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왜 무너졌을까. 도덕적 타락, 고트족 침입, 전염병 등 많은 의견이 있지만 또 하나의 이유로 나는 물을 들고 싶다. 아우렐리아누스는 고트족을 막기 위해 높고 튼튼한 철옹성을 쌓았다. 그러나 고트족이 성안에 물을 공급하던 수로를 파괴하자 로마는 스스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로마에 물이 없다면
로마는 오랫동안 제국이 지속된 것도 놀랍지만 그렇게 빨리 쇠락한 것도 아이러니하다. 로마 멸망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하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종교에 너그럽던 로마가 배타적인 기독교로 인해 포용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도덕적 타락을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식수마저 구하기 어려운 불결한 환경과 페스트 천연두의 창궐로 한때 100만이 넘던 인구는 30만 명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후 로마는 고트족인 오도아케르에게 황제자리까지 넘겨주면서 476년까지 연명하긴 했지만 멸망의 서곡은 수로가 파괴됐을 때 이미 시작된 게 아닐까. 팽창기의 수로가 수축기에는 멸망을 재촉하는 원인이 된 것이다.
수로의 역사와 규모
수리 측량 건축은 물론 공학 기술이 총동원된 수로는 탁월한 균형과 조형미를 갖춘 정교한 시설물이다. BC.312년 처음 만들어진 아피아(Appia)는 평범한 도랑형식이지만 점점 수준 높은 기술이 적용되었다. 아치교(橋)로 유명한 마르키아(BC.144)와 가르(BC.12)는 수로의 백미로 꼽힌다. 이후 테프라(BC.125), 율리아(BC.33), 베르지네(BC.19), 알시에티나(BC.2), 클라우디아(AD.47), 아니오노스(AD.52) 등이 차례로 건설되었다.
수로의 형태
구거를 만들 때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물이 새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돌 틈에는 시멘트를 채웠고 외부는 흙을 되메우기 전 역청을 발라 물이 세지 않게 하였다. 일반적인 형식은 구거가 선호되었지만 일정경사가 유지되어야 하는 수로의 특성상 고가교나 터널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하천을 통과하는 고가교는 급류에 손상되지 않게 지간을 넓히고 아치를 높이어 안정된 형태가 되도록 하였다.
베르지네(Vergine) 수로
모든 수로는 나름대로 특색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공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수로는 베르지네다. 베르지네의 수원은 시내에서 15km 떨어진 루쿨라누스 샘이다. 여기서 나온 물은 석회분이 거의 없고 맑아서 지금까지 트레비 분수의 수원으로 사용된다. 베르지네는 중간에 구릉과 계곡이 많아서 터널과 고가교는 물론 사이펀 시설 등 당시 공학기술이 총동원되어야 했다.
가르강의 수로교(Pont du Gard)
BC.12년 만들어진 가르(Gard)는 전체 길이가 40km에 이른다. 프랑스 고대도시 네마우스로 외르강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만든 것이다. 수원지에서 도시까지 표고차가 17m에 불과해 경사관리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울기가 100m에 4cm 정도였으니 말이다. 특히 '가르강 수로교‘는 건축기술과 예술적 감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다리다.
길이 275m 3층 아치로 만들어진 이 구조물의 높이는 49m에 이른다. 아래 2개 층은 급류 영향을 적게 받도록 아치 폭을 25m로 크게 하였으며 높이도 1층 22m, 2층 19m로 만들었다. 물이 닿지 않는 3층은 간격을 4.8m로 줄여서 하중이 분산되도록 하였다. 수로폭도 위로 올라갈수록 6.4m, 4.5m, 3.0m로 좁혀 구조가 안정되도록 하였다.
배수로(Cloaca maxima)
1. 헤르쿨라네움 배수로
헤르쿨라네움은 79년 베스비오 화산 폭팔시 품페이와 함께 묻힌 도시다. 최근 86m에 이르는 배수터널과 정화조가 발굴되었는데 이외에도 간선도로망과 목욕탕 피스키나(수영장) 밑에는 잘 정비된 배수로가 설치되어 있다.
2. 예루살렘 배수로
로마 유적은 아니지만 솔로몬 신전의 하수터널은 살펴볼 만하다. 길이 800m, 단면이 3㎡인 이 터널은 예루살렘 남문을 통해 사해까지 연결된다. BC.70년 로마 침공 시 유대인의 탈출로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3. 베스파시아누스 배수로
티그리스 강 하구의 항구도시 셀레우키아에 있는 배수로다. AD.70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시작하여 티투스 황제 때 완성되었다. 1,380m나 되는 암반을 파내 만들었으며 평시에는 배수로로, 홍수 시는 도시범람을 막아 주었다.
테베레 강과 로마
▲ 동일기술공사 김재성 |
먹을 물보다는 우기에 집중되는 호우로 범람의 피해만 준 테베레 강, 그러나 로마가 물의 도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불리한 조건 때문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물을 얻을 수 있었다면 수십 킬로미터나 이어진 장엄한 수로가 만들어질 수 있었겠는가. 고대문명의 모든 유산이 그렇듯이 로마 수로 역시 불리한 자연조건을 슬기롭게 극복해 낸 멋진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