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下之下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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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下之下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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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0.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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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무제(武帝) 때 소수의 병력으로 대군을 상대하다 패한 장수 이릉을 두둔했다는 이유로 남자의 생식기를 잘라내는 궁형을 당한 사마천. 2년 후 사마천은 중국 최초의 사서(史書)로  상의황제부터 무제까지 2,000년간의 진(秦) 한(韓), 위(魏), 제(齊), 초(楚), 연(燕), 조(趙)의 흥망성쇠를 인물중심으로 다룬 명저 사기(史記)를 완성했다.

사마천이 궁형이란 치욕을 감내하며 집필한 사기 내용 중 왕의 치세는 이렇다.

제일 좋은 정치는 백성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 이익으로 유도하는 것이고, 세 번째가 도덕적으로 설교하는 것이다. 아주 못한 건 형벌로 겁주는 것이고, 최악의 정치가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 극한의 고통과 수치를 준 무제의 폭정을 사마천은 글로써 훈계한 셈이다.

수년전부터 엔지니어링 일각에서 발주방법의 글로벌화, 발주처의 부당함 그리고 엔지니어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술집에서나 토로되던 부당함은 언젠가부터 포럼, 세미나, 언론기사를 통해 공식화되고 있는 것이다.

듣는 발주처 관료 입장에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한 발주처 관료로부터 "용역업자가 시키는 대로 일이나 할 것이지 세상이 좋아지니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며 업계를 선동한다"는 말을 들은지로부터 반년이 지난 최근, 발주처의 업계인사 탄압은 노골화되고 있다.

프로젝트 발주 및 추진방식을 글로벌화하자는 엔지니어들은 줄줄이 발주처로 소환돼 엄중한 경고와 함께 출입정지를 받았다. 해당엔지니어는 자신의 소신으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입을 닫았다. 사실 글로벌화라는 것을 뜯어보면 현행 국토부 중심의 발주체계를 전면개편하자는 것과 같다. 때문에 발주처 입장에서는 밥그릇을 빼앗긴다는 위기감에 문제인사를 하나하나 불러 압박하는 것이다.

"유신정권 때는 말 안 들으면 잡아 가뒀는데, 지금은 좀 더 세련되게 밥줄을 끊어버린다" 사마천에 정치 관점에서 이 상황은 관료가 엔지니어에 위에 군림해 설교하고, 형벌로 겁주고 있는 것이다. 이뿐인가. 전현직 관료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면 0점대의 QBS 점수를 받는 합법적 냉대도 감수해야 한다. 똑바로 안하면 밥줄이 끊긴다고 끊임없이 겁주고 겁주고 겁주는 것이다.

허위서류를 제출했다며 설교하고 형벌을 줬지만, 빈약한 논리로 다투다 재판에서 패소한 수출입銀은 행정제재를 민사적통지로 전환하면서까지 입찰제재를 이어가고 있다. 비록 법적으로는 졌지만 내가 가진 권한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업체는 끝까지 찍어내고 있는 것이다. 설교하고, 겁주다가 이제는 다투기까지 모자라 보복하는 하지하(下之下) 사례다.

급변하는 글로벌사회에서 간장종지만한 국내시장의 이권을 놓고 엔지니어를 괴롭히고 싸우는 하지하(下之下) 정책은 이제 한국의 관료들이 버려야 할 때가 됐다. 백성의 마음을 따고 이익으로 유도하는 상지상(上之上)이 꿈같은 이야기라면, 설교해 이익을 따르게 하는 중지상(中之上)의 정책도 나쁘지 않다.

엔지니어링데일리 정장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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