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는 직원 비율에 따라 가점을 주는 일명 고용안정PQ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50% 이상을 보유하면 PQ에서 0.4점의 만점을 받는데 업계에서 이를 충족하는 회사는 단 한개도 없고 30% 맞출 수 있는 회사도 5개가 되지 않는다. 업계 특성상 감리원이 절반을 차지하고 이직이 잦다보니 뻔히 예상된 결과였다.
반발이 거세지자 조달청은 근속기간을 5년으로 낮추는 안을 제시했다. 업계의 대다수 입장은 제도 철회다. 당연하다. 이렇게 근본없는 제도가 또 있을까. 10년의 근거는 어떻게 결정된건지, 반발에 부딪치니 무자르듯 반으로 잘라 5년으로 하겠다는 것은 무슨 셈법인지 모르겠다.
만점자가 없어 기준을 낮춘거라면 애당초 이 제도는 왜 하는 것일까. 사람으로 돌아가는 업계에 이렇게 단순한 숫자놀음으로 정책을 한다는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건설엔지니어링이 아닌 삼성이나 현대자동차에 이러한 정책을 내놨다고 하면 당장에 신문 1면을 장식할 뉴스다.
이번 PQ제도는 박근혜 정부 때 시행된 청년가점과 데칼코마니다. 청년가점은 총 인원의 3%를 신입사원으로 채용하게 해서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을 젊게 만들고 청년 기술자를 양성하자던 취지였다. 회사가 언제까지고 커질 수 없으니 일몰제가 당연했지만 결국에는 10년이 지나면서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다. 연간 50여명 이상을 뽑는 대형사의 경우에는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평균 30억원을 쓴다고 한다. 한계에 부딪치니 시니어급의 연봉을 삭감하면서 희망퇴직을 유도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이번 사태는 단순하게 가점을 받고 못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회사의 인사권에 간섭하고 이를 강제로 점수화하겠다는게 핵심이다. 청년가점도 마찬가지다. 제도 도입 때 찬반을 넘어 헌법소원을 냈어야 할 일이다.
업계의 대응이 벌써부터 우려스럽다. 협상이 안되면 강경대응을 한다는데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동안 해왔던것처럼 건설엔지니어링협회를 통해 탄원서 정도 돌리는게 전부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보다 더한 사태에서도 업계는 늘 탄원서를 마스터키처럼 써왔다.
어디 이뿐인가. 업계의 모든 관행과 악습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다. 목소리를 내야할 때 수주에 발목잡혀 안주하기 바쁘니 발주청은 업계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호구로 인식하고 있다. "얘들한텐 그래도 돼"라는 기조가 국토부를 시작으로 행안부, 고용부, 기재부까지 번져가면서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이번에는 다르다’라고 해도 결국에는 눈에 날까 걱정만하다가 정부가 대안을 제시해주면 합리적인척 정신승리하는 결말이 어디 한두번이던가.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가 실험용 쥐입니까, 왜 맨날 우리를 정책실험장으로 쓰는겁니까.” 그렇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다가 운명을 다하는게 실험용 쥐의 존재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