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연재⑤]TA경시되는 한국형 ODA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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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연재⑤]TA경시되는 한국형 ODA사업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3.10.18 10:14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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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단 영역 마스터플랜과 F/S 예산 늘려야
국격에 맞는 원조규모와 시스템 구축해야
부처별 다원화된 원조기관 일원화 절실

공적개발원조에서 TA-Technical Assistance는 수원국에서 요청한 사업을 검증하거나, 향후 원조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로 통상 MDB에서는 TA, 한국에서는 마스터플랜, 타당성조사로 불린다. TA는 각국의 원조기관과 MDB가 자체예산으로 컨설턴트를 선정하고 있어 기본적으로 무상이다. 즉 수원국과 공여국 또는 MDB간 실시협약을 통해 자금이 집행되는 유무상원조와는 자금성격과 출처가 다르다. 

유무상원조의 대상사업은 PMC, 실시설계, 시공관리, 시공이고 수원국의 이행기관인 EA-Excuting Agency, 즉 발주처가 공여자금을 가지고 컨설턴트를 선정하는 등 사업전반을 관리한다. 대한민국은 많은 저개발국가로부터 원조요청이 들어온다. 하지만 한정적인 원조예산 때문에 대다수 저개발국가에서 요청한 원조내용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래서 본사업에 들어가기 전에 공적원조기관에서 원조사업의 타당성과 사업규모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TA에 대한 중요도가 높고 사실상 사업의 원조여부를 좌우한다. 당연히 TA업무는 엔지니어링사의 역량과 기술력이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공적개발원조사업 내의 TA는 국내의 타당성조사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겉핥기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단영역 마스터플랜 확대해야
대한민국의 공적개발원조사업의 문제점은 TA형태의 기술차관이 거의 없어 원조사업의 체계적 발굴이 어렵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공적개발원조사업은 시공 중심의 개발협력차관이 대상이고, 수원국의 일방적 요청으로 이뤄지는데, 이마저도 일회성으로 끝난다. 당연히 파급효과는 미미하고 투자대비 효과도 떨어진다.

반면 일본의 JICA는 대한민국과 다르다. 일본의 개발원조는 마스터플랜을 통해 해당국의 기초조사를 철저히 한 뒤 공여·수원국 양국간 협의에 따라 유무상 차관사업을 선정한다. 이후 타당성조사와 기본계획을 JICA 자체적으로 발주해 원조 규모를 구체화 한다.

큰 틀에서 공적개발원조도 투자라고 본다면 성과를 극대화기 위해서는 즉흥적이고 일회성이 있는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중인 필리핀 해상교량 연결사업의 예를 들어보자. 이 사업을 대한민국에서 개발협력차관으로 원조하고 싶다면 우선 필리핀 정부의 도움을 받아 해당지역의 연륙·연도교 마스터플랜부터 수립해야 한다. 이 계획에 따라 사업추진의 우선순위, 재정사업, 유무상원조, 민간투자사업으로 분류해 각 사업의 특성에 맞는 전략을 짜야 한다. 우선순위에 따라 원조대상사업이 마련되면 필리핀 정부와 협의해 타당성조사와 기본계획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엔지니어링사가 짠 마스터플랜 정보를 한국시공사와 공유하고 또 공동으로 필리핀 EA와 교류한다면 향후 발주될 재정사업 수주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PPP사업 또한 한국 건설사 및 공기업 그리고 금융권과 긴밀한 협조를 통한다면 한국형 민간투자사업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당연히 최전선, 앞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은 엔지니어링사가 맡아야 한다. 

▲즉흥적, 일회성 지원 지양해야
정부는 실시설계보다 앞단에 있는 마스터플랜과 타당성조사에 대한 기술차관 비중을 높일 필요도 있다. 최근 EDCF가 기술협력차관으로 추진중인 필리핀 PGN교량이 있다. 실시설계비가 600억원, 공사비는 4조원에 달하는 대형프로젝트다. 규모가 규모다보니 대한민국 단독으로 차관을 제공하기는 어렵다. 설사 지원하다고 해도 이 1건으로 필리핀 교량시장에 파급력을 가져오기 힘들다. 

하지만 마스터플랜과 F/S 등 TA를 대한민국 주도로 시행한다면 어떨까. 실시설계 600억은 단 1건으로 그치겠지만 마스터플랜으로 풀어낸다면 1개 교량당 50억원을 배정해 총 12개의 교량에 대한 타당성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 이 12개 사업의 뒤따른 실시설계와 감리, 시공까지 후속수주도 기약할 수 있다. 

필리핀은 장기적으로 50개의 해상교량이 대기하고 있다. 우리 엔지니어링사가 제대로된 마스터플랜을 시행한다면 대한민국이 필리핀 교량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선점할 수 있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실시설계가 아닌 시공사업을 나누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2,000억원 규모 시공사업 하나를 나누면 40개의 밀도 있는 타당성조사를 할 수 있다. 제대로만 한다면 후방사업 수주는 공사비 2,000억원 1개 사업의 수십배가 될 수 있다. 

결국 공적개발원조는 시공, 실시설계 위주의 후방산업이 아닌 마스터플랜, F/S 등 TA중심의 앞단 위주로 실시하는게 효과가 배가된다. 정부가 원조하는 건설사업이 뒤죽박죽이 된 것도 앞단이 아닌 후방사업 위주로 판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공적개발원조를 기약하려면 결국 마스터플랜과 F/S의 비중을 높여야 하고 이 부분을 해당국과 실시협약을 체결해 기술차관을 제공해야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부처별 경쟁 원조사업, 일원화해야
국내 타당성조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이 제공하는 공적개발원조 또한 겉핥기식 TA와 낮은 엔지니어링대가로 신뢰성이 낮다. 타당성조사는 향후 천억원대 이상의 사업비를 가진 유상차관여부를 결정해야하는 잣대가 됨에도 불구하고 건당 대략 10억원 내외로 글로벌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충분한 예산이 수립된 상태에서 현장조사를 수행해야 사업의 추진방향과 정확한 사업비를 추정할 수 있는데 한국형 TA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유상차관인 EDCF만 봐도 해외사업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국내 입낙찰제도를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 실질적 TA를 가능케 하려면 엔지니어링 대가를 공사비요율방식이 아니라 실제 M/M와 실제 인건비를 적용하는 글로벌실비정액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통해 EDCF의 TA를 수주하면 무조건 적자라는 인식을 불식시켜야 한다.

대한민국 공적개발의 또 다른 문제점은 유상인 EDCF와 무상인 KOICA, 즉 기획재정부와 외교부로 이원화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토부가 PPP를 활성화한다며 설립한 KIND를 비롯해 각 부처에서 해외진출을 위해 조직과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원조기관 가운데 한 정부에서 이원화를 넘어 다원화된 조직을 운용하는 곳은 없다.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미주개발은행, 유럽부흥개발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뿐만 아니라 개별국가 원조기구도 모두 일원화 돼있다. 당장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했던 일본 JICA만 해도 유무상원조와 PPP까지 일원화돼 통합원조가 가능하다. 사실 일본도 무상기관인 JBIC와 유상인 JICA로 양분돼 있었지만 결국 JICA로 통합한 바 있다. 원조사업의 마스터플랜, 타당성조사, 설계와 시공 등 모든 절차의 일관성 유지와 효율성 제고 때문이었다. 

한국은 GDP10위의 선진국이다. 공적개발원조 또한 선진국 위상에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기준은 후방보다 전방분야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지는 것이 기본이다. 이를 위해 마스터플랜과 실질적인 타당성조사에 더 많은 예산을 투사해야 한다. 이 모든 절차를 일원화된 한 개의 원조기관이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또 일본의 1/10 수준밖에 되지 않는 원조규모도 대한민국 국격에 맞게 올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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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ybird 2024-02-07 08:40:14
국내엔지니어링 회사들이 MDB가 발주하는 TA사업에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엔지니어 1인이 몇개의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국내 현실에, 해외 출장 및 상주 요건 등
엔지니어들을 온전히 한 프로젝트에 투입해야 하는 TA성격상 어느 회사가 TA사업에 참여하라고 할지
마찬가지로, 국내 발주처가 TA사업으로 입찰하면 역량있는 국내 엔지니어링사가 과연 들어올까?

불의를보면꾹참어 2023-10-19 10:03:53
정책 당국자들은 대충 일수 밖에요
해외에 진출을 안해도 금빛 철밥통을 차고 있으니 끄떡 없으니까
자꾸 옆구리 찔러 해외에 진출하라하면 한군데 골라 샘플로 하는척만 하면 되니
결국 국토부를 비롯 도공 이하 민간기업화 해야 함 그게 정답임

삼안맨 2023-10-19 08:50:39
타당성조사에 돈을 더 많이 써야 모든 것이 더 좋아진다는 인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협단체나 여기저기에서 제대로 뜻도 모르고 타당성조사가 중요하다고 했지, 이렇게 실증적으로 내용을 다뤄준 것은 정부장님이 처음인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김군 2023-10-18 16:47:10
대한민국은 엔지니어가 경시됨

그릿 2023-10-18 12:58:28
대한민국의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은 글로벌스탠다드와 일치하는 게 없네요.
이러한 환경에서도 한국의 건설엔지니어가 해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건설엔지니어랑산업의 정책입안자들은 봉급을 반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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