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뉴스를 장식하는 건 거대한 숫자들이다. 몇십조가 투입되는 공항, 산업단지, 철도, 도시 재개발 계획들이 발표되고 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내놓는 초대형 프로젝트들은 이름만 들어도 웅장하고 계획만 보면 국가적 미래를 설계하는듯 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익숙한 장면이 있다. 삽은 떴지만 진척은 없고 착공식만 요란할 뿐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은 거의 듣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가덕도신공항, TK신공항, 용산서울코어 등 수십조 원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거창함에 비해 실행력은 부족하고 리스크는 고려되지 않았다. 예산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고 기한은 촉박하다.
먼저 가덕도신공항은 총사업비만 15조4,000억원이다. 그러나 전략적 기획이나 실행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해보자는 식으로 시작됐다. 지난 2021년 특별법 제정을 통해 예타가 면제됐음에도 온갖 이슈에 발목이 잡혀있다. 경제성 검증 부족, 조류 충돌 관련 안전성 문제, 주민 보상 및 이주 문제에서 비롯된 촉박한 공기 등 리스크가 산적해 있는데도 2029년까지 개항이 관철되고 있다.
TK신공항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내 최초 민·군 통합 신공항 이전이라는 의의는 있지만 17조 원에 달하는 건설 사업비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뚜렷한 해답이 없다. 대구시는 정부에 공공자금관리기금 융자 지원을 요청한 상태지만 사업성 부족시 그 부담은 시민의 몫이 된다. 이밖에 특별법 개정 지연, 부지 이전에 따른 주민 갈등, 정치적 변수까지 다양한 장애 요소들이 사업 진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용산서울코어는 100층 규모 랜드마크를 내세운 초대형 도시개발이다. 용산역 철도차량기지 부지를 복합업무지구로 조성하는 프로젝트로 주거시설·호텔 등을 포함한 종합 업무지구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과거에는 한국판 맨해튼으로 불리며 큰 기대를 모았으나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사업이 좌초됐고 당시 수천억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재추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오는 2030년 완공 목표지만 대규모 재개발 경험 부족과 과도한 사업 규모, 서울 한복판이라는 입지 민감성 등 복합적 리스크가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초대형 프로젝트들의 성공 여부는 복합적인 요인에 달려 있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시대에 초대형 프로젝트는 단순한 개발을 넘어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러나 수조 원이 투입된 사업들이 착공 이후에도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표류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단지 예산 부족이나 기술력 부족 때문이 아니다. 구조적인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다. 다음 네 가지가 그것이다.
첫째 기획보다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한다. 초대형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지역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중대한 국책사업이다. 그러나 본래 목적을 벗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선거철이면 지역 표심을 노린 선심성 공약이 판을 친다. 사업의 명분은 거창하지만 실행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없다. 정쟁을 피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타당성과 수요에 기반한 기획이 선행돼야 한다.
둘째 안일한 낙관주의가 팽배하다. 초대형 프로젝트는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그만큼 경기의 변동성과 장기간의 예산 투입계획을 고려한 리스크 관리가 요구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수요는 과장되고 비용은 축소되며 일정은 낙관적이다. 이 정도면 되겠지란 안일한 태도는 착공 이후 수많은 변수 앞에 속수무책이 된다. 비용이 초과되면 결국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다. 초대형 프로젝트일수록 실증적인 데이터 기반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셋째 계획이 부실하다. 계획은 단순한 일정표가 아니다. 모든 변수를 포괄하는 종합 설계도가 바로 계획이다. 삽부터 뜨는 프로젝트는 나중에 두세 배의 비용을 치른다. 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전문가 집단의 참여가 필요하다. 계획 검증과 피드백을 반영하는 매커니즘이 구축돼야 한다.
넷째 갈등 조정 전략의 부재다. 초대형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포함한다. 주민들은 이주 보상 문제로 반발하고 환경단체는 생태계 보존을 이유로 행정소송에 나선다. 이러한 갈등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문제는 갈등 조정을 위한 준비와 시나리오가 처음부터 빠져 있다는 데 있다. 초기 단계에서부터 갈등을 예상하고 조율할 수 있는 거버넌스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규모가 큰 만큼 실패의 위험도 크다. 하지만 모든 초대형 프로젝트가 실패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복잡성과 고난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완료된 사례들이 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자. 히스로공항 제5터미널은 △디지털 시뮬레이션 기반 계획 △모듈러 공법 도입 △팀워크 중심 협력 구조로 성공했다. 무엇보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킨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 주효했다.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에 세워진 테슬라 기가팩토리는 △모듈화 전략 △정책적 인센티브 확보 △자동화·로봇 기술 △친환경 인프라 구축 등으로 성공헀다.
국내에도 초대형 프로젝트 성공 사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YRP 사업과 인천국제공항 1단계 건설이 있다. YRP 사업은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힌 10조 원 규모의 복합 프로젝트였다.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음에도 △한·미 협정 체결 △ PMC 조직으로 예산·일정 통합 관리 및 자원 최적화 관리를 했다. 인천국제공항 1단계 건설은 영종도 바다를 매립해 공항을 건설한 초대형 프로젝트다. 초기부터 종합사업관리 방식을 도입했고 4년에 걸친 철저한 사전 계획 수립을 거쳤다. 매립지에 설립한다는 초기 구상이 공항 규모를 확대하고 소음·민원을 최소화하는데 기여했다.

규모가 크고 복잡한 초대형 프로젝트를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까? 수십조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는 실패할 경우 국가나 지자체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제대로 기획하고 철저히 준비한다면 그만큼 막대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다. 초대형 프로젝트 성공을 위한 다섯 가지 키워드를 제안한다.
첫째 기획이 곧 무기다. 프로젝트의 성패는 기획 단계에서 결정된다. 수요 예측, 비용 산정, 리스크 분석, 이해관계자 참여는 기본이다. 수요를 과대산정하면 인프라가 낭비되고 비용을 과소평가하면 예산이 늘어난다. 이해관계자 참여도 기획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한다. 둘째 팀워크가 중요하다. 전담 조직인 PMO는 필수다. PMO는 프로젝트의 방향을 설정하고, 소통과 조정을 맡는다. 책임과 역할을 설정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팀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리스크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사전에 문제를 예측하고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예비비를 확보하고, 복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현장 중심 시공 대신 공장 생산으로 바꾼다. 모듈러 전략을 써서 생산성을 높이고 리스크를 줄인다.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현장 안전사고 예방에도 기여할 수 있다. 날씨나 인력 조달과 같은 변수에도 강하다. 이를 위해선 BIM 기술의 도입이 전제다. 다섯째 탄소중립 및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지속가능한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완공이 끝이 아니다. 친환경과 저탄소 전략은 기획부터 전 생애주기에 걸쳐 고려돼야 한다. 지속가능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초대형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수행은 이젠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됐다. 프로젝트가 단순히 거대한 삽질로 끝나지 않으려면 기획, 팀워크, 리스크 관리, 모듈러 전략, 지속가능성 다섯 가지 키워드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 제대로 시작해야 제대로 끝날 수 있다는 진리에서 출발한다.
즉, 사업초기 타당성조사는 물론, 기획부터 충분하고 면밀한 분석이 앖디.
이는 정부의 사업 초기 예산만 보면 사업의 첫 단추에 대한 중요성을 전혀 인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