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사모스섬 에우팔리노스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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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사모스섬 에우팔리노스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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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4.2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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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스섬 북쪽 숲에는 아이아테스라는 샘이 있었다. 물이 차고 맑아 피타고라스와 현자들은 그 곁에서 수의 신비와 철학에 빠져들었으며 음유시인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샘은 내를 이룰 정도로 풍족했지만 사람이 모여 사는 남쪽 도시는 늘 물이 부족하였다. 결국 이들은 암페로스 산을 뚫어 도시까지 샘을 끌어왔는데 이것이 26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물이 흐르는 에우팔리노스 터널이다.

 
샘을 찾아서 걷는 길은 어둡고 아늑하다. 발끝 스치는 풀잎과 가지 벌린 나무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마침내 샘에 이렀을 때 우리는 숲이 오래 품어온 정결한 물과 만나게 된다. 샘은 오랜 세월 인간과 함께하면서 신화의 무대나 음악과 문학의 소재가 되어 왔다. 그것은 나뉜 두 세계를 연결하는 샘의 제의적 기능 즉 숲과 인간, 지하와 지상,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하나의 통로로 상징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계절이 변하거나 달이 차고 기움과 같이 지상에서의 쓰임을 다하고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솟아나는 물을 보면서 고대인들은 자연의 질서도 그렇게 순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땅에 묻힌 씨알이 긴 겨울을 견디고 싹을 틔우는 재생의 신화로 또는 죽었던 것들이 지하세계의 정화를 거쳐 지상으로 되돌려지기를 바라는 신앙으로 변주되기도 했다.
숲속에 감추어져 있는 샘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상징으로 에둘려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을 떠 마시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단순한 갈증의 해소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정화의식이며 시원으로의 회귀 그리고 죽음과 재생의 신화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신성한 제의의 재현이다.

▲ 사모스
신과 인간이 함께 생활하던 고대 그리이스에서 아이아테스 샘이 신화의 기원으로 작용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몸으로 스며든 샘물이 미세한 혈관을 흐를 때 그것은 인류가 오래 반복해 온 씻김의식이었을 것이며 물은 신의 음료 넥타르로 비견되었을 테니 말이다.

에우팔리노스 터널을 이야기하며 그리이스 신화를 떠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먼저 도시의 언덕 위에 거대한 헤라신전을 만든 사모스인들이 암페로스산에 터널을 뚫기 시작한 것은 자연과 문명, 신과 인간의 접점인 샘을 도시로 끌어와 신국을 완성하려던 야심찬 계획이 아니었을까.
터널의 규모
아이아테스샘은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물이 흘러 내를 이루었지만 사람들이 모여 살던 남쪽 항구도시는 늘 물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적의 침입 시에는 견고하고 높은 성곽을 갖추고도 물이 부족하여 오래 견딜 수가 없었다. 사모스인들이 당시로서는 무모해 보이는 터널을 건설하기로 한 상징적인 이유가 신국의 완성이었다면 물의 수요는 도시를 방어하고 유지하기 위한 두 번째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 에우팔리노스 터널
헤르도토스는 이 터널이 그리이스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사업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저서 역사(3권)에는 규모와 형태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일일이 측량해서 기록한 듯 틀림이 거의 없다. 이 터널이 에우팔리노스(Eupalinos)라고 불리게 된 것은 건설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터널공사는 기원전 672년 시작되어 15년이나 지속되었으며 기원전 687년 마침내 완성되었다.

터널이 만들어진 암페로스산은 비교적 암질이 단단한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항구도시가 북쪽 숲에는 아이아테스샘이 자리잡고 있다. 인근에는 케르케테우스 산을 비롯 울창한 숲이 있어 샘의 물이 마르지 않았다. 수로의 전체 길이는 2,436m이며 이중 암페로스산을 관통한 터널은 1036m이다.
샘에서 터널 입구까지 900m 그리고 터널 출구에서 도심 저수조까지는 500m 남짓 되는데 높낮이를 정교하게 맞추어 도랑을 파고 시멘트로 물이 세지 않도록 처리하였다. 터널 폭과 높이는 각각 180cm이며 바닥에는 따로 70cm 폭의 수로가 설치되어 있다. 수로의 깊이는 위치별로 조금씩 다른데 이는 물이 흐르는 경사를 맞추기 위해 정밀하게 조정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리이스 이전에 만들어진 피라미드나 신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위를 다루는 기술은 이미 상당히 발전되어 있었다. 모암에서 거대한 원석을 채취하거나 연마하는 기술은 현대의 석재가공기술과 원리적으로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특히 돌을 정교하게 다듬고 조각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오히려 고대인이 앞서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직각삼각형 이용법
그러나 밀폐된 공간의 특성상 망치와 정으로 일일이 바위를 쪼아 나가야하는 터널은 별개의 문제였다. 투입인력도 막장 폭에 따라 겨우 몇 사람으로 제한되므로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터널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는 불을 이용한 방법을 적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물질은 온도에 따라 부피가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뜨겁게 달군 바위에 차거운 물을 뿌리면 표면이 수축되면서 균열이 생기는데 이렇게 연약해지면 다소 파내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입구를 제외한 대부분은 망치와 정으로 암반을 쪼아내는 원시적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1036m를 뚫는데 15년이 걸렸다면 하루에 고작 20cm를 팠다는 계산이 나온다.
손으로 터널을 뚫는 것도 그렇지만 터널의 경사와 위치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터널 양쪽의 높이차는 고작 57cm밖에 안된다. 당시 건축물의 높낮이는 일반적으로 물을 넣은 나무홈통을 이용하였는데 에우팔리노스 터널 역시 이 방법을 적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간단히 말하면 터널입구에서 출구까지 산을 옆으로 돌며 나무홈통으로 입구와 출구의 높이를 맞추는 방법이다.
양쪽에서 뚫어온 터널을 가운데서 만나게 하는 것은 고도의 측량장비를 갖춘 지금도 자주 문제를 일으킨다. 사모스인이 어떻게 측량했는지 기록은 없지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직각삼각형법이다. 산허리를 돌면서 직각으로 거리를 재고 터널을 빗변으로 하는 직각삼각형을 만들어 방향을 잡는 것이다. 피타고라스 법칙과 관계되는 이 방법은 실은 고대 바빌론 시대부터 사용되던 방법이다.
또 하나는 터널입구에서 종점까지 직접 산위로 줄을 당겨서 방향을 맞추는 방법이다. 터널은 산정에서 조금 빗겨난 곳에 있으며 이곳의 터널 위쪽은 100m 쯤 된다. 이 정도면 산을 넘으며 터널 입구에서 출구까지 줄을 당기고 멀리서 바라보며 똑바로 맞추는 방법도 가능했을 것이다. 아무튼 터널을 뚫다가 얼마간의 어긋남이 있어 바로잡은 흔적이 보이긴 하지만 그 정밀성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물의 도시 사모스

▲ 피타고리온의 목욕탕 유적
에우팔리노스 터널은 숲속의 샘을 도시 한 가운데로 끌어들여 향유하고자 했던 바램을 현실로 일궈낸 결과다. 긴 수로와 터널을 통하여 흘러온 아이아테스 샘물이 수조를 가득 채우자 사모스는 더 이상 부족할 게 없는 도시가 되었다. 오리엔트와 지중해 도시국가의 무역을 통해 얻은 부는 계속 축적되어갔고 도시 인구는 점점 늘어났다.

해안에는 140m에 이르는 방파제와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졌고 언덕 위에는 그리스 최고의 여신인 헤라를 위하여 거대한 신전은 세웠다. 사모스섬의 참주였던 폴리카르테스는 도시를 지키기 위하여 더 크고 견고한 성곽을 축조하였는데 이 성곽은 전체 길이가 6.5km에 이르며 12개의 문과 35개의 탑을 갖추었다.
▲ 동일기술공사 김재성지반터널본부장(부사장)
이렇게 눈부시게 성장한 도시에서 문화의 꽃이 함께 피어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기원전 580년 이곳에서 태어난 피타고라스는 제자들과 수비학, 기하학을 연구하면서 인류의 정신을 한 차원 상승시켰고 음유시인의 노래와 여인들의 무희는 조각 건축 공예 등 다양한 예술 속에 스며들어 있다.
도시로 흘러든 아이아테스 샘물이 만들어 낸 또 하나는 더할 수 없이 풍요로운 목욕문화다. 사모스 중심부에 만들어져 있는 목욕시설 유적에는 아직도 화려한 부조가 기둥이나 벽면에 남아 있다. 사슴이 조각된 화관(花冠)이나 섬세하고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기둥머리, 물고기를 낚아채는 독수리 상은 당시 물의 문화가 얼마나 화려하게 펼쳐졌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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