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 엔지니어링의 존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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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국 엔지니어링의 존재 이유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3.12.05 08:4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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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일 기자
조항일 기자

중국 전국시대의 한(韓)나라는 시대를 풍미한 대륙의 7개 나라, 일명 전국칠웅 중 가장 약소국이였다. 지리적으로는 진나라, 초나라, 위나라 등에 둘러싸여 있고 영토도 가장 작았다. 시황제가 천하통일을 목표로 했을 때 가장 먼저 망국이 된 것도 한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200여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는 강대국 사이의 완충지대로, 유사시에는 우리편으로 만들 수 있어서다. 쉽게말하면 탁월한 외교수완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누적된 역사다.

한국 엔지니어링의 존재 이유도 한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전세계적으로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정점이자 변화무쌍한 기후변화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엔지니어링이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관계자들은 용역이라 부르면서 무시하다가 사고가 터지면 죄인 취급을 주저하지 않는다. 건설 분야는 필요하면 시공에 편입됐다가 볼일이 다 끝나면 내쳐지는 꼴이다.

이러한 처지에도 엔지니어링이 명줄을 이어가는 이유는 한국 엔지니어링의 뿌리가 튼튼해서가 아니다. 인기는 없고, 머릿수는 줄어들고, 노조도 없는 이바닥이야말로 박봉인 공무원들의 든든한 뒷배로 안성맞춤이라서다. 다행스럽게도(?) 업계의 오너, CEO들은 여전히 로비에 의한 수주 방식을 놓지 못하고 있으니 금상첨화다. 정부는 그저 명분만 만들면 된다. 기술력을 위해, 중소기업보호를 위해, 투명한 결과를 위해라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제도들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공무원의 안위를 최우선에 놓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제 행안부가 여기에 빨대를 꽂으려 하고 있다. 올초 행안부 회계제도과는 지자체 계약담당관을 대상으로 지방계약법 개정안 TF를 발족했다. 국민들이 안전하게 시설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업계에서는 국민안전과 회계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의아해했다.

1년여의 TF가 끝난 현재는 그 의도는 명확해졌다. 행안부는 벌점부여방식과 지자체 PQ 자율권 부여 등을 통해 계약담당관들의 영향력 행사를 법적으로 정당화했다. 평소 기술부서에만 인사를 하고 계약담당관들에게는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는 현실이 불만이었다는 구체적이고 노골적인 후문도 들린다. 기술부서와 계약·행정부서 간의 알력다툼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래나저래나 엔지니어링업계만 얻어맞게 됐다.

국토부도 그래왔던 일에 행안부가 빨대를 하나 더 꽂는 문제냐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떠한 명분으로 또 다른 제2, 제3의 부처들이 등장할지 모를일이다. 이미 그들의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횟수를 셀 수 없을만큼 호흡기를 뗐다 붙였다 하면서 망가진 시장이다. 가장 큰 문제는 리먼사태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엔지니어링업계에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너도나도 빨대를 꽂을 수 있던 호시절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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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맨 2023-12-12 14:02:40
조항일 기자님 제목에 대한 답은 : 재수없게 첫단추 잘못끼워서 입니다!

고라니 2023-12-05 10:58:37
졸라 고독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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