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연재⑦]포상없이 처벌만 강요받는 엔지니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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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연재⑦]포상없이 처벌만 강요받는 엔지니어들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3.11.01 13:58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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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식에 설계사 없어…처벌용 명패에만 적시
“처벌보다 사태파악이 우선” 타코마브리지 교훈
글로벌 시장-엔지니어 존경↔한국-용역‧하대

▲설계사는 준공식에 잘해야 말석
지역의 랜드마크 준공식이 열리는 자리. 현장에는 정치인과 발주처, 그리고 주민들이 모여 숙원사업의 해결을 축하하는 큰 잔치를 벌이고 있다. 준공식 축사 1번은 국가사업이라면 국토부장관 또는 발주처 기관장이, 지자체 사업이라면 도지사 또는 해당지자체장이 맡는다. 이후 다수의 국회의원 등 정치인의 지루한 축사가 이어진다. 이어서 그동안 고생했던 발주처 감독, 시공사와 감리자에게 포상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 사업의 초기단계부터 현장조사를 통해 사업을 계획하고 인문환경을 고려해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사업의 내용을 직접 만들어냈던 설계자는 포상자 명단에 없다. 즉 작품의 창작자는 무대 뒤에 숨고 그려준대로 공사를 했던 시공사와 발주자만 주인공인 셈이다. 이 말은 애플의 스티브잡스보다 중국 폭스콘의 공장 노동자가 스마트폰 개발에 더 많은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눈에 보이는 것만 챙기는, 지극히 후진국스러운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국토부의 이런 표창장 수여에는 ‘우수한 공사관리를 통하여 건설공사의 질적 향상 또는 경제적인 시공에 기여했거나 기여하게 한 경우’라는 법적근거가 있다. 이대로라면 시공자와 감리자, 발주자만이 대상이 된다. 설계자는 수여기준에 아예 없다. 그래도 요즘에 세상이 바뀌어서 설계자 대표들도 말석이나마 준공식에 불러주고 있다. 

설계자는 수상자 명단에 끼지도 못하지만 사업설명판에는 반드시 설계회사, 책임자가 적시돼 있다. 이 명패는 자랑스러운 일을 했다고 기념하기 위해 새긴 것이 아니다.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된 이후 사고가 발생하면 설계회사와 설계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설계실명제를 도입한 결과다. 일종의 이마에 낙인을 찍는 행위로, 설계자를 창조적인 지식전문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처벌해야 할 용역업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사고가 발생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설계자부터 잡아들여 구속시키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만 봐도 1년 이상 징역을 내리고 있다. 일단 처벌을 하면 국민의 분노가 누그러진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로마시대에는 민중의 분노가 높으면 집정관은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귀족을 잡아다 목을 치는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했는데 2023년의 대한민국은 위정자가 아닌 힘없는 엔지니어만 잡아대는 셈이다. 

▲타코마 현수교 붕괴 풍동분야 발전 이뤄
선진국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처벌보다는 조사가, 그리고 재발방지가 우선이다. 그래서 사고조사위원과 함께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 등 사업관련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사고원인을 밝힌다. 우리처럼 설계자와 감리자를 구속시켜 놓고 사고조사위원들로만 조사하면 제대로 된 사고원인을 밝힐 수 없다. 

1940년 미국 타코마 현수교가 낮은 풍속에도 불구하고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다. 타코마교의 주경간장은 853m였으며, 당시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 긴 현수교로 초속 53m의 강풍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겨우 초속 19m의 바람에 교량 전체가 무너졌다. 

당시 미국에서는 설계자를 중심으로 한 사고조사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오랜 기간 조사 끝에 교량 붕괴의 원인이 바람세기가 아닌 진동-공진 때문이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결국 타코마 현수교 붕괴를 계기로 바람공학이 비약적으로 발전됐다. 케이블에 의해 지지되는 사장교나 현수교는 바람에 의한 진동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후 사장교, 현수교 뿐만아니라 고층구조물은 풍동실험을 실시해 진동현상이 발생하지 않게 설계하고 있다. 

엔지니어링이 지난 수천년에 걸쳐 발달했다고 해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자연환경이 많고 엔지니어는 이를 최전선에서 규명하고 극복해야 한다. 당시 미국에서는 이런점을 참작해 타코마 현수교 붕괴로 엄청난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음에도 설계자를 포함해 사업관련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만약 똑같은 사고가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부실설계와 부실시공으로 몰아 사업관련자 모두를 구속했을 것이다. 만약 진짜 문제가 있다면 철저한 조사 이후 잘못이 인정되면 그때 가서 처벌해도 늦지 않다.

▲엔지니어는 처벌대상, 상황따라 죄 덮어 씌워
대한민국에서 엔지니어를 처벌대상으로 보는 또 하나의 나쁜 사례는 발주처에 의한 부실벌점 남발이다. 부실벌점의 주요 내용은 각종 조사와 구조계산의 잘못 또 신기술‧신공법에 대한 이해부족, 수량산출 잘못, 설계도서 작성 소홀, 엔지니어 업무관리 소홀 등 엔지니어링업무 전반에 걸쳐져 있다. 달리 생각하면 발주자가 벌점을 주고 싶으면 어떠한 내용으로도 부실벌점을 줄 수 있는 것과 같다. 

신기술‧신공법을 발주자가 정해놓고 문제가 발생하면 설계사가 책임져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즉 발주자의 잘못을 설계자의 잘못으로 뒤집어 씌운다는 것이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예로 발주자에 대한 접대 소홀이나 전관부재로 밉보이면 위에 열거한 항목중 하나를 따와 벌점을 주는 경우도 상당하다. 

엔지니어링사의 부실벌점은 공동수급협정에서 정한 출자비율로 배분되지만 엔지니어의 부실벌점은 대부분 사업책임기술자에게 부과된다. 즉 B사의 잘못으로 부실이 발생하면 벌점을 원인제공자인 B사에 부과하지 않고 A사 소속의 사업책임기술자에게만 벌점이 부과된다. 참여엔지니어의 업무관리를 소홀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의 A사 소속의 사업책임기술자가 B사를 관리할 수 없는 구조가 대부분이어서 억울한 처벌이 비일비재하다. 

부실벌점은 경미한 부실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발주자에게는 큰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부실에 대한 경각심 차원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현실은 부실벌점의 도입목적과 다르게 설계사를 압박하고 발주자의 잘못을 전가하는데 남발되고 있다. 

부실벌점의 정점에는 부정당제재가 존재한다. 벌점이 잽의 연속이라면, 부정당제재는 엔지니어링사에게는 결정적 카운터펀치다. 수천명이 근무하고, 수백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엔지니어링사가 단 한번의 잘못으로 수개월간 영업이 정지된다. 물론 엔지니어링사가 결정적인 잘못을 한 사례도 있지만 사안이 애매하거나 발주처의 잘못을 설계사에 전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발주처에서 부정당사례가 발생하면 담당자만 처벌을 받지만 엔지니어링사는 전체가 괴멸적 처벌을 받으니 이 또한 부당하다. 

▲글로벌 기준과 동떨어진 엔지니어 처우, 사기 뚝뚝
얼마 전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희국 의원은 국토교통부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에게 엔지니어링에 대해 ‘용역, 용역 거리지 마라’라고 질책했다. 국토부가 주관하는 건설기술진흥법에서 용역을 삭제하는 법안이 통과된지 한참인데도 아직도 국토부 공무원들은 엔지니어링을 용역이라고 여기는 단적인 사례다. 

같은 엔지니어링인 플랜트나 소프트웨어산업은 발주자와 엔지니어가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데 유독 건설엔지니어링만큼은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용역업자로 천대받고 있다. 여기에 각종 규제와 전관 이권카르텔에 박한 연봉까지 합세하니 신입은 유입되지 않고, 있던 엔지니어는 타업종으로 탈토-토목탈출해 산업자체가 고사 직전이다.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시장에서 엔지니어의 대우는 상당히 높다. 미국은 석유공학에 이어 토목공학이 연봉과 성장률이 2위를 찍을 정도로 사회적 대우가 높다. 특히 토목공학은 의사나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전문직으로 분류돼 고액연봉을 제시받는다. 최근 기준으로 신입은 10만달러, 경력은 20~30만달러를 상회한다. 40살 넘어 임원을 달면 대부분 영업으로 전환되는 한국과 다르게 미국은 엔지니어트랙과 매니저트랙으로 진로를 본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만약 엔지니어트랙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원할 때까지 고액연봉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권 국가가 엔지니어에 대한 대우와 사회적 인식이 최고수준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인 동남아에서조차 발주자가 엔지니어고 엔지니어가 발주자로, 자신을 발주자의 직함으로 소개하지 않고 엔지니어로 소개할만큼 엔지니어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산업이 유지 발전되려면 유망한 인재들이 유입돼야 하는데 한국의 엔지니어링산업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다른 나라처럼 엔지니어에 대한 존경까지를 바라지는 않지만 최소한 용역 취급하고 하대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포상까지는 기대도 안 하니 지성없이 처벌하지 말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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숑숑 2023-11-03 11:25:42
공공 발주기관 민영화가 필수다

크리에이티브 2023-11-02 18:51:17
더 이상 못참겠다.
건설엔지니어링을 산업부나 과기부로
옮기도록 투쟁합시다.

삼안맨 2023-11-02 08:29:39
정부장의 엔지니어링 패기는 계속된다. 화이팅

목진만 2023-11-01 21:28:05
유럽에 20년 가까이 살고 엔지니이링 업종에서 5년 이상 근무해본 사람으로서 조심스럽게 댓글을 달아봅니다. 제가 보긴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대형시공사가 너무 많다고 봅니다. 토목 프로젝트가 많이 발주가 돼도 그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총공사비 절감에서 단연 설계비가 우선 절감이 되겠죠. 설계는 시공과 떨어질 수 없지만 수주 자체가 언제나 시공사를 끼고 이루어진다면 현재의 저가 설계비는 앞으로도 변화가 없다고 봅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힘들겠죠. 따라서 설계사들의 방향은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국제감각과 문화적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기초를 닦기 위해서 지금으로라도 경험있는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합니다.

엔지니어1 2023-11-01 16:05:08
소아과 의사를 기피하는 이유중 하나가 잦은 소송이라고 합니다. 탈토를 하는 이유도 엔지니어를 죄인 취급하는 사회적 풍토가 아닐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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