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업 끝내도 인허가 최대 6개월
(엔지니어링데일리)박성빈 기자=엔지니어링사가 본 설계를 미리 끝내도 중앙부처 인허가 과정이 길어지면서 사업 지연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확장·보수 같은 간단한 사업조차 허가가 늦어져 전체 공정에 병목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16일 건설엔지니어링업계에 따르면 시·군 단위 발주 사업은 상위 기관의 승인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자체-도-중앙부처 순으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번거로운 행정 작업으로 제동이 걸리고 중앙부처는 특별한 이유 없이 최대 6개월동안 심의를 미룬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가령 도로·철도설계의 경우 3만㎡ 이상 농지가 사업구간에 포함되면 도로법·철도건설법에 따라 광역지자체 및 농림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3만㎡는 도로로 치면 3km가량으로 단순 확장, 수정 공사도 해당 면적을 넘어선다.
엔지니어링사는 우선 농지 용도 변경 내용을 담은 조서를 써서 발주청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이때 발주청은 조서 작성의 기반이 되는 연속지적도를 제공한다. 연속지적도란 땅의 경계, 소유 관계를 명시한 문서로 지속적인 최신화가 이뤄진다. 문제는 업체가 조서를 쓰는 동안에도 지적도 내용이 갱신되고 있다는 점이다. A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설계를 마치고 조서를 쓰면 그 사이 땅의 번지수가 분할되거나 합쳐진 경우가 다반사”라며 “재작성으로 한 달 이상 잡아먹힌다”고 말했다.
지자체 승인을 마무리해도 농림부 결재가 걸림돌인 것으로 밝혀졌다. 담당 부서와 전문가 심의를 뚫어야 하는데 부서 인력이 적고 외부 전문가 심의도 분기마다 열려 최종 승인까지 3-6개월이 소요된다. B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오죽하면 행정 처리를 기다리는 시간과 과업에 쓰는 시간이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도심 내 토목 인프라도 개발제한구역을 가로질러 설계해야 할 때가 있다. 이 역시 상위 지자체의 승인을 거쳐 국토부 심의를 받아야 하고 마찬가지로 최대 반년이 걸린다. A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이해할 수 없는 건 국책사업은 국토부 심의가 면제”라며 “면제 해준다는 것 자체가 해당 과정이 행정주의의 산물이라는 증명 아닌가. 왜 지자체 발주 사업은 비효율적 행정절차를 밟아야 하는가”라고 했다.
업계는 국방부에 비해 국토부와 농림부는 양반이라고 입을 모은다. C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설계 노선이 대대·사단 예하 훈련장을 건드리면 군단부터 국방부까지 확인을 받아야 한다”며 “이들은 극비 작전성을 검토한다는 이유로 엔지니어링사와 일절 소통하지 않고 심지어 비용까지 청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산출 근거를 물어도 기밀이라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지자체가 중앙부처와 사전협의를 통해 이 같은 절차를 축소하는 것도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설계를 마치고 사업 구간을 확정한 시점에야 중앙부처 관할 용지가 포함된다는 걸 알 수 있어서다. 하세월인 승인·결재 절차를 피하기 위해 설계 노선을 처음부터 다시 정할수도 없는 형편이다. 업계는 산지관리법처럼 중앙부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는 범위를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50만㎡ 미만 산지까지는 산림청장 승인 없이 지자체장 단위에서 사업 집행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C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가 아닌 이상 해당 면적을 넘는 사업은 드물다”라며 “어차피 구체적인 용도 확인은 지자체 차원에서 꼼꼼하게 이뤄지고 중앙부처는 그 자료를 바탕으로 결재만 하는 것이다. 제도를 위한 제도는 이제라도 완화돼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