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지하주거, 아늑한 삶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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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지하주거, 아늑한 삶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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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5.2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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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양수로 에둘려 있던 태아가 무중력상태에서 벗어날 때, 마침내 길고 좁은 통로를 벗어나 서늘한 공기와 만날 때 누군가 다가와 따듯한 천으로 울음을 감싸 안는다. 그 느낌, 이물스러움과 부드러움이 교차하던 첫날을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늘 그 순간을 지향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집이란 그러한 아늑함이 아닐까. 식생과 추억을 공유하면서 가족이 형성되는 곳, 바로 인간의 삶이 시작되는 정주공간 말이다. 
 
집은 인간의 정주환경을 조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공간이다. 유난히 여린 발톱과 피부만 두른 채 이 세계에 던져지는 인간은 집을 통하여 삶의 안정과 가족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인간이 문명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정주공간이 있었기 때문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돌이나 목재 흙벽돌 외에 변변한 재료가 없던 시절 집짓기는 이웃이 모두 함께해야 하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나마 이런 재료마저 없는 곳에서는 그저 땅을 파내는 것, 지하주거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지하주거는 지형이나 바위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있다. 산의 측면을 파내는 암벽형, 평지에 지은 뒤 위를 덮는 복개형, 땅 아래로 파서 만드는 평지형, 경사지를 파내고 지붕을 얹는 움집형 등. 이러한 유형을 살펴보면 인간과 주거 그리고 문명의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된다.

▲ 좌에서 부터 움집형, 암벽형, 평지형, 복개형

스카라 브레 움집
스코틀랜드 오크니(Orkney)에 있는 움집이다. BC.3180년경 처음 만들어진 뒤 700년이나 사람이 살았지만 알 수 없는 재해로 마을 전체가 땅에 묻혀 버렸다. 이 때문에 1850년 퇴적층이 제거되었을 때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볼 수 있었다. 이 움집은 5200년전 유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돌쌓기와 내부구조를 갖추고 있다.

집의 구조는 전형적인 움집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먼저 경사지를 파낸 다음 자연석을 맞물리게 쌓아 바닥과 벽체를 만든다. 그 다음 잡목으로 지붕 뼈대를 놓고 갈대나 흙을 얹으면 완성되는 것이다. 방의 크기는 6㎡ 정도다. 바닥은 평평한 돌을 깔고 벽에는 가재도구를 얹어놓을 수 있는 선반을 두었다. 방 가운데는 화덕이 있는데 이 주변에 모여 고기를 굽거나 음식을 나누어 먹었을 것이다.

규모가 조금 작은 방은 배수구의 흔적도 보인다. 이외에도 물건을 만드는 공방(工房)과 움집을 서로 연결하는 지하통로가 있다. 이렇게 만든 반지하 형태의 움집은 선사시대의 보편적인 주거형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재료나 구조의 차이는 있지만 움집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형식이다.

▲ 스코틀랜드 Skara Brae 유적

중국 랴오동(窯洞)
랴오동은 황하 범람과 고비 풍적토가 만들어낸 충적지대의 토굴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있지만 많이 만들어진 것은 14세기 무렵이다. 명의 중국통일 과정에서 도시와 숲이 파괴되자 서민들이 어쩔 수없이 선택한 주거형태인 것이다. 이후 공산혁명의 와중에서 중국이 다시 혼란에 빠져들자 랴오동은 다시 주거지로 각광을 받았다.

▲ 연안일대의 랴오동(좌), 마오쩌둥의 랴오동(우)

현재 남아있는 랴오동은 대부분 중국 혁명기의 유물이다. 황토지반 자체가 약해서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공산군이 머물던 연안에는 마오쩌둥의 집 등 세련된 랴오동이 많지만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다. 대부분 토굴이 그렇듯이 랴오동 역시 단순하게 만들어진다. 황토지반 측면을 아치 형태로 파낸 다음 전면에 문을 설치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는 비교적 정교하게 꾸밀 수 있다. 지반이 물러 바닥이나 벽면을 식탁 침대 수납공간 등으로 용도에 맞게 파낼 수 있기 때문이다. 랴오동은 황토의 부족한 지지능력으로 크기나 내부 구조에 제한이 있지만 앞으로 생태주택으로 발전될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 부족한 강도는 시멘트나 목재 또는 금속재료로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탈리아 세시(sasse) 

▲ 세시 동굴주거지역
세시(Sasso)는 이탈리아 마테라에 있는 응회암 동굴가옥이다. 8000년 전에 그려진 암각화가 주변에 넓게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 이전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중세에는 종교의 중심지가 되면서 주거용 동굴뿐 아니라 아폴리아 대성당 등 바위를 직접 조각해 낸 대규모 건축물도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지금은 깨끗이 정비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생활환경이 극도로 열악했다. 하수도와 같은 위생시설이 전무한 산언덕에 3천여 개나 되는 세시가 빼곡히 둘러싸여 있으니 말이다. 20세기초 카를로 레비가 쓴 소설 ‘예수는 에블리에서 멈추었다’를 보면 가금과 함께 생활하던 이곳의 환경 그리고 삶의 고난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알 수 있다.

1952년 '마테라 보호조례'를 통해 주거환경이 개선된 이후 이곳은 관광지로 변모하였다. 지금은 새로운 형태의 생태주택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와 유사한 카파도키아 석굴에서 터키 당국이 주민을 모두 소개시킨 것과는 대조적이다. 세시의 변화는 중국의 랴오동이나 터키, 튀니지 등 과거의 동굴주거를 생태주택으로 탈바꿈해 나가는데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튀니지 마트마타(Matmata) 혈거주택

▲ 마트마타 혈거주택
스필버그의 영화 스타워즈에는 두 개의 태양이 빛나는 행성 타투인(Tatooin)이 나온다. 이 행성에 사는 스카이워커는 태양빛을 피하기 위해 땅밑에 사는데 그가 사는 집이 바로 튀니지에 실재로 있는 마트마타 혈거주택이다. 랴오동이나 세시와는 달리 마트마타는 평지에 만들어져 있으며 최고 40°C를 넘나드는 기후에 잘 맞게 만들어져 있다.

혈거주택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하다. 먼저 직경 10m 내외로 땅을 파내려간 다음 옆으로 다시 뚫으면 되는 것이다. 파낸 흙은 주변에 쌓아 둔덕을 만드는데 이는 빗물을 막거나 울타리 역할을 한다. 중앙부는 자연스럽게 주민이 어울리는 마당이 된다. 마트마타 혈거주택은 최근 공동체가 함께 생활하기 위한 건축물을 설계하거나 미래 도시를 계획하는데 있어 신선한 모델이 되고 있다.

최근의 지하 생태주택 
꽃잎 형태로 공간을 배치해 조형미가 돋보이는 영국 볼튼(Botton)의 생태주택은 고대의 지하주거공간을 현대적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건축물이다. 이러한 형식은 마트마타의 혈거주택과 유사하지만 사실은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신석기 시대의 움집만큼이나 역사가 깊다. 알프스 볼의 생태주택 역시 경사지를 이용해 개방감을 극대화하면서도 지하공간의 잇점을 잘 활용하고 있다.

▲ 볼튼 생태주택(좌), 알프스 볼 생태주택(우)

 
▲ 동일기술공사 김재성지반터널본부장(부사장)
이처럼 최근에 지어지고 있는 생태주택은 정적이고 아늑한 지하공간의 특성을 부각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친환경적인 잇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대지 자체가 지붕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에너지 효율이 높지만 녹지공간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건축구조와 형태를 통해 지하와 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듦으로서 지하공간의 심리적 문제를 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랴오동이나 움집 혈거주택 등 과거의 지하 주거공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지어지는 생태주택은 정적이고 아늑한 지하공간의 잇점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설계기술과 재료공학의 발달 그리고 건축가의 신선한 아이디어로 인해 지하는 점점 더 특별한 삶의 공간으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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