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엔지니어링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탐방기]하나의 線에 다섯개 길을 놓다-암스테르담
정장희 기자  |  news@eng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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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08  16: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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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는 비행기는 3일후 스키폴공항에서 떠, 56시간을 암스테르담에서 보내기로 했다.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SOC덕후가 된 필자가 여행하기엔 암스테르담은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동네다. 수많은 트램, 자전거, 자동차, 사람이 절묘하게 섞였다가 풀어지며 각자의 길을 떠날 때 DAM SQUARE 오거리의 아름다움. 모든 사람과 차량을 세워놓고 유유히 도개교를 통과하는 화물선의 여유로움도 좋다. 거대담론에 묻힌 우리의 SOC를 네덜란드의 고색창연한 SOC 그리고 그 속에 곧게 뻗은 5개의 길을 통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

   
▲ 담스퀘어 주변 자전거로 출근하는 시민들
▲권위에 대한 저항이 자전거를 대중교통으로
네덜란드 한 사람은 약 1.1대의 자전거를 갖고 있다. 자동차 수는 자전거의 1/3도 되지 않는다. 자전거 교통분담률도 약 27%가 넘는다. 매일 30%의 국민이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문제의 발단은 1968년 파리 낭테르대학교에서 학생파업부터 시작된다. 발단은 학내 문제였는데, 어쩌다보니 미국의 베트남,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하는 시위로 발전했다. “모든 권력을 상상력으로!”라는 슬로건으로 국가와 권위에 항거한 68혁명은 미국에는 히피문화를 일본에는 전공투로 번져나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가 68혁명의 정신이 된다. 자전거를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본주의 병폐인 자동차에 대항하고자 한 것. 하지만 반체제적 정신에 입각한 시민들이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나와 자동차와 자전거가 혼재됐던 71년 한해 교통사고로만 400명의 어린이 사망자가 발생했다.
커피한잔을 시켜 길가 카페에서 자전거 탄 사람을 살펴보자. 저 멀리 큰 키의 처녀가 정장치마 속 가터벨트를 시원하게 보이며,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온다. 대략 시속 35km는 되어 보인다. 그 사이 자전거 바구니에 시장을 본 노인과 유모차를 메달은 엄마자전거를 거침없이 추월하고 있다. 자비란 없다. 다리가 굵은 사람이 자전거도로의 왕이고, 물정모르는 관광객이 인도를 벗어나 자전거도로에서 거추장되면 네덜란드식 쌍욕을 들을 수 있다. 자전거는 예전에나 볼 수 있는 일명 ‘짐빠’ 스타일로 무쇠프레임에 기어가 없는 검정색이다. 보호장구 따위는 전혀 없다.
지금의 암스테르담 상황을 보면 자전거 사고가 빈번할 것 같지만, 1억km당 1명의 사망자만 발생할 정도로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비결은 사회적 합의와 시스템 구축이다. 단지 안전모나 씌우고 천천히 달릴 것을 강요한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우선 도로를 인도, 자전거도로, 차로, 트램으로 4등분해 철저한 독립성을 인정해 줬다. 자동차 입장에서는 자전거에게 25%의 도로지분을 빼앗기게 된 셈이다. 신호체계도 4개 주체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정비했고, 4세에서 12세까지 자전거교육을 정규교과에 편입시켜 졸업시 사이클리스트라는 자격을 부여시켰다. 암스테르담 도로는 75%가 무공해 교통수단이고, 그나마 25%인 자동차도 엄격한 배출가스 규제로 매연이 ZERO에 가깝게 됐다.
   
 
그 결과 현재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는 대중교통 수단이 됐다. 자전거가 한국처럼 사치품일 필요도 없고, 굳이 자전거슈트를 입을 필요도 없다. 전국토가 평평해 고단기어보다 허벅지 힘을 키우는게 효율적이다. 단순하지만 튼튼하게 실용적으로, 네덜란드인에게 자전거는 여가가 아닌 생활이다.

▲존경받는 엔지니어, 느린 SOC
17세기 후반 항해시대의 패권을 가리는 영란전쟁 전까지만 하더라도 네덜란드는 식민지확장이 아닌 무역을 통해 제국주의를 실현한 국가다. 홀랜드인들은 물류의 소통을 위해서는 초고속대량수송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국토에서 가장 높은 곳이 200m일 정도로 평평하고 낮은 나라-Pays Bas인 네덜란드는 제방을 축조하며 수자원을 관리할 수 있었고, 당시로는 최단시간에 대량수송이 가능한 물길을 전국토에 건설할 수 있었다. 배 한척이면 나귀 1,000마리 몫을 하니, 물류혁명이 아닌가. 게다가 나귀는 먹여줘야 하고 이끄는 인력도 필요하다.
무역제국주의의 영광은 현재의 네덜란드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로테르담항구는 여전히 유럽 물동량의 60%를 차지하는 최대항구로 수로, 철도 등을 통해 유럽 어디라도 하루이틀이면 수송이 가능하다. 네덜란드는 한국의 반도 안되는 면적이만 전세계 농업 수출액 2위다. 농산물 수출총액은 812억유로로 네덜란드 전체수출액의 20%를 차지한다. 네덜란드하면 언뜻 치즈가 생각나겠지만, 사실 세계 최대 양파수출국이다.
자전거를 타고 풍차마을 잔세스카스를 여행하며 수로를 통한 농업과 물류혁명을 경험해보자. 가는 길은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30분가량 열차를 타고 쿠잔디끄역에 내린 뒤, 역 앞에서 영업하는 아저씨에게 자전거를 3유로정도에 빌린다. 관광객이 몰려있는 풍차마을은 스치듯 지나치고, 페달을 더 밟아 외곽으로 나가면 끝없는 지평선과 농지가 펼쳐진다. 모든 농지는 수로에 접하고 있어 물걱정 없는 천수답이고, 갓 생산한 농산물은 배로 네덜란드 전국으로 수송된다. 한가로이 풀은 뜯고 있는 소와 양들도 현지에서 도축돼 바로 식탁에 오른다.

   
▲ 네덜란드 수로는 시내외곽의 주택가와도 접해있다
수로는 주택가까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는데, 국민소득이 4만5,000달러다보니 대다수 가정에는 다양한 탈 것이 있다. 일단 가족수대로 자전거가 있고 오토바이, 자동차에 모터보트, 카약까지 완비됐다. 사실 네덜란드는 터키, 동유럽,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다들 살만큼 사는 중산층이다 보니 뭘 새롭게 바꾸겠다는 생각도 잘 하지 않는다. 잔세스칸스를 연결하는 도개교만 봐도 그렇다. 화물선이 30분 간격으로 지나는 수로에 도개교가 있다보니 수시로 3~5분간 교통이 통제된다. 거대SOC와 빨리빨리가 미덕인 한국이라면 다 갈아엎고 사장교 현수교 같은 특수교량을 놓을 법도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효율성과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 화물선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잔세스칸스 도개교
네덜란드의 대형개발사업은 19세기에 종결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내는 여느 영미권 국가와 마찬가지로 유지보수 위주의 SOC환경이 조성됐고, 대부분의 엔지니어는 해외로 진출한다. 네덜란드는 특이하게 시공위주가 아닌 강소엔지니어링사의 연합체인 NEDECO가 주도해 해외에서 컨설팅 위주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 지하철공사장 입구 사진
한국은 토건족으로 폄훼되며 건설인들에 대한 평가가 낮은 반면, 네덜란드에서 엔지니어의 위상은 상당하다. PM급이면 해외에서 연봉이 30만달러는 넘고, 기능공들도 10만달러 내외의 보수를 받는다. 받는 연봉을 떠나 자연을 개척하며 번영을 이뤘다는 네덜란드의 특성상 엔지니어에 대한 시민들의 존경은 한결같다. 일례로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 지하철공사장 입구 사진에는 TBM현장을 배경으로 엔지니어들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그런 표정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사진에는 전문사진사가 찍은 시공전과정이 세세히 기록돼 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건설현장은 무조건 더럽고 위험해 가리기에 급급한 한국과 크게 대별된다.

▲다섯 개 길의 종점, 중앙역
암스테르담 여행의 백미는 야간 운하 투어다. 20유로정도면 하이네켄에 담배를 태우면서 환상적인 조명으로 빛나는 암스테르담을 즐길 수 있다. 수로를 따라 시내곳곳을 돌다보니 그로테스틱한 매춘부가 즐비한 홍등가도, 그 옆에서 자유롭게 대마초를 피우는 홀랜드인도 만날 수 있다. 가끔 남자끼리 여자끼리 길바닥에서 뽀뽀도 한다.

   
▲ 암스테르담의 밤거리
로마카톨릭의 세습화되고 부당한 요구에 맞서 스위스와 독일에서 탈출한 개신교도의 정신 때문인지, 네덜란드는 타인을 위해하는 것 빼고는 모든 게 가능하다. 자전거도로와 수로 건설에서 구습에 대한 저항과 사회변혁의 자취를 엿볼 수 있는게 아닐까.
암스테르담 중앙역은 5개의 길이 만나는 종점이다. 나는 이곳에서 공항급행열차를 타고 15분만에 스키폴로 간다. 마지막 길 하늘길로.

정장희 기자 | news@eng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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