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규제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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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규제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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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5.2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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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조달청발로 커다란 규제 하나가 발표됐다. PQ평가 기준에 0.3점의 청년가점조항을 신설한 것이 그것이다. 총인원의 3%를 청년기술자로 뽑는데, 경력관리 수탁기관 경력확인서에 잉크가 묻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조항도 붙었다.

작년부터 예고가 된지라 중견급 이상의 엔지니어링사는 대부분이 조건을 맞추고 있다. 100점 만점의 PQ에 0.3점의 가점을 신설했을 뿐인데 각사별로 신입사원을 대거 충원하고 있는, 대단한 창조경제의 현장인 셈이다. 0.1점의 점수를 위해서 피가 터지도록 영업을 하는 업계의 특성을 제대로 짚은 관료들의 행정력에 찬사를 보낸다.

속내를 보자. 공식적 퇴직은 60세라지만 상당수 엔지니어링사의 30~40%가 60대로 포진돼 있다. 전관을 통한 로비를 영업의 근본으로 하고, PQ만점이 사업수행의 기본인 엔지니어링 업계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수년전 국토부 몇몇 발주처에서 65세 이상에게 단계별로 감점을 추진하는 PQ를 시행했지만, 인권위로부터 직업선택자유를 침해한다는 권고를 듣고 이를 철회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타업종에 비해 엔지니어링업계의 퇴직은 길고 모호하다. 고령엔지니어와 청년채용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PQ점수 때문이다.

이런 인위적 채용부양에 대해 엔지니어링사CEO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신입은 PQ가점에, 전관PQ만점자는 수주에 반드시 필요하다. 향후 발주량 감소에 대비한다면 저성과자 범위를 확대해 구조조정을 해야 하지않나." 정도가 아닐까. 퇴로가 없는데, 꾸역꾸역 앞에서 밀고 들어오면 결국은 옆구리가 터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비단 청년가점이 아니더라도 엔지니어링 정책 대부분이 PQ를 기반으로 한 숫자놀음이었다. 해외진출이 필요하면 해외가점을, 연구개발을 강조하고 싶으면 연구개발 점수를 늘리면 그만이었다. 그간 신설됐다 없어진 수많은 가감점 조항을 맞추느라 낭비된 행정력만 해도 상당하다.

정부 뜻대로 청년고용율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간단하다. 산업을 늘리고 대가를 늘리면 그만이다. 90년대 초반 대가 상승과 발주량을 늘린 결과물이 현재의 엔지니어링이다. 30명으로 시작했던 곳이 지금은 300명, 500명, 1,000명 규모의 회사가 됐다. 80년대 몰래 일을 도급받던 엔지니어도 양성화돼 지금은 수십수백명의 엔지니어를 거느린 사주다. 자본주의적이고 성장지향성이 강했다.

한국도 어엿한 선진국이 된 탓인지 모든 SOC지표가 후퇴하고 있다. 영미권 엔지니어링 사례를 굳이 참조하지 않더라도 국내재정사업을 주력으로 하다가는 필연적으로 도태될게 뻔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는 어떠한 정책을 펼쳐야 하나. SOC쇠퇴기의 한국이라면 사실 정책을 펼칠 필요가 없다. 정책은 곧 규제가 되고, 규제는 비효율을 낳게 되니까 말이다. 그저 시장의 원리에 맡기고, 정부는 후방을 지원 하는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제5차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뽑아도 뽑아도 한없이 자라나는 것이 잡초듯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규제개혁인 것 같다"라며 참초제근-斬草除根을 거론했다. 유식하고 좋은 말이지만, 엔지니어링업계의 규제는 현 정권 들어선 뒤 '뽑아도 뽑아도'가 아닌 '심고 심고'로 흘러가고 있다.

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명분이 좋다고 이런저런 정책을 끼워 넣는 방식은 이제 좀 지겹다.


엔지니어링데일리 정장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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