생각하는게 타당하다.

밖에서는 한없이 비굴해지지만 안으로는 모두가 이재용이다. 회사의 치부나 비밀이 새어나가면 내부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직장인이라면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월급에 대한 불만이나 사표 얘기도 엔지니어링업계로 넘어오면 딱딱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인다. 불편한 기사가 나오면 취재원 보호 의무를 가진 기자에게조차 “제보자가 누구냐”며 무지성하게 묻기를 서슴치 않는다. 세명만 모여도 정치질을 하고 나랏님, 회사 욕을 하는게 인간의 욕구일진데 그저 굽신거리며 이끌어 온 입장에서는 조금의 흠집을 버텨낼 생각도, 맷집도 없다.

요즘 뜨는 MBTI로 치자면 엔지니어링산업은 INFP 타입이 딱이다. INFP는 ‘수줍음이 많고 주위의 시선에 대해 의식을 많이 하면서 비판에 약하다. 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가치보다 높게 평가한다’고 돼 있다. 개인에게 적용하는 MBTI 성향에 좋고 나쁨은 있을 수 없지만 창의를 통한 이익이 필요한 시장경제에서는 최악의 유형이다. 기술자 타이틀보다 회사의 직급을 우선하고, 소신보다는 발주처의 비위를 맞추는 걸 본업으로 삼는 한 엔지니어링은 용역을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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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23-07-31 08:53:13
설계사 출신이세요??? ㅋㅋ뭐이렇게 잘아시지

기술경영 2023-07-31 07:56:34
기자님 글 공감합니다. 엔지니어링회사의 젊은 오너로서, 좀 더 파워풀한 엔지니어링업계를 만들어가도록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

늙은 엔지니어 2023-07-28 10:18:56
뼈때리는 글입니디.
감사합니다. 조기자님 덕에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당당해지는 문화가 시작되어 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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