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지니어링데일리)조항일·정원기 기자=2016년 2월 국토부가 시범사업을 발주하면서 닻을 올린 한국의 종합심사낙찰제(종심제)가 시행 10여년을 앞두고 있지만 당초 취지였던 글로벌스탠다드 제도화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특히 종심제의 핵심이라는 기술력은 전관영입과 로비가 대체했고 공무원의 노후준비를 위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제도 폐지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다. 이번 기획은 종심제의 현황을 파악하고 실제 제도 폐지가 필요한지를 진단해보고자 한다.
▲총점차등제가 지탱하는 한국형 종심제
종심제의 탄생은 최저가 입찰로 점철된 한국형 제도에 있다. 물론 EU의 경우에도 시공과 용역의 입낙찰방식에 구분없이 최저가격 또는 가장 경제적으로 유리한 입찰로 규정하고 있는데 전자는 대부분 단순한 구매활동에 한정한다. 후자는 가격뿐 아니라 품질에서부터 유지관리 비용까지 보는만큼 엔지니어링은 이를 적용받아 사실상 기술 중심의 선정방법으로 볼 수 있는게 우리와의 차이다.
한국은 자격조건이나 기술제안에 대한 평가를 하더라도 기술의 변별력이 없고 이마저도 가격경쟁력을 극복하지 못한다. 가격도 운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엔지니어링업계의 습성은 결국 종심제 1호사업의 낙찰률이 59.89%를 기록하는 웃지못할 사태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해당 사업 이후 발주되는 종심제에서는 총점차등제가 적용되면서 낙찰하한률이 80%대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총점차등이 없는 경우에는 여전히 낙찰하한률이 80%를 밑도는 게 현실이다. 종심제의 낙찰하한률 자체가 낮게 설정돼 있다보니 사실상 편법으로 80%를 맞추고 있는셈이다. 그나마 지난해 법 개정으로 낙찰하한률을 70%로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적격심사기준(80.495%~87.745%)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총점차등을 없애고 낙찰하한률을 9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서 대형사와 그외 회사가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대형사들은 총점차등을 두지 않으면 적격심사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는만큼 제도를 반드시 사수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형사 이외의 업체들은 총점차등이 사실상 대형사의 영업력으로 좌지우지 되고 있는만큼 제도 폐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결국 최저낙찰률을 올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만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걸리면서 논의가 중단돼 있다.
▲난이도 접목, 못하는게 아니라 안한다

2022년 한국건설엔지니어링협회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한 건설엔지니어링 종심제 개선연구에 따르면 종심제가 본격화 된 2019년부터 2022년 3월까지 중앙정부 및 산하기관이 발주한 사업 717건 가운데 종심제가 576건, 점유율로는 80%에 달했다. 발주에 소요된 비용은 3조2,996억원이었다. 발주청 중 종심제 비중이 가장 높았던 것은 LH로 89%, 가장 낮은 도로공사의 종심제 비율도 69%를 차지했다. 기관별 발주 비중 금액은 ▲LH 208건 1조3,928억원(36%) ▲철도공단 85건 5,355억원(17%) ▲도로 48건 3,254억원(5%) ▲수자원공사 73건, 2,999억원(2%) 등 순으로 나타났다.
종심제 발주량이 압도적으로 늘어난데에는 글로벌스탠다드 제도를 도입한다는 명분하에 저난이도 사업이 모두 종심제로 대체된 것이 원인이다. 개정 이전 종심제는 TP와 마찬가지로 ▲기본설계 15억원 ▲실시설계 25억원 ▲건설사업관리 20억원 등 이상의 사업에서 적용되는데 TP와 달리 난이도가 접목되지 않으면서 사업이 무차별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직접경비는 TP와 동일하지만 인건비와 간접경비가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일반적으로 인건비는 전관채용에 따른 부분, 간접경비 최소 2,000만~최대 4,000만원이 소요되는데 상당수는 발주청 영업비용이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수년간 종심제 금액을 상향하고 TP와 마찬가지로 난이도 접목을 요구했는데 그결과 지난해 12월 종심제는 ▲기본설계 30억원 ▲실시설계 40억원 ▲건설사업관리 50억원으로 상향됐다. 업계의 당초 안 가운데 기본설계를 제외하면 실시설계(50억원), 건설사업관리(70억원) 등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난이도 접목은 불발됐다.

개정안 이후 업계에서는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일단 종심제 대상금액이 아니더라도 묶음발주를 통해 금액을 맞춰버리면 그만이고 사실상 난이도 접목이 없어 실제 종심제 발주가 줄어들었다는 체감이 어렵다는게 일반적이다. 업계에서는 개정 이전과 이후 대상사업은 감소는 10~20% 내외에 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 개정 종심제가 시행된 올해 8월까지 발주된 종심제 물량(플랜트, 항만 제외)은 41건이었는데 개정전인 지난해 같은기간에는 53건으로 전년대비 22% 감소되는데 그쳤다.
특히 난이도 접목과 관련해서는 이미 종심제의 수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예측되는 대형사와 그외 업체들의 이견으로 인해 여전히 추가적인 법 개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