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연재⑥]저작권 짓밟고, 이해충돌 권장하는 한국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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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연재⑥]저작권 짓밟고, 이해충돌 권장하는 한국엔지니어링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3.10.25 11:14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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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개념 ZERO, 선진엔지니어링과 배치
전세계 대한민국만 유일한 실시설계내 시공설계
앞단 타당성조사, 실시설계 수주 위한 미끼

저작권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기준이다. 한국만 해도 80~90년대 리어커에서 불법복제된 카세트가 팔렸고, 일본만화도 해적판으로 유통됐다. 당장 중국을 비롯해 개발도상국에서 저작권은 남의 나라 이야기고 아프리카는 그 존재 자체를 모른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저작권은 자본주의의 핵심개념으로 때로는 과할 정도로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다. 노래나 영상 뭐라도 무단으로 사용하면 바로 소송을 당할 준비를 해야 할 정도다. 삼성 갤럭시가 애플 아이폰의 디자인을 약간 침해했다고 해서 7,000억원을 배상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저작권 개념 없으니 IDC 존재 몰라 
2023년 대한민국 엔지니어링 시장에서 저작권은 철저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엔지니어들이 해외사업을 하다 보면 저작권 때문에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국내에서 못 보던 개념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PMC와 독립설계검토-IDC, 시공엔지니어링-CE이 그렇다.


통상 엔지니어링사업에서 저작권의 핵심은 구조계산서다. 때문에 설계성과품에 도면과 수량산출서는 포함시켜 제출하지만, 구조계산서만큼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구조계산서를 포함해 모든 설계의 저작권을 발주처가 가져가 버리고, 상황에 따라 타업체에 공유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누구하나 창의적인 설계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셈으로 모두들 다른 엔지니어가 만들어낸 설계도를 카피하기 바쁘다. 실제 한국은 설계현상공모나 턴키 등 경쟁설계에서 탈락한 작품을 출품회사의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도용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도용은 범죄행위로 간주돼, 상상조차 힘든 페널티를 맞게 된다.

저작권을 철저히 인정하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실시설계의 구조계산을 검토할 수 있는 독립설계검토-IDC를 반드시 발주한다. 이를 통해 도면에 표시된 각종 부재의 치수가 맞는지, 산출된 물량이 맞는지 등 설계의 부실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 IDC 대가는 통상 실시설계의 30~40% 수준이다. 혹자는 “한국처럼 구조계산서를 성과품과 함께 받으면 따로 IDC 예산이 들지 않으니 좋은게 아닌가”라고 말한다. 이는 “너의 창의적인 작품을 다른 사람이 무단으로 도용해도 괜찮다”라는 말과 같다. 선진국에서는 유인원 취급을 받을 말인 셈이다.

저작권에 대한 항목은 FIDIC White Book에 “컨설턴트는 자신이 작성한 설계에 대한 권리와 여타 지적재산권 그리고 모든 문서에 대한 저작권을 보유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한국도 법체계상 저작권법과 특허법, 디자인보호법을 적용받아야 하지만 여전히 구조계산서는 제출되고 있고 설계감리자는 제출된 구조계산서가 타당한지 개략적인 검토만 한다. 저작권도 창의성도 안전도 무시한 행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시설계+시공설계, 불합리 극치 전세계 유일
IDC와 더불어 한국 조달절차에 존재하지 않는 분야가 시공엔지니어링-CE다. 시공엔지니어링은 시공 중에 발생하는 모든 설계를 수행하는 것이다. 문제는 국내는 시공설계비용을 공사비에 포함시키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건설사는 공사비내역에 CE가 반영이 안 되어 있어도 신뢰도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시공설계를 수행한다. 반면 중소건설사는 시공설계를 수행할 능력도 자체예산도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설구조물의 개략공사비를 산출하기 위해 설계사가 예시로 작성한 가설도면으로 시공을 한다. 이러다보니 부실사고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는 대책으로 가설구조물 설계를 실시설계에 포함시켰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가도 계상하지 않고 무작정 우겨넣었다는 점이다. 2013년 건설기술관리법이 건설기술진흥법으로 전면 개정되면서 48조5항에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는 반드시 가설구조물의 구조검토를 하도록 했다. 2년 후인 2015년에는 한 발 더나가 88조3항에 벌칙조항을 신설해 가시설의 구조검토를 하지 않은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러던 차에 최근에는 가시설을 대가 상향 없이 아예 BIM으로 설계하라는 고시를 추진 중이니, 진흥법으로 바뀐 건설기술관리법이 결국 진흥이 아닌 발목만을 붙잡는 규제법이 됐다.

문제는 법 규정을 떠나서 국토부가 말하는 가설구조물의 실시설계는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 시공사가 어떠한 장비와 가설구조물을 사용해 목적구조물을 시공할 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미래를 알 수 없는 말이다. 오히려 설계자가 특정 가설구조물을 상정해 설계를 하면 시공사가 보유한 가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현 상황은 엔지니어링사에게 모든 일을 떠넘기고 문제 생기면 처벌하겠다로 요약될 수 있다.

상식이 있는 정부라면 선진국처럼 목적구조물은 설계회사가 설계를 하고, 가설구조물은 시공사가 설계를 하는게 맞다. 당연히 현장설계인 샵드로잉 대가는 공사비에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시공안정성 확보를 위해 건진법 62조와 75조2항에 따라 시공사가 당연히 수행해야 할 설계안정성검토-DFS까지 설계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엔지니어링사는 설계단계에서 이미 구조계산을 통해 구조안정성을 검토를 끝낸다. 이를 통해 건설안전과 관련된 사항은 보고서와 특별시방서에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공중에 위험요소를 사전에 발굴해 위험성을 평가하고 저감대책을 수립하는 설계안정성검토까지 떠안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이는 시공사가 해야 할 일이지만 대한민국에는 DFS가 가설구조물 설계와 함께 조달절차에 없기 때문에 만만한 엔지니어링사에게 대가도 없이 모든 업무를 몰아주는 것이다. 당연히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엔지니어링사가 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시공단계에서 반드시 시공설계 조달절차가 만들어져야 한다. 시공설계는 목적구조물 시공을 위한 가설구조물 설계, 철근가공 및 조립과 같은 샵드로잉, 완성 후 구조물 형상을 맞추기 위한 부재형상관리 그리고 사공안정성검토까지 포함돼야 한다. 당연히 이 모든 비용이 공사비에 시공설계 비용으로 잡혀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엔지니어링 과업지시서는 기본설계에는 실시설계 업무가 많이 들어가 있고, 실시설계 과업지시서에는 시공설계에 해당하는 업무가 포함돼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발주자 입장에서는 같은 값이라면 기본설계+실시설계, 실시설계+시공설계로 일을 시키는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바보같은 짓으로 인식된다.

즉 기본설계 기간에 실시설계까지 추가해 업무를 하면 결국 본 업무인 기본설계의 부실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기간내 기본설계외에 실시설계까지 하느라 인력을 추가 투입해 적자가 발생한 엔지니어링사도 손해고, 부실한 기본설계 성과품을 받게 된 발주자도 손해다. 실시설계+시공설계도 마찬가지로 실시설계라면 실시설계만 충실하면 충분하고, 시공설계는 별도의 조달절차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해와 이해를 더 충돌시켜라, 부실과 예산이 늘어난다
덧붙여 한국에서는 대형엔지니어링사의 영업방침으로 자리잡은 전차 문제다. 한국에서는 통상 터무니없는 대가로 타당성조사를 수행한 뒤, 획득한 전차 가점을 통해 이후 발주될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수주하는 전략을 쓴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해충돌-COI에 전면 배치된다. 글로벌 기준에서 발주자는 COI가 발생하지 않도록 타당성조사를 수행한 엔지니어링사는 다음 단계인 기본설계에 참여할 수 없다. 턴키발주를 위한 입찰 안내서를 만든 엔지니어링사 또한 턴키설계에 참여가 안 된다. ADB는 실시설계자가 시공감리발주를 위한 입찰안내서-RFP를 작성했다면 시공감리에 참여할 수 없다. WB에서는 실시설계자가 시공감리-CS에 참여할 수 없다. 단 설계-감리 통합발주 일 때는 이해충돌이 발생하지 않아 참여가 가능하다.

이는 전단계 설계자가 정보를 독점한 채 다음 단계 업무에 참여하면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설계절차상 COI가 발생해도 별도의 조치는커녕 오히려 이해충돌을 권장하기까지 한다. 즉 타당성을 수행한 업체에게 다음 단계에 가점을 줘 수주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시공사도 턴키에서 입찰안내서를 작성한 설계사를 더욱 선호한다. 이 모든 행위가 글로벌 시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진국에서 이해충돌 방지가 가장 중요한 준법정신이고 윤리경영의 척도지만 유독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만 거꾸로 이해와 이해를 더욱 충돌시키는 아이러니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맨앞단에 있는 영역으로서 가장 중요한 타당성조사가 한국에서는 실시설계를 따기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니 당연히 설계부실과 예산증액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국적 정서와 불합리는 적어도 국내시장에서는 통용됐을지 모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어림도 없는 행태다. 해외시장 진출과 국내 엔지니어링의 불합리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준에 맞는 조달행정을 해야 한다. 저작권을 인정해 독립설계검토를 도입하고, 불합리의 끝인 실시설계로부터 시공설계를 분리해 부실공사를 예방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해만 충돌하는 설계조달절차을 대대적으로 혁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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숑숑 2023-10-27 10:04:53
이게 나라냐? 깡패지

엔지니어링사랑 2023-10-26 08:50:21
다들 이제껏 뭐하고 있었나 싶다. 이런 정도의 문건이 이제야 나오다니. 지금에라도 늦지 않았으니 연구기관은 이 기사를 바탕으로 연구를 하고, 협단체와 정부는 대정부 협력을 통해 선진엔지니어링 정책을 법제화시켜야 하는게 아닌가. 맨날 밥그릇 싸움만 하지 말고, 생각좀 하고 다 망해 가는 엔지니어링을 살리기 위해 지금에라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

호호 2023-10-25 20:34:54
이해와 이해를 충돌시키는 대한민국

bridgelover 2023-10-25 16:56:08
모든 지식산업은 강한 지식재산권 보호가 경쟁력이 시작되는 출발점 입니다.
남들은 다 뛰는데, 엔지니어링 쪽은 아직도 출발선에 대기중...
언제쯤이나 출발 총성이 울릴지....

777 2023-10-25 14:52:30
이놈의 한국엔지니어링. 엉망진창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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