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링데일리) 이명주 기자 = 사례 1. A엔지니어링사는 수년간 거래를 이어온 중견 시공사인 C사와 10억원 규모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사업이 시작되면서 C사는 지급해야 할 기성금의 절반만 지급했지만, A사는 기존 관계 때문에 과업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준공 시점에 발생했다. C사는 아무런 설명 없이 준공 대금의 50%만 지급했고, 나머지 금액 지급 여부는 회피하고 있다. 결국 A엔지니어링사는 총 계약금 중 절반만 받고 과업을 수행해 준 상황이 됐다.
A엔지니어링사의 어려움은 C사의 자회사인 D시공사와 거래에서도 반복됐다. A엔지니어링사는 D사와 6억원대 설계 계약을 체결하고 과업을 완료했지만, D사 역시 기성금과 준공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
결국 A엔지니어링사는 오랜 협력 관계에도 불구하고 C사와 D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진행하는 선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사례 2. B엔지니어링사는 E시공사와 턴키사업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을 수주했다. 문제는 실시설계 계약 단계에서 발생했다. 컨소시엄 주관사인 E 시공사는 B엔지니어링사에게 보험료 납부와 함께 사고시 발생하는 손해 배상 비용 지급 조건을 계약서에 넣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무리한 E시공사의 요구에 B엔지니어링사는 수차례 법적 중재를 시도했다. 그러나 을의 입장에서 갑의 요구를 거부하는 행위 자체가 업계 내에서는 부정적 이미지 낙인을 뜻하는 만큼, 결국 E시공사의 요구가 대부분 반영된 계약서가 최종 확정됐다.
중견 건설시공사들의 건설 엔지니어링사들에 대한 책임 전가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견 건설사들과 건설 엔지니어링 업체들간 법적 분쟁 건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연간 200여건 안팎이었던 건설 시공사와 건설 엔지니어링사간 법적 분쟁은 작년 4분기 이후 분쟁건수가 평년 대비 약 2배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엔지니어링 업계에서는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원인 중 상당수가 시공사들의 비용 줄이기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시공 관련 사업이 인건비 및 재료비 등 고정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감소하자 엔지니어링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문제는 중견 시공사들의 이러한 움직임이 엔지니어링사들에게는 수익률 하락으로 직결되는 것은 물론 적자를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엔지니어링 업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10억원 가량하는 설계사업을 수주했을 경우 3~4%인 3,000만원에서 4,000만원 수익을 얻는 것이 현실이다"며 "그런데 시공사들이 일방적으로 사업대가를 지불하지 않거나 수주금액의 5%에 달하는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을 경우 엔지니어링사는 수익은 고사하고 사업을 수행할수록 적자로 빠지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시공사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갑질 수준의 행위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법적인 사항을 위반해도 시공사가 받는 제재 수위가 높지 않다보니 정당대가를 지불하는 것에 비해 이익이라고 판단한 시공사들이 늘고 있어 시장의 혼란성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시공사들의 일방적인 갑질행위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은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발주처를 대행하는 시공사들이 사실상 전권을 쥐고 있는 만큼 갑질행위 또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부당한 계약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법률이 존재하고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갑 위치에 있는 시공사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한다"며 "업계 현실이 반영된 제도가 나오지 않는다면 엔지니어링사들이 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