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술 경쟁 아닌 성비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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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기술 경쟁 아닌 성비 경쟁
  • 박성빈 기자
  • 승인 2025.06.1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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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기자

조달청은 PQ신인도 평가에서 여성기업 0.5점,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 0.4점 가점을 주고 있다. LH는 여성기업에게 0.5점, 수자원공사는 여성기업과 공동수급을 한 컨소시엄에게 1점을 준다. 지방계약법은 1억원 이하 입찰에선 여성기업과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명분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독려와 여성 기술자 경력 육성이다. 엔지니어링업체 대부분이 PQ 점수를 만점에 가깝게 관리하는 상황에서 이 수치는 낙찰을 좌우한다.

업계는 특히 토목시장에서 적용할 수 없는 규정이라고 반발한다. 한국엔지니어링협회가 발간한 2024 엔지니어링통계편람을 보면 지난해 기준 여성기술자는 2만5,464명으로 전체 기술자 19만6,954명의 12%수준이다. 10년 전인 2015년에도 12%에 달했다. 20%를 넘긴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업계는 신입사원 40명 가량을 채용하면 여성은 5명이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성비불균형이 산업의 특성이자 기본값이란 증명이다. 가점으로 여성의 산업 진출을 장려한다고한들 별 유인이 되지 못한다는 근거다.

그나마 고용된 여성인력은 특정 분야에 매몰돼 있다. 도시계획·조경·환경 업종에서 여성 엔지니어의 섬세함이 좋은 결과물로 이어진다는 세평이 돌지만 실상은 다르다. 덜 힘든 직종이라서가 공통된 반응이다. 기관협의가 많아 사무실 근무 비중이 높고 도로, 철도, 항만처럼 합사로 들어가 현장에서 상주하는 일이 적다. 여성 기술자의 합사, 현장 근무 기피가 업종 쏠림으로 정착됐다.

무엇보다 기술과 관련 없다. 건설엔지니어링 시장에서 사업성패를 가르는 건 기술이다. 해당 제도가 기술력 중심 경쟁을 왜곡시킨다는 비판이 거센 것도 그래서다. 기술 제안보다 여성 고용 여부가 수주를 좌우하는 게 상식적이냐는 것이다. 조달청 기준을 그대로 차용하는 항만 분야에서 기술 변별력이 없어진 것은 제도의 폐해를 보여주는 예시다. 

여성기업뿐만 아니라 장애인기업, 청년고용 가점 등 경제논리보다 기업의 사회적가치 실현을 더 중요하게 보는 흐름이 확대되고 있다. 기업 성장은 노동자와 사회가 동시에 애쓴 결과이니 사회적 환원 의무가 있다는 논리다.

정부는 편파적 룰을 강행하고 있다. 기업이 누군가를 착취했는가. 가점을 확보하지 못하면 입찰 참여 자체가 불가능한 업계에게 신인도 평가는 겁박과 같다.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돕는 것이 돼야 한다. 업계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면 그만이다. 기업 재산을 강탈하는 것과 지금 제도가 다른 점이 무엇인가. 깡패 으름장이다. 윤리적 목적이 비윤리적 절차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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