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21대 대선이 42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민의힘, 민주당, 개혁신당으로 비롯해 대권에 도전하는 후보들이 2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시장이나 산업현장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한다. 어떤 후보는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방문지를 전략적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이재명 후보는 AI 현장을 찾아 100조원 투자 공약을 내놓았고, 한동훈 후보는 이에 더해 100조원을 추가한 200조를 투자한다고 했다. 미국 관세문제를 고려한 한덕수 대행은 현대중공업과 기아차 현장을 방문했다. 각 후보들은 카테고리에 따라 영남, 호남, 충청, 사찰과 교회까지 표가 된다고 생각하면 어디든 찾아간다.
하지만 건설이 아닌 엔지니어링 현장에 방문한 대권후보는 아무도 없다. 필자가 엔지니어링을 출입한지가 노무현 대통령 정부시절부터이니 적어도 20년 동안은 없었다. 사실 대통령, 대권후보는 고사하고 도지사, 국회의원, 장관 누구도 엔지니어링의 실제 현장을 방문한 사례는 없다.
현재 한국엔지니어링협회에 등록된 엔지니어 숫자가 19만6,954명이고, 실제 종사자는 8,765社 45만명에 달한다. 가족까지 치면 100만이다. 노동집약적지식산업이어서 가능한 숫자다. 비교하자면, 현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의사는 약 14만5,000명이고, 그들과 일대일로 맞붙은 간호사는 39만 명이다. 고위직을 독점하고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법조인은 4만명도 되지 않는다. 20대 대통령선거 당시 표차이가 24만7,077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각 후보들 입장에서 45만명이 종사하는 엔지니어링업계에 대해 현장을 방문한다든지 소소하게라도 맞춤공약을 낼만도 하다. 아무리 못해도 웬만한 단체나 업계라면 다하는 대권후보들과 물밑접촉이라도 해야 하는데 결론적으로는 없다. 없었다.
왜 이럴까. 기본적으로 정치인들 중에 엔지니어링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가끔 안다는 정도가 “건설업자에 용역이라는게 있는데 사고가 나면 처벌을 해야하는 곳” 정도다. 정치인들이 엔지니어링에 대해 무지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엔지니어링에 대한 홍보전략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관이 발주처이다보니 의사협회처럼 끝까지 버티기도 어렵다. 보통은 부탁하고 적당한 선에서 물러서는게 일반적이다.
대표적인 엔지니어링단체인 한국엔지니어링협회, 한국건설엔지니어링협회가 인단체가 아닌 업단체이다 보니 대정부 건의 자체가 이익단체의 항변 정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니까 대권후보 입장에서보면 건설사고나 부정청탁 같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거론되는 곳인데다, 이익단체이자 사업자라니까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다. 이보다 대권후보급에게 업계의 입장을 대변시킬 수 있는 채널이 부재한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다. 한국건설기술인협회는 인단체로써 1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하다 보니 정치권에서 먼저 손 내밀 정도로 영향력은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부처산하에 관료제라는 한계에 봉착해 있다.
엔지니어링을 포함한 건설업계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산업화시대의 잔재로 평가되고 있다. 사실 많지도 않지만 부실과 부정의 상징으로 매도된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전세계 엔지니어링시장 규모는 2.3조달러(3,300조원)에 달한다. 반도체(900조원), 선박(217조원), 철강(250조원)보다 훨씬 크다. 물론 엔지니어링 특성상 자국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비중이 크지만, 교량, 물, 플랜트 같은 고난이도 인프라 시장은 충분히 해외진출이 가능하다. 실제로 에이컴, 테트라테크, 벡텔, 플로어 같은 미국소재 글로벌 기업의 매출은 대부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일어나고 있고, 끊임없이 성장중이다. 즉 엔지니어링 역시 반도체, 선반, 방산과 함께 대한민국의 주력 산업으로 충분히 육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부실과 부정의 굴레 그리고 규제와 용역의 시각이 아닌, 미래 한국을 이끌 또 하나의 주력산업으로 엔지니어링을 바라볼 정치권력이 나타나길 바란다. 그 전에 엔지니어링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것을 엔지니어, 협단체, 엔지니어링사가 마련해야겠지만 말이다.
정장희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