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이회영과 해외진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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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이회영과 해외진출 사이
  • 정장희 기자
  • 승인 2017.04.1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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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이회영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경주이씨 가문 출신으로 구한말 10대 부자안에 들었다. 우당의 동생은 대한민국 초대부통령인 이시영이고 며느리가 고종의 조카딸, 손자가 국정원장 이종찬, 현직의원 이종걸이다.

경술국치 당시 이회영 집안은 명동일대 부동산을 대부분 소유했다. 6형제가 만주로 이주하면서 급매한 금액만 소 13,000마리, 가격은 현재가로 환산하면 600억원에 달했다. 일설에 의하면 제값주고 매각했다면 10배라도 넘게 받을 정도였다.

우당은 관습보다 사람을 중시했다. 만주로 이주한 그는 이동녕과 1911년 신흥강습소 이후 1919년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이곳은 간도일대의 무장항일운동의 초석으로 청산리 봉오동 전투에 참여한 독립군 대부분이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었다.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를 비롯해 수많은 무력투쟁을 펼쳐 일본을 패닉에 빠뜨렸던 의열단의 단장 약산 김원봉도 이곳을 졸업했다.

우당은 1932년 다렌에 독립운동의 거점을 만들려다가 잡혀 일제의 고문 끝에 옥사하게 된다. 그의 6형제 중 이시영을 제외한 5형제는 처형당하거나 굶어죽는다. 그러나 그가 설립한 신흥무관학교는 3,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대한독립을 이루는 핵심이 된다. 절망의 시대,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교육밖에 없다는 애국계몽운동의 대업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의 엔지니어링을 생각해보자. 조금이라도 SOC시장에 감이 있다면 앞으로 시장이 역L자형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선진국이 그랬으니 한국도 그 전철을 밟을 것이다. 대안도 뻔하다. 결국은 해외시장을 진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 외쳐온 해외진출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막연하고 무책임한지 우린 또 알고 있다. 돈도 떼여 봤고 로비도 해봤다. EDCF, KOICA 예산도 늘려달라고 해봤고, 재정사업에 저가투찰해 손해도 많이 봤다. 그 결과 어쨌든 아주 조금 해외진출에 성공했지만 꺾여가는 시장상황을 막기에는 중과부적이다.

결국 현지화만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우리가 아닌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한다. 소규모 지사로는 광범위한 신시장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전 한국종합기술 이강록 사장 말대로 본사를 자카르타로 이전하지 않고는 답이 없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국내 엔지니어링에 필적할만한 인재를 현지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답은 우당이 그랬던 것처럼 학교를 설립해 우리의 우군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국, 일본 등 거대자본이 급속도로 동남아SOC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액션플랜은 이렇다. 개발시대의 수혜를 입었던 1세대 오너들이 솔선수범해 주요 개도국에 학교를 설립하자. 공업고등학교도 좋고, 전문대도 좋다. 전공필수는 토목엔지니어링과 한국어 정도로가 좋겠다. 이사장은 오너가 맡고, 교장은 교육학학위가 있는 엔지니어 또는 퇴임교수가 적당하다. 가끔 퇴직엔지니어가 특강도 하고, 현직엔지니어도 장기휴가를 맡아 아이들을 가르쳐 보자. 설립비용이 모자란다면 KOICA와 상의해 보자. 국가입장에서 오너들이 돈을 일정부분 낸다는데, 뭐 그렇게 싫다고 하겠나. 힘을 합친다. 3개 만들 학교를 10개라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배출된 학생들은 현지법인에 취업시켜 무럭무럭 키우자. 그들이 30~40살되면 그 나라 건설업계의 주춧돌이 돼 있을 것이다. 공무원을 하거나 다른 기업에 간다면 더 좋다. 공짜로 키워주고 가르쳐준 은혜를 잊을 수 있겠나. 결국 우리의 우군이 된다.

요즘 엔지니어들은 말한다. 사농상공(士農商工)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교육자가 된다면 선비(士)보다 높은 교육자이자 스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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