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골]부정당한 한국 발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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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골]부정당한 한국 발주처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2.12.19 09:03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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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업계가 부정당제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최근들어 대형엔지니어링사 여러 곳이 입찰금지를 받으면서 타격이 상당하다. 

부정당제재 사유는 허위계약, 담합, 뇌물, 중대사고 등이다. 업체가 잘못을 했다면 당연히 처벌과 제재를 받아야 하지만 처벌 수준이 너무 과중하다는게 문제다. 형사범죄만 해도 기소, 선고, 집행유예, 벌금, 6개월에서 무기징역까지 처벌수위가 다양하다. 부정당제재가 통상 1개월에서 6개월 입찰금지를 시킨다고 볼 때 대략 5년에서 20년에 해당하는 선고를 내린다고 봐야 한다.

또 형사는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에게만 처벌이 있지만 부정당은 한사람의 잘못을 1,000명 이상이 책임을 지는 연좌제적 성격이 크다. 가족과 하도급 업체까지 생각하면 사실상 1만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혹하고 무자비한 처벌이다.

부정당제재를 정부로 미러링해 보면 부당성은 더 확실해진다. 엔지니어링사에서 근무하는 감리원과 발주처 직원이 시공사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치면 엔지니어링사는 부정당제재를 받아 입찰참가제한을 받는다. 

반면 발주처는 그 직원에게만 책임을 물어 형사처벌된다. 똑같은 잘못을 두명이 했는데 한쪽은 회사 전체가 연좌제로 묶이고, 발주처는 개인만 처벌을 하는 셈이다. FM대로면 그 발주처도 문을 6개월 닫거나, 최소한 기관장 이하 결재라인은 옷을 벗어야 최소한의 공정이 성립하는 셈이다. 더 엄격히 말하면 발주처의 상급기관 즉 장관 나아가 총리, 대통령까지 책임을 져야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하도급 문제나 입찰질서 교란으로 인한 부정당제재 또한 고민해볼 일이다. 일단 뇌물이나 중대재해보다 사안이 경미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제도적 불합리로 일어나기 때문에 처벌 자체를 주의나 경고 정도로 갈음해도 된다. 특히 이 사안은 발주처가 업체를 길들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부정당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합리적 대안은 발생한 문제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이 합당한 처사다. 손해배상은 중대재해에서도 똑같이 적용해도 무리는 없다. 일부러 사고 나라고 고사지내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인재와 천재가 혼합된 경우인데 엔지니어링사의 모든 영업을 정지시키는 것은 과도하다. 사고 났다고 발주처가 문 닫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부정당 제재 사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사안별로 합당한 양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영업을 정지시켜서 수천명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말이다. 무분별한 발주처의 부정당제재도 손을 봐야 한다.

우리나라 발주처의 권한은 전세계 사례를 찾아봐도 기형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자신들의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입찰에서 완공까지 전과정에 촘촘하게 발주자가 갑질할 수 있는 조항을 넣어 놨다. 부정당과 벌점 그리고 일을 주고 말고의 문제까지, 자신들은 책임 안지고 생색은 내면서 모든 것을 업체에 덤터기 씌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와중에 벌점을 부과할 수 있는 기관을 국토부에서 전국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으로 확대하는 건진법 개정안까지 발의됐다. 보름만 있으면 합산벌점까지 시행되는 마당에 시어머니가 수백개로 늘어난 셈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업체 입장에서는 보이는 공무원 마다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정말 발주처 권력 강화를 위한 대단한 시스템인 셈이다. 

얼마전 만난 캐나다 온타리오 교량담당 공무원은 “제도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발주처의 권력을 강화하거나 빼먹을 것을 만들기 위함이다. 발주자는 컨설턴트와 함께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물을 만드는 사람이지 컨설턴트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부정당, 벌점, 갑질이 혼재하는 한국엔지니어링이 고민해 볼만한 대목이다.

정장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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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2022-12-21 09:24:35
만약 발주처에 뇌물을 주다가 걸렸어.
그게 니가 주고 싶어서 준게 아니고 회사에서 누가 지시를 내렸어.
그게 걸려서 처벌을 받는데 준 사람만 처벌하는게 맞을까? 만약 준 사람만 처벌한다면 회사에서는 다음부터 뇌물을 안줄까? 너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한 도구가 되어서 "에이, 걸렸네? 버려야지"라고 안하겠어? 회사가 지시해놓고 오히려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징계할수도 있겠지?

니가 일 하다가 실수를 했어. 회사에서 2명이 할 일을 너 한명에게 시켜서 과도한 업무로 놓친 실수였지. 그럼 온전히 너의 실수니까 너만 징계받고 자르면 해결되겠지?

이 기사의 요지는 바로 이거야. 너희를 도구로 만드는거.

H 2022-12-20 11:09:09
좋은 기사 입니다. 제일 마지막 단락에서 캐나다 온타리오 얘기하셨는데, 그들은 엔지니어를 컨설턴트라고 인지하는 반면 우리네 발주처는 엔지니어를 용역사의 일개 용역업자라고 여기는 것이 큰 차이입니다. 용역과 컨설팅의 차이를 생각해본 사람이 많지는 않을 듯 합니다만, 60대 이상의 엔지니어들은 작금의 용역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규모를 키우고 나름 발전시켜 오신 분들입니다. 현재 엔지니어링 업계의 기형적인 폐해의 원인이 그러한 선배들의 근시안적 무지함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결과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은 이제부터입니다. 우리 스스로 와해된 후 분명히 다음 단계는 다국적 기업에 의한 수동적이고 재기 불가능한 방향의 변화가 올 것입니다. 알아야 합니다. 바꿔야 합니다. 엔지니어들이 서로 뭉쳐야 합니다

가스마셨냐? 2022-12-20 09:49:33
하도급 구두승인 해놓고 고발때리는 클라스 ㅋㅋㅋㅋ

발주처 2022-12-20 08:28:29
들어보니 ㄱㅅㄱㅅ 너무하네요. 발주자의 지위를 남용하고 있네요.

난바보 2022-12-19 23:51:38
ㅋㅈ는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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