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사회주의 엔지니어링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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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사회주의 엔지니어링의 한계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4.01.17 17:21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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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지니어링계를 대표하는 두 가지 말로 ‘1% 영업이익률’과 ‘탈토’가 꼽힌다. 풀이하면 영업이익률이 낮으니 임금과 성과급도 낮아지고, 소위 인재라고 할 수 있는 공대생들이 더 이상 엔지니어링업종에 지원하지 않거나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행태는 대한민국 엔지니어링산업의 상당량이 자본주의가 아닌 사실상 사회주의 요소를 채용하고 있어서다.  

한국엔지니어링에는 수많은 사회주의적 항목이 있다. 단적인 예로 중복도와 청년가점을 들 수 있다. 한 엔지니어가 연간 수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200~250%로 한정시키는 것이 중복도다. 애초에 대형사를 중심으로 고실적자가 모든 프로젝트를 싹쓸이하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10년전 건설기술진흥법 개정안 당시 시행됐다. 동시에 실적기준도 크게 낮춰 버리니, 예전에는 몇몇 고산준봉에 서있던 모습에서 작은 구릉이 연속되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긍정적인 측면은 모두가 평등해졌다는 것이고 서류엔지니어와 실무엔지니어가 그나마 어설프게 맞춰졌다는 점이다. 또 고용이 늘어나다보니 엔지니어 입장에서 예전보다 좋은 조건에 이직이나 취업이 이뤄질 수 있었다. 전관들도 중복도가 깨끗한 상태에서 나오니 값어치가 상승했다. 특히 중견사들이 대거 약진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매년 총인원의 3%를 뽑아야 0.3점의 PQ가점을 받을 수 있는 청년가점도 사회주의 요소다. 박근혜 정권 당시 시행됐던 이 제도는 취업률 상승과 이공계살리기가 명분이었다. 0.1점차에 당락이 바뀌는 엔지니어링사 입장에서는 울며겨자먹기로 채용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청년채용 3%가 단리가 아닌 복리라는 점, 이공계 학생들은 지금도 예전에도 취업전선에서 갑이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취업선호도가 공기업-대기업 한참아래 엔지니어링사가 위치해 있다 보니 사람 뽑는 것 자체가 고역인 셈이다. 아무도 살려달라고 안했고 가고 싶지도 않은데 정책담당자들은 이공계는 어렵고 저들을 살려야 하니 무조건 채용을 하라고 정책을 세운 셈이다. 

두 제도 모두 결국은 더 많은 인원을 강제적으로 고용하라는 정책이다. 인원이 많아진다는 것은 곧 저부가가치를 야기한다. 파이는 똑같은데 나누는 사람이 많아지면 당연히 먹을거리는 적어진다. 로스쿨로 인원이 늘어난 변호사는 날로 값어치가 낮아지고 의대정원을 유지한 의사는 날로 고액연봉을 경신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부가 PQ를 통해 엔지니어링업계의 고용을 강제하는 이면에는 ‘나랏돈으로 사업하는 업계’라는 인식이 강해서다. 엔지니어링을 저부가가치 노동집약형 제조업으로 보지 않았다면 과연 강제 고용정책이 가능한가 싶다.

최근 경영자들은 구인난을, 청년층은 취업난을 호소하고 있다. 청년층 입장에서 대기업과 전문직, 그리고 공기업 외에 중소기업을 취업할 바에야 그냥 쉬는 것을 선택하는 풍토가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취업자들이 강제인력 충원으로 물에 물을 타는 그저 그런 대우를 받는 엔지니어링업계에 지원할 리 만무하다. 기존 인력들도 경력 쌓아 올라가봐야 뻔한 연봉, 뻔한 대우의 이 업계에 애정을 가질 리도 없고 기회가 되면 탈출하고 싶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은 3만달러 중반에 걸쳐 있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기준인 4만달러, 5만달러로 가기 위해서는 국가 전체적으로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의 요체는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산업, 나아가 4차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엔지니어링산업은 혁신을 논하기에는 아직 제조업과 정부지배적인 관료주의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0년간 엔지니어링 정책 대부분이 모난데 없이 모두에게 나눠주고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과하게 말하면 소련의 집단농장인 콜호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무조건 자본주의는 옳고, 사회주의는 그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리영희 선생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지 않았나. 다만 현시점의 엔지니어링산업은 지나치게 한쪽 날개로만 날아 혁신도 발전도 없는 것이다. 다 죽은 한쪽 날개를 살리기 위해서는 능력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일을 따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있더라도 이런저런 규제와 강행규정은 싹 다 밀어내고 고부가가치와 생산성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한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재가 귀해져야 하고 귀한 인재는 고임금이 갖춰져야 한다. 높은 임금의 선망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산업은 흥하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공평함을 가장한 결과의 평등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당장 고부가가치를 실현하는 글로벌엔지니어링 시장규모만 봐도 엔지니어링산업이 건설업의 한 부속품이 아닌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한축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두루두루 나눠먹지 말고, 자본주의적으로 경쟁을 통해 능력 사람에게 더 많은 일과 부-富가 몰리게 하자.

정장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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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맨 2024-01-19 08:55:37
이런 형이 국회를 가야 엔지니어링산업이 조금이라도 좋아질텐데

민주주의 엔지니어 2024-01-18 16:42:17
중복도는 김영삼 정권(94년)에 처음 도입되었고,
중복도를 강화시키는 법은 박근혜 정권(13년)에 개정되었음
아이러니하게 본 기사의 사회주의 요소(중복도와 청년가점)를
보수정권에서 도입하고 강화시켰다는 논리가 됨

또한 중복도와 청년가점이 사회주의 정책인 지는 고개가 갸우뚱 됨
이 제도는 사회주의 정책인 복지 포퓰리즘도 아니고, 평등 정책도 아닌
책임기술자가 타 공정에 과도하게 참여함으로써
성과 품질이 저하되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하였고,
젊은 인재를 엔지니어링 업계로 강제 유도시키려는 단순한 관치정책일뿐

같은 직급, 같은 경력에서 실력차이를 보여줘도
호봉제로 같이 승진하고, 비슷한 급여를 주는
각 회사들의 오너들이 선택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건 아닐까

김하준 2024-01-18 13:35:24
기사 내용 오기 "매년 총인원의 3%를 뽑아야 0.3점의 PQ가점을 받을 수 있는 청년가점도 사회주의 요소다. 문재인 정권 당시 시행됐던 이 제도는---" 에서 문재인 정권이 아닌 박근혜 정부때 도입된 악법임

민태산 2024-01-18 09:58:29
업계도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종종 1000억대 대규모 공사가 시공사들의 보이콧으로 속속 유찰이 된다는 기사를 봐왔다. 적정 공사비에 미치지 못한다는게 그 이유다. 하지만 이 업계는 그런게 없다. 이 업계에 초급은 전체 기술인의 5%미만 수준이다. 그런데 나이 50 넘은 기술인들을 초급 댓가 받고도 밀어넣는다. 스스로 후퇴하는 길을 택하는 업계의 반성이 동반되지 않으면 발주처는 바뀔 이유가 없다. 30억짜리 용역을 20억에 발주하고 낙찰률 적용하면 최초 금액의 절반밖에 되질 않아도 벌떼처럼 달라드는 습성을 버려야한다.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 너무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이쁘다 이쁘다 해야 이뻐진다. 귀하다 귀하다 해야 귀해진다. 엔지니어가 국가에 기여하는건 명확하다. 모두 귀한 존재들이다.

민태산 2024-01-18 09:21:55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끊긴 대한민국은 100년 이내에 인구가 1/3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젊은 엔지니어의 순유입 없이 폐쇄회로 안에서 기술자들의 평균 연령은 매년 한살씩 늘어나고 있을 뿐 더 이상 젊어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대한민국이 사라지기 전에 엔지니어링 업계가 먼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다. 1년이면 몇번씩 바뀌는 각종 제도와 법령들. 어떤 산업을 보더라도 이렇게까지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서 원하는 방향으로 복종 수준의 팔로우쉽을 보여주길 종용하는 업계는 없다. 무너진 워라밸, 전무하다시피 한 복지.. 이것이 대한민국 엔지니어링의 현실이다. 이 산업을 부흥시키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많은 걸 포기하더라도 높은 임금을 보장한다면 현재의 상황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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