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좋은 건 나, 나쁜 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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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좋은 건 나, 나쁜 건 너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7.02.08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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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까지 의견수렴을 받는 건진법85,87조는 국토부 관료집단의 부조리가 응축된 법안이다. 왜 그런지 따져보자. 사망사고 발생을 전제로 하는 85조는 처벌기준을 완공시점에서 착공시점으로 확대했고, 87조는 다 모르겠고 발주처가 판단해 성실하게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않았다면 엔지니어에게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85조는 3년이상~무기, 87조는 3년 이하다.

87조를 좀 더 들여다보면 '성실하지 않음'과 그로인한 '부실시공 야기'가 주요안건이다. 공맹(孔孟)조차 분별하기 힘들었다는 '성실함'이라는 모호한 조항을 삽입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공무원의 책임회피다. 어쨌든 부실이 발생하면 책임을 지워야 하는데, CCTV로 기록하지 않는 이상 완공이 된 후 시공사의 잘잘못을 알아내기 힘들다. 결국 데이터와 도면이 남겨진 설계사에게 덤탱이를 씌우면 공무원은 한발 빠질 수 있다. 책임회피의 법제화다.

큰 권한에는 큰 책임이 따르지만 유독 한국의 엔지니어링만은 예외다. 발주처는 감독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모든 사안을 참견하지만 법적책임은 사책이나 감리단장에게 지우고 있다. 공법심의위원회도 발주처가 한발 빼고 설계의 지침을 내릴 수 있는 좋은 도구다. 실질적으로 사업의 주체세력이지만 법적으로는 책임지지 않는 비선실세 최순실과 비슷하다.

대부분 국토부 법제도가 그렇지만 87조의 나비효과는 엔지니어링업계의 근본적 적폐인 전관으로 이어진다. 돈 나오는 구멍이 강해지면 그 구멍 출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치다. 고임금과 로비비용이 수반되는 전관영업으로 인해 실력있는 엔지니어는 떠나고, 해외시장을 견인할 젊은피는 불합리한 엔지니어링업계에 발을 딛지 않게 된다.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부실성과물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국민의 세금을 아끼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보다 간단하다. 발주처가 똑똑해지면 그만이다. 민간엔지니어보다 우월적인 지식과 경험으로 정확히 업무를 지시하고 잘못을 지적하며 프로젝트를 끌어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최전선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엔지니어와 다르게 기술직이라도 공무원은 행정가의 범주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한국 엔지니어링기술력이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와 실패사례를 죄악시하고 과설계를 강요하는 풍토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냥 예전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발주청을 없애버리고 엔지니어링사가 사업을 총괄하는 PMC로 전환하면 된다. GDP 3만불 OECD국가에서 산업화시대의 유물인 비대발주청을 가지고 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선진건설프로젝트는 <책임있는 자에게 권한을 부여한다>는 원칙으로 제대로 된 권한과 대가를 엔지니어에게 부여하고,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와 상벌을 뚜렷이 하고 있다. 세계는 슬림화된 체재아래 쉼 없이 팽팽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 밥그릇권위주의에 눌려 규제나 만들고 탁상머리 행정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나쁜 것은 나랑 상관없지만, 좋은 것은 '다 내꺼'를 외치는게 관료집단의 습성이다. 비근한 예로 민관합동으로 해외수주를 했을 때다. 분명 엔지니어링사의 지분이 더 많아 ◯◯엔지니어링컨소시엄이라고 기사를 쓰면, ◯◯엔지니어링에서 바로 전화가 와 같은 컨소시엄의 공기업이 기분 나빠한다고 ××공기업컨소시엄으로 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엔지니어링사 입장에서 ××공사가 발주하는 국내사업에 참여해야 하니 눈치를 안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기자에게 부탁하는 껄끄러운 작업조차 엔지니어링사에 시키는 것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만만한게 엔지니어링사라고 자신들은 리스크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게 일상화됐다.

비대해진 관료집단이 굴러가려니 필연적으로 부조리와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할 일이 없으니 발주권을 이용해 정책적 의전이나 취하고 달콤한 과실은 모두 공무원 차지다. 동남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에 트럼프가 대권을 잡았으니 즉흥적으로 미국시장에 진출하자는 이야기로 어그로나 끌고 있다.

일 없다고 이상한 법 만들지 말고, 좋은 것만 가지고 싶은 생각은 버리고, 가끔은 책상에서 일어나서 주위도 둘러보고 세계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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