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땡큐포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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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땡큐포엔지니어링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4.01.29 08:52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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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라이트맨 감독의 2005년작 영화 땡큐포스모킹에서 아론에크하트가 분한 닉네이러는 미국 굴지의 담배회사 홍보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주업무는 “흡연을 어떻게 하면 더 장려하느냐”로 천부적인 기획력과 말재주로 담배를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논리적으로 깨부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를테면 담배의 유해성을 알리고자 담배갑에 경고그림을 넣자는 입법을 하겠다는 상원의원을 상대로 TV토론회에서 “의원님께서는 미국의 모든 담배밭을 태워 버리자고 하면서, 어제는 농민행사에서 트렉터까지 타면서 미국농가의 쇠퇴를 걱정하지 않았냐”고 의원의 논리적 허점을 꼬집었다. 그런가 하면 유명 헐리웃 제작자를 설득해 담배가 멋지게 표현되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닉네이러는 분야는 다르지만 본질은 똑같은 일을 하는 동료인 미국총기협회와 미국주류협회 홍보이사들과 매주 모임을 가지며 정보교환과 논리력을 배양하고 있다. 이들 삼총사는 일명 ‘죽음의 부대’로 불린다. 당연히 술, 담배, 총은 인간의 수명을 줄이는 주범으로 대부분 사람에게 악마화되고 있기 때문에 홍보의 기술이 극대화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매년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의사, 과학자, 법률가 고용해 술, 담배, 총기의 무해성을 증명할 과학적 근거를 만들고 정치자금을 통해 정치인도 끊임없이 매수한다.

지난달 개정고시된 지자체 입찰계약집행기준을 놓고 엔지니어링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지자체 적격 평가시 자율권을 부여하고 벌점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요지인데, 당연히 업계 입장에서는 발주처의 입김이 세지면 로비도 해야 하고 전관까지 들여야 하니 좋을 게 없다. 게다가 납득하지 못하는 기준으로 벌점까지 부과되니 경영상 대단한 리스크를 맞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업계는 법안이 통과되면 국토부에 이어 행안부에까지 점령을 당하는 셈이다.

업계는 행안부를 상대로 법안에 대해 소송으로 대응한다. 건설엔지니어링협회 토목협의회 결의도 하고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변호사도 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업계의 대응은 항상 아쉬움을 낳는다. 2017년 건진법 87조2항도 그렇고 합산벌점과 종심제 개선, 하도급 금지법, BIM전면도입까지 어설픈 대응으로 엔지니어링산업을 탄압하는 악법들이 별 제지 없이 통과됐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결기가 없다. 수주산업의 특징 때문인지 누가 먼저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 엔지니어링사업자 일동으로 뭉뚱그려 탄원서나 내는 수준이다. 홍경래의 난을 서북지역 난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세력을 규합해 도전을 하려면 깃발을 든 대표가 필요한데 그런 것은 없다. 그나마도 가장 앞에 서명을 하면 문제가 될까봐 가나다순으로 한다. 또 탄원서를 제출하려고 해도 대표이사들은 뒤로 빠진 채 밑에 직원들에게 맡긴다. 국회나 정부 입장에서는 대표이사가 직접 오지 않으니 비서관이나 하위직급 직원이 대응하는 것이다. 오히려 관료입장에서는 “밑에 직원 보내는 걸 보니 정말 절실하지는 않나 보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더 큰 문제는 대정부 카운터파트너급이다. 엔지니어링업계는 엔지니어링사만 7,700여개에 엔지니어는 40만명에 달한다.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학력도 높고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몇 달 후면 총선인데 40만이면 대단한 세력인 셈이다. 게다가 수도권은 표 차이가 2~3%에 불과하지 않는가. 11만 의사보다 24만 간호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결국 인구수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느 부처든 국과장은 고사하고 사무관에게조차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엔지니어링업계 세력이면 적어도 다수의 국회의원과 장차관, 나아가 대통령비서실 정도와 직접적인 협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실무적으로 표가 급한 정당, 정치인을 통해 장관과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압박을 하는게 정석이다. 또 노련한 로비스트, 즉 대관전문가를 고용하든 길러내든 해서 신문과 방송을 통해 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노인무임승차를 두고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김호일 노인회장 간 일대일 토론이 있었다. 김호일 회장은 말 잘한다는 이준석 대표 앞에서도 힘이 들더라도 뚜벅뚜벅 자신들의 이익을 충분히 설명했다. 결기를 가진 대표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제대로 말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술, 담배, 총기라는 백해무익한 것들도 전문적인 홍보기획이 받침이 된다면 얼마든지 대변이 가능하다. 하물며 고부가가치 지식산업에 대한민국을 멋지게 발전시킨 엔지니어링이 홍보나 대관업무도 안 되고 탄압만 받아서야 되겠는가. 스모킹도 땡큐인 마당에 땡큐포엔지니어링이 안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정장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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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1000 2024-01-30 08:26:51
총선인데, 엔지니어링업계는 힘좀 못쓰나. 인구가 몇명인데 힘도 못쓰나. 약장용졸이구만

11 2024-01-29 13:59:23
이러거 생기면 탄원서만 강제로 직원들한테 받는게 전부

민태산 2024-01-29 13:37:41
오월동주라고 했던가? 하루에도 몇번씩 적이었다가 동지였다가를 반복한다. 지분이 섞여있는 형제, 자모회사가 아닌 이상 그들의 관계는 참으로 얄팍하고 유한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네가 아니면 내가 가져갈 것이고, 함께 해서 즐거웠지만 다음에는 적으로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미새에게 이쁨 받아야만 내 입에 모이가 하나라도 더 들어와, 한둥지에서 지낼지언정 좀 더 우월한 개체가 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1950년대부터 반세기가 넘게 이 업계가 유지되어 오고있음에도 서로 이쁨받기 위해 경쟁을 해왔지, 감히 나서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절대반지를 가진자에게 반기를 들어봤자 회의테이블조차 앉지 못하고, 되레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학습효과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로 기사를 풀다보니 생각나는 말이 있다. 반지의 제왕은 절대 권력을 나누지 않는다.

민태산 2024-01-29 13:36:56
제대로 된 홍보를 하려면 일단 한목소리를 크게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반지원정대도 처음에는 쉽게 뭉치지 못했으나, 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하나가 되어 끝내 반지를 파괴했던 것 처럼 우리에게도 암흑의 시기가 오기 전 하나되고 큰 목소리를 세상에 내질러야 할 때다.

불의를보면꾹참어 2024-01-29 10:47:35
엔지니어링업계는 홍보의 홍자도 모른다고 봐도 결코 과언이 아닐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홍보를 하지 않아도 정부예산으로 사업을 해 왔으니 말이다. 이제는 엔지니어링업계도 홍보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 정부를 꼬집기보다 우회적으로 엔지니어링의 가치를 엔지니어링에 무지한 국민들에게 10년이라는 긴 계획과 기획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수십년동안 유일하게 홍보를 하지 않아도 되었던 엡업계였기 때문이다. B to G 사업구조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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