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카나트, 사막을 삶의 옥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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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카나트, 사막을 삶의 옥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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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6.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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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길이 5,272km, 상상이 되는가. 그러나 이 숫자는 중국 카나트만 집계한 것이다. 전 세계에 얼마나 되는지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인간이 만든 가장 긴 터널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순수 인력으로 뚫은 지하수로, 그 생존의지는 우리를 숙연케 한다. 슈바이처가 말했던 ‘생명에의 경외’는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이란 영화 ‘카리즈(Kariz)’는 집안 대대로 카나트(Qanat)를 관리해 온 사람의 이야기다. 주인공 무하마드는 어렸을 때부터 좁은 동굴에서 카나트를 보수해 왔다. 영화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 물이 흐르는 동굴 속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찬찬히 보여준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폐쇄 공포증이 느껴질 정도다.

무하마드는 망치와 작은 등잔에 의지한 채 묵묵히 물길을 따라간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터널의 벽면은 잘 다듬어지고 고였던 물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터널을 다듬는 그의 연장은 손자를 쓰다듬는 손처럼 부드럽다. 마침내 작업을 끝낸 무하마드가 타박타박 걸어 지상으로 올라갈 때, 그의 뒷모습은 마치 순례의 도정에 있는 수도승의 실루엣처럼 느껴진다.

▲ 영화 ‘카나트 관리인’
카나트는 산악지대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을 농경지로 끌어오기 위해 만든 수로다. 사막지대는 지표 자양이 충분한 반면 깊은 곳은 소금기가 많아 지하수가 짜다. 그렇다고 수로를 지상에 만들면 햇빛이 강해서 금방 말라버리게 된다. 그래서 땅 밑에 물길을 만들되 염도가 높은 지하수에 섞이지 않게 일정깊이를 유지하도록 만든 터널이 바로 카나트다.

피라밋이나 콜로세움, 신전 등 인류가 만들어낸 거대 건축물은 대부분 전쟁이나 권력의 과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카나트는 다르다. 이것은 순수하게 자연에 대한 도전의 산물이며,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그 아픔의 흔적인 것이다. 중국 트루판의 포도나 이란의 석류, 그 달콤한 과즙에서는 카나트를 만드는 인간의 열정이 같이 느껴진다.

언제부터 만들었을까.
카나트는 기원전 8세기 이란 우라르투(Urart) 왕국에 처음 만들어졌다. 메이누아왕 때는 아시리아와 다툴 정도로 세력이 커졌는데 이 무렵 28km에 이르는 운하와 저수지 카나트 등 많은 농경시설이 만들어졌다. 45km가 넘는 고나바드(Gonabad) 카나트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테헤란 동쪽 나마크 사막지대에 있는 고나마드는 2700년전 만들어진 이 수로로 인해 이란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으며 지금도 4만여명이 이 물을 마시고 있다.

카나트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곳은 중동 거점도시였던 호라산 주변이다. 호라산은 만년설에 덥혀 있는 하자르 산(3,146m)과 비날루드 산(3,211m)에서 늘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그래서 산밑에는 많은 오아시스가 있는데 이 물을 주거지역으로 끌어오기 위해 카나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호라산은 비단길의 요충지였다. 지금도 호라산 주변에는 아랍인·몽골·한족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데 이들의 교역을 통해 카나트도 자연스럽게 확산되었을 것이다.

카나트가 중국 유럽 아프리카로 전해지면서 그동안 버려졌던 건조지대에 많은 도시들이 생겨났다. 이는 수메르와 이집트 관개수로에 이어 또 하나의 농업혁명으로 부를만한 진전이었다. 이렇게 세계로 퍼진 카나트는 많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카레즈(Karaz, 파키스탄), 케타라(Ketara, 모로코), 포가라(Foggara, 프랑스), 칸얼칭(坎爾井, 중국) 등. 그러나 이름은 달라도 기본적인 구조와 형식은 거의 같다. 
 
카나트의 형태와 규모
카나트는 순수하게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다. 형태나 규모도 삽이나 곡괭이 등 간단한 손도구로 파낸 것이어서 하나하나만 보면 그리 보잘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개개 시설이 서로 연결되어 완벽한 체계로 기능할 때 비로소 카나트의 놀라움이 드러난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 몸의 모세혈관을 지상에 현현시켜놓은 것과 같다. 이렇게 유기적인 연결망을 통해 퍼져 나가는 카나트는 혈관으로 자양이 공급되듯이 사막을 농경지로 바꾸어 놓는다.

▲ 카나트 개요도
카나트는 취수를 위한 모정(母井)과 수로터널 그리고 도달지의 저수조로 이루어진다. 모정은 오아시스나 산 가까운 곳에 만들어진다. 산악지대에서 흘러내린 물은 순도가 높지만 땅 밑으로 스며들면 염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굴착 작업을 위해 중간에 파는 간정(間井)은 공사 후에는 수로 유지관리에 이용된다.

여기서 시작된 카나트는 5km 정도 떨어진 저수조에 모인다. 일부는 여기서 사용되고 일부는 다시 카나트를 통해 여러 지역으로 흘러간다. 모정에서 물이 도달하는 끝까지는 40km가 넘는 경우가 많다. 중간 우물은 5~10m 깊이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수로터널의 특성상 일정한 경사가 유지되어야 하므로 지형에 따라 훨씬 더 깊어지기도 한다.

중국 트루판 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하미, 우루무치, 트루판의 카나트는 약 1000개소로 전체 길이는 5,272km에 이른다. 그러나 가장 많은 카나트는 이란에 있다. 처음 카나트를 만들어 낸 나라답게 공식 관리되는 카나트만 5만 개소가 넘는다. 길이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중국의 1000개소와 비교가 되는 수치다. 이란은 아직 80%의 농사를 카나트를 이용해서 짓는다.

▲ 트루판 카나트 박물관
아프가니스탄에는 칸다하르·님로즈·힐만드 등 남부 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오랜 전쟁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전통 기술자도 사라졌지만 최근 복구사업으로 카나트 수리에 많은 재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중해 연안 국가인 스페인, 프랑스, 북아프리카에 분포되어 있으며 이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카나트는 4명이 한 조가 되어 만든다. 두 명은 터널 안에서 그리고 두 명은 지상에서 일한다. 터널 안에서는 한 사람이 앞에서 파 나가고 뒤에 있는 사람이 가죽푸대에 담아서 우물까지 옮긴다. 우물 밖에서는 한 사람이 흙을 퍼 올리고 다른 한 사람은 주변에 쌓는 작업을 한다. 사람이나 들짐승 그리고 바람에 날린 이물질이 지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 지상에서 방향잡기(좌), 지하에서 방향잡기(중), 막장 굴착작업(우)
측량은 지상과 지하에서 동시에 이루어진다. 터널방향과 경사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방향은 양끝을 줄로 연결한 두 개의 막대기로 잡는다. 막대기 하나를 우물에 내리고 지상의 막대기 방향을 고정시키면, 아래쪽의 막대기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게 되는 것이다. 터널 안에서는 터널과 막대기 방향이 일치되는지 수시로 확인하면서 파 나간다.

▲ 나무홈통을 이용해 경사 맞추기
기울기는 나무홈통을 이용한다. 건축물 수평을 맞출 때 사용하던 이 방법은 수메르에서 시작되어 근세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이용되어온 방법이다. 물을 담을 수 있도록 파여진 나무홈통 양쪽에 필요한 경사에 맞게 눈금이 표시된다. 홈통의 위아래 눈금까지 물을 채우면 홈통은 정해진 만큼 기울어지게 되는데 이에 맞추어 터널을 파나가면 되는 것이다.

터널의 크기는 아주 중요하다. 받침이나 널과 같은 지보공이 없이 자력으로 견딜 수 있어야 하지만 너무 좁으면 파내는 작업이나 유지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높이와 폭이 필요한데 보통 높이 1m, 폭 60cm 정도다. 취수를 위한 모정은 수로경사와 지하수위를 고려하여 보통 30m 깊이에 만들어진다. 수시로 출입해야하기 때문에 직경을 2m 이상 크게 만들어야 한다.

모정에서 마을까지는 20~30m마다 간정을 만든다. 간정의 직경은 1m 정도다. 수로경사는 1/1000~1/3000 정도인데 이는 터널길이 100m마다 3~10cm로 높이를 조정해야하는 정밀한 값이다. 물의 흐름이 너무 빠르면 황토 터널이 쉽게 세굴 되고 너무 느리면 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사가 일정해야하기 때문에 언덕이나 산 등 지반의 변화가 심한 곳은 수백 미터에 이르는 간정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카나트 운영과 유지관리
카나트는 대부분 마을공동체에 의해 만들어진다. 완성될 때까지 워낙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카나트가 완성되면 이를 운영하기 위한 길드(Guild)가 조직된다.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유지관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카나트가 완성되면 주민들은 정해진 물 사용료를 내거나 물 값만큼 일을 해주고 농경에 이용할 수 있다.

▲ 좌로부터 카나트 저수조(이란), 유량측정수문(알제리)
<사진출처:www.en.wikipedia.org/wiki/Qanat>

이 그림은 카나트를 통해 농경지에 도달한 물과 이를 나눠 쓰기 위한 수문 모습이다. 저수조 끝에 있는 수문은 유량측정 시설이다. 수문의 원리는 단순하다. 물이 통과할 때의 폭과 수위 그리고 수문이 열려있던 시간을 곱하면 얼마의 물이 흘러나갔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 사용료가 이를 토대로 계산되었음은 당연하다.

영화속의 카나트 관리인은 우리를 낭만적인 감상에 젖게 하지만 실제 카나트 보수는 여간 위험한 작업이 아니다.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처럼 카나트로 흐르는 물을 잘 설명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터널 벽면은 적당한 염분이 섞여있어 단단하긴 하지만 흐르는 물은 지속적으로 수로단면을 변형시킨다. 이러한 변형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시간에 따라 서서히 벽과 천정은 약해져 간다.

이를 방치할 경우 터널은 결국 무너지게 된다. 카나트 관리인은 항상 이러한 위험을 안고 일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가 일하는 도중에 붕괴가 일어난다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렵다. 카나트로 인해 사막은 옥토로 변하고 인간의 삶은 한층 풍요로워졌으나 이를 만들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 동일기술공사 김재성지반터널본부장(부사장)
서양문명은 지중해 주변과 유럽의 온화한 기후대에서 발달한 반면 이슬람의 무대는 그 외곽의 척박한 건조지대였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척박한 사막에서 인류문명의 한 축으로 기능해 온 이슬람 문명이 어떻게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사막을 옥토로 바꾸고 생존할 수 있게 한 카나트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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