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끈적한 노사간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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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끈적한 노사간 동거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7.02.24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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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를 위시한 공화파에게 암살을 당한 직후 유언장이 공개됐다. 후계자는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카이사리온도 부장 안토니우스도 아닌 조카이자 양자 옥타비아누스였다.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에게 카이사르의 유산 반환을 요청했다. 하지만 군대를 가지고 있던 안토니우스는 18세에 불과한 옥타비아누스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결국 옥타비아누스는 유언장을 근거로 막대한 자금을 빌려 시민에게 나눠주고 카이사르기념 경기대회를 치러냈다.

갈등은 깊어졌다. 카이사르 유산을 이용해 군대를 조직한 안토니우스가 북이탈리아 속주를 공격했다. 키케로와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와 판사 장군으로 이뤄진 정규군을 급파해 뮤티나(Mutina) 벌판에서 안토니우스를 격파한다. 패잔병들은 알프스 숲속으로 패주했다.

문제는 성난시민에 쫓겨 동방으로 떨려난 브루투스가 14개 군단으로 이뤄진 군대를 일으키면서 시작됐다. 브루투스에 맞설 병력이 부족한 옥타비아누스는 난감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이자 안토니우스의 정부인 아티아가 제안했다. "북쪽에 있는 안토니와 합치면 되겠네."

백마에 엉덩이를 걸치고 안토니우스 진영을 찾아가 하룻밤을 보낸 아티아로 인해 19개 군단으로 이뤄진 연합군이 탄생했다. 그 결과 옥타비아누스는 마케도니아 빌립보에서 브루투스를 궤멸시키고 삼두정을 이뤄낸다. 물론 최후의 승자는 제정로마를 이룩하고 초대황제로 등극한 옥타비아누스 즉 아우구스투스다. 엔지니어링업계도 이들처럼 나이스한 동맹이 필요하다.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엔지니어링업계에서 노동조합이란 말은 금기어다. 25만 엔지니어, 4,000개가 넘는 회사가 존재함에도 노조가 있는 곳은 손에 꼽는다. 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마찬가지로 엔지니어도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실적만 좋다면 언제든 이직을 할 수 있어서인지 회사에 대한 충성도도 떨어지는 편이다. 당연히 노조에도 관심이 없다.

엔지니어링업계는 그간 낮은 대가와 발주처의 불편부당한 갑질로 신음해왔다. 전관을 받으라면 받고, 로비를 하라면 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모두 엔지니어 탓이라는 법을 만들어도, 공짜로 일을 하라고 해도, 돈 주는 발주처에 찍힐까 무서워 제대로된 항거한번 못했다. 형편없는 대가를 받으면서 말이다.

엔지니어링사의 진정한 사측은 정부다. 정부정책에 따라 임금과 복지 그리고 부당해고가 이뤄진다. 눈에 보이는 사업자가 과연 막강한 정부에 대항할 수 있을까. 절대불가능하다. 정부산하 업단체도 마찬가지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노사간 전략적연대다. 정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모래알 엔지니어가 뭉쳐 공동전선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업단체, 경영자가 무서워 말하지 못하는 불합리를 인(人)단체인 노동조합이 대신해 고쳐나가야 한다. 언제나 乙인 엔지니어링업계에 다수 시민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甲의 힘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깨어있는 시민이 올바른 말을 할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 아닌가.

엔지니어링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노사간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노동조합이 더 많이 탄생해야 한다. 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엔지니어링노조를 산별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지금의 건설엔지니어링노조연대회의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탕이 돼 업단체와 인단체간 정례적 만남을 갖고 연대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에 앞서 엔지니어 스스로도 문제의식을 갖고 내 경력 내 실적만 관리해 나만 잘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엔지니어링은 고학력자로 구성된 25만 엔지니어와 100만 가족을 유지시켜주는 고용창출산업이다. 게다가 다가올 4차산업혁명과 저부가가치 해외건설을 고부가가치로 전환시키기 위한 필수산업이기도 하다. 이 소중한 엔지니어링산업을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노사 서로 불편하지만 좀 더 끈적한 전략적 동거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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