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가 만들어 낸 주120시간 노동 턴키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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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가 만들어 낸 주120시간 노동 턴키엔지니어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2.04.18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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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당 3천원 야근수당, 턴키발주 줄어드니 갈 곳 잃어
현행 법체계, 스페셜리스트는 배제하고 전관예우하게 돼

지반공학 전문엔지니어 J상무는 일년전 턴키전문 엔지니어링사를 퇴사하고 Y사로 옮기고 나서야 가족과 저녁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J상무가 전 회사에서 근무한 시간은 많게는 주당 120시간.

일년에 절반은 새벽 3~4시에 퇴근하고 제출기안이 다가오면 밤샘도 밥 먹듯 했다. 합사에서 야근만 80시간을 하지만 야근수당으로 받은 돈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100여만원 뿐이다.

엔지니어링업의 높은 노동강도에 대한 불만이 SOC발주 급감과 맞물려 업계 전반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부터 선제적으로 시행된 구조조정과 야근수당 삭감 때문. 현행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은 40시간이고 야근 즉 초과근무에 대해서는 주간근무의 1.5배를 지급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칙이 지켜지는 엔지니어링사는 없다.

“주간근무의 1.5배는 고사하고 시간당 3천원정도 받고 있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지만 지난해부터 이나마도 중소엔지니어링사는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노동조합이 있는 대형엔지니어링사의 경우 1.5배 규정을 지키는 곳도 있지만 야근시간을 월 20~30시간으로 한정해놓고 있어 어차피 한계성은 있다.”

작년부터는 ‘야근을 되도록 하지 말라’라는 지침이 다수의 엔지니어링사에서 하달됐다. 하지만 현실은 정규근무시간 이상을 야근에 매달려야 가능한 상황. 결국 야근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야근은 하되 야근비를 줄 수 없다’라는 말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한 엔지니어는 “엔지니어링업계의 임금체계는 철저하게 야근수당을 받는 공장노동자와 수당없이 높은 임금을 받는 건설사의 단점만 받아들이고 있다. 화이트와 블루의 중간인 그레이카라가 엔지니어의 현주소다”고 푸념했다.

높은 노동강도에 스페셜리스트 다 떠나
현 엔지니어링 법제도 아래에서는 엔지니어의 최소한의 행복추구권과 고용의 안정성을 담보해 낼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 분야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를 설계도면 제조기로 전락시킬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것.

구조, 지반, 철도 등 1,2의 분야만 사업자신고를 하고 턴키/민자 등 기획제안형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전문엔지니어링사는 노동강도가 최고다. 기획제안형사업의 특성상 한정된 시간내 설계를 마쳐야 돼 밤낮의 경계가 없이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평일 저녁은 고사하고 주말에도 합사에서 끊임없이 일만하다보니 건강은 악화되고 인간관계는 끊겼다. 애 만들 시간조차 없다는 동료들간의 농담도 농담 같지가 않다.”
십수년 턴키설계를 통해 한분야에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해도 국내 법제도하에서는 이들이 설자리는 많지 않다. 우선 일년에 수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한정돼 실적관리가 일반설계에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감독하는 프로젝트마다 참여자로 등록되는 공무원 및 공사직원과는 경쟁자체가 되지 않는다. 스페셜리스트를 포기한 엔지니어가 갈 곳은 건설사 및 발주청을 대상으로 한 영업직이다. 하지만 이나마도 전관예우를 받는 관출신에 한참 밀린다.

업계 관계자는 “현 국내 엔지니어링산업구조는 건기법, PQ으로 인한 진입장벽으로 기술력을 가진 엔지니어링사나 엔지니어가 끼어들 틈이 없다. 특히 관출신 및 높은 영업비로 인한 고비용 구조로 인해 실제 엔지니어 처우는 경기가 좋던 나쁘던 개선될 수 없는 것”이라며 “최근 발주가 줄어들며 수주력이 있는 관출신만 남고 스페설리스트가 해고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어차피 수주만해서 하도급을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풍토도 만연해있다. 결국 기술력 있는 엔지니어가 이탈되는 현 구조아래에서는 엔지니어링의 발전과 해외진출은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기사작성일 2012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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