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유프라테스 강밑터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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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유프라테스 강밑터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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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4.0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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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나무로 풀이되는 토목(土木)은 근대화시기에 일본인들이 문명공학-Civil Engineering을 의역해 만들어 낸 말이다. 당시 건설공사가 목재와 흙이 주재료였기 때문에 다소 협소한 뜻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토목이란 단어는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차용해, 지금까지 쓰여지고 있다. 문제는 지엽적으로 해석된 단어가 고착화되다보니, 국민저변에 건설산업이 단순무식하다라는 의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엔지니어들 또한 인문학적 소양없이 공학적인 접근을 하고 있을 뿐이다.

Civil Engineering의 본뜻은 인간이 거친 자연환경으로부터 보다 편리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때문에 ‘어떻게’라는 관점에서는 공학(工學)이, ‘무엇을’, ‘왜’라는 관점에서는 인문학(人文學)으로 접근해야 한다. 즉 Civil Engineering은 인문학과 공학의 절묘한 만남이다. 사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공학이나 인문학은 같은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본지는 Civil-Engineer들이 구축한 역사속 SOC시설물을 재조명하는 ‘김재성의 Civil-Engineering’을 통해 인문학과 공학의 접점을 찾고자 한다. 이번 연재는 지반공학자인 김재성 동일기술공사 부사장이 전 세계의 고대SOC시설물을 직접 찾아가 집필한 만큼 전문성과 현장성 겸비했다. 총 15회에 걸쳐 전세계의 Civil-Engineering을 만나보자. <편집자 주>

 
유프라테스 강밑터널을 찾아서

 배를 타지 않고 바다나 강을 건너보려는 인간의 꿈은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히브리인 모세가 지팡이로 바다를 가르기도 전에 이미 유프라테스 강밑에 터널이 만들어져 있었다는 헤르도토스의 기록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누가 어떻게 이런 터널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이보 안드리치가 쓴 ‘드리나강의 다리’는 강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다양한 문화충돌과 비극을 다루고 있다. 다리는 물로 나뉜 두 지역을 하나로 묶어 주지만 때로는 침략의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드리나강의 다리’ 역시 평화 시에는 서로의 갈등을 다독이고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도구였지만 2차대전과 보스니아 전쟁 중에는 종교와 이념대립이 폭력으로 분화되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강은 외부침입을 방어하는 천혜의 조건이기도 하지만 평시에는 양안의 교류를 막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유프라테스에 만들어진 교량과 하저터널은 전쟁과 평화 시를 모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바빌론 시가는 강 남서안에 주로 밀집되어 있으며 평시 거주하던 왕궁도 이곳에 있다. 강 건너에는 교량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한 난공불락의 성곽이 만들어졌는데 그 밑에 만들어 둔 터널은 전시에 교량이 파괴될 것을 대비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바다나 강 밑에 길을 내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결실을 본 것은 20세기 들어서면서다. 18세기에 시작된 영불해협 터널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최근에야 완성되었으며 이를 전후하여 일본의 세이칸 터널이나 홍콩의 하버터널 등 많은 해저터널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역시 거가침매터널을 비롯해 많은 하저터널을 갖추고 있으며 황해 밑으로 중국과 연결하려는 원대한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장비나 재료도 없던 시절에 인마(人馬)와 흙벽돌 석재만으로 유프라테스 강바닥에 터널을 만들고 그 위에 복층 구조로 교량을 만들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뒤로 3천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런 구조물을 만들었다는 사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누가 만들었을까.
하저터널은 헤르도토스의 역사와 디오도루스의 세계사에 기록되어 있다. 미국의 공학자인 아치발드 블랙은 디오두루스 입장에서 강밑터널이 4100여년전 고아시리아 세미라미스 여왕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세미라미스는 니노스왕의 비였다가 후에 왕위를 계승하였으며 뛰어난 통치로 아시리아를 부흥시켜 전쟁과 사랑의 여신으로 추앙되던 여왕이다.

▲ 세미라미스 여왕
그러나 신화적 아우라에 에둘려 있는 세미라미스를 하저터널의 건설자로 보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있다. 유적이 있던 바빌론은 유프라테스강 중하류 유역인 반면 세미라미스가 재위하던 기원전 2160년경의 아시리아 세력권은 티그리스강 상류인 아수르(Assur) 고원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상으로도 약 800km나 떨어져 있다.

이보다는 기원전 823년 바빌론을 통치했던 삼시 아다드 5세 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는 왕비 사무라마를 위하여 유프라테스 강 양안에 왕궁과 성곽을 건설하고 교량을 통해 오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기원전 605년경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메디아에서 시집온 왕비를 위해 이곳에 화려한 정원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공중정원이다.

헤르도토스는 공중정원이 있는 성곽을 강 건너 왕궁과 연결하기 위해 교량·터널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사무라마는 그리스어로는 세미라미스로 읽는데 이로 인해 고아시리아의 세미라미스 야왕과 혼돈을 일으킨 게 아닐까 싶다. 헤르도토스 이후 400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전설이 더해졌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흔적으로나마 전해지는 왕궁과 성곽 교량 등 바빌론의 고대 유적은 대부분 이 무렵 만들어졌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 공중정원의 상상도
공중정원을 두르고 있는 성곽은 흙벽돌로 만들어졌으며 두께는 17.7m 둘레는 11.3km에 이른다. 교량 폭은 9m로 4두 마차가 서로 빗겨다닐 수 있는 규모다. 교량밑에 만든 터널의 재료는 흙벽돌이었으며 역청으로 벽돌 틈을 막아 강물이 세지 않도록 하였다. 터널의 전체 길이는 900m이며 높이 3.7m 폭 4.6m이다. 이 정도라면 터널 안으로 현대의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규모다.

공사를 위해서는 먼저 흙댐을 쌓아 물을 막아야 한다. 상류에 흙댐을 쌓거나 강을 반씩 나누어 물을 돌리는 것은 현재도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방법이다. 물이 세는 것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건기와 우기가 분명했던 기후조건 덕에 충분히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을 막은 뒤에는 강바닥을 파내고 다져서 든든한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흙벽돌을 아치형태로 쌓으면 터널이 만들어진다.

교량은 두 가지 형태가 가능하다. 3.6m마다 기둥을 두었다는 기록으로 보면 상부 구조가 석조 구조물이었다는 뜻이 된다. 인근 지역에서 사용되던 석회암이나 사암 강도로 볼 때 필요한 상판용 석재를 얻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석재보다는 먼저 흙벽돌로 아치형태의 수문을 만든 뒤 그 위에 석재로 덧씌우는 방법이 보다 손쉬웠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당시 기술로 충분히 가능하지만 당시 재료사정으로 보면 흙벽돌 교량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흙벽돌 아치교 측면(좌), 흙벽돌 교량 단면(중), 석조교량 단면(우)

유적의 복원

▲ 복원중인 왕의 언덕
지금은 안타깝게도 터널을 비롯한 바빌로니아의 화려한 유적이 모두 사라져 찾아볼 수 없다. BC.539년 신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 멸망한 뒤 BC.486년 크세르크세스 1세에 의해 도시가 완전히 약탈되면서 모래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구운 벽돌과 석재로 지어졌던 바빌론의 페허는 오늘까지도 이라크 사막지대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라크는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바빌론 고대 성곽과 공중정원이 있던 ‘왕의 언덕’을 복원해 왔다. 그러나 내정불안으로 작업이 더디게 이루어지다가 그나마 최근의 전쟁으로 복원되었던 유적의 파괴도 적지 않았다.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켰던 바벨탑과 도시의 유적 그리고 왕비의 사랑 이야기가 깃든 공중정원은 얼마나 더 기다려야 볼 수 있을까. 

▲ 동일기술공사 김재성지반터널본부장(부사장)

나는 복원 과정에서 하저터널이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믿는다. 지상의 시설물은 전쟁의 와중에서 쉽게 파괴되지만 땅속의 터널은 어지간해서는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지는 않겠지만 유적의 작은 흔적이라도 발견된다면 인류 최초의 하저터널로는 물론 인간과 문명에 대해 깊은 성찰을 주는 사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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