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연재⑪]글로벌 눈높이에 맞는 법·제도 정상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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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연재⑪]글로벌 눈높이에 맞는 법·제도 정상화 방안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3.12.06 10:33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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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담이행 활성화로 엔지니어링업계 구조개선 이뤄져야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공감대 형성해야
규제 일변도 정부정책, 글로벌스탠다드와 격차 보여

1960년 5.95명이었던 한국의 출산율이 지금은 0.7명으로 전세계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인구소멸의 속도가 14세기 창궐했던 흑사병 때와 같다니 이야기 다한 것이다. 이 말은 결국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신규로 SOC를 확충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와 같다. 기건설된 시설은 유지관리나 잘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철거하면 그만이다. 줄어드는 세수에 맞춰 국가를 운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링산업은 어떨까. 국내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니 이대로 둔다면 정맥에서 피가 빠지듯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2013년 건설기술관리법이 건설기술진흥법으로 개정되면서 내걸었던 3대 비전이 지식기반, 고부가가치, 해외진출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에서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들이 줄기차게 시행됐고 엔지니어링업계도 타성에 젖어 변화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다. 현시점의 한국 엔지니어링은 저부가가치 노동집약형 내수용산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실 글로벌스탠다드라는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GDP10위를 이끌었던 한국의 돌파력있는 건설산업이 효율성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만 엔지니어링산업을 할게 아니라면 해외기준에 맞출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노동력을 갈고 영업을 해서 이윤을 창출하는 산업화시대의 방식으로 안된다는 얘기다. 글로벌시장처럼 엔지니어링에서 지식기반과 고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있으려면 현재의 엔지니어링제도를 글로벌스탠다드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한국식으로 재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부작용이 없다. 11번에 걸친 데스크연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글로벌과 등치’로 정리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글로벌제도와 한국의 제도가 어떻게 다른지 짚어본다. 

▲중소를 강소로, 대형사는 글로벌기업으로 분담이행 필요해

1회에서 지적했던 공동도급방식은 글로벌 시장 관점에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갈라파고스형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 실무에서는 분담으로 이행되는데도 실제 입찰에 참여하려면 모든 분야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게 얼마나 어이없는 제도인가. 세계적인 실적과 높은 수준의 터널엔지니어들이 의기투합해 엔지니어링사를 설립해도 한국에서는 재정사업에서 낮은 수준의 터널컨설팅에도 참여할 수 없는 구조다. 결국 엔지니어 실적 쌓기에도 애매한 턴키합사를 떠돌거나 자신들보다 실력이 낮은 원도급사의 하청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를 타개하려면 분야별로 3명씩 뽑아 명목상 면허등록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5~6개 분야를 추가하면 경쟁력 있는 분야가 명목상 생성된 분야의 비용까지 먹여 살리는 구조가 돼 어디서도 볼 수 있는 갑남을녀엔지니어링사로 전락하게 된다.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턴키/민자 그리고 글로벌시장에서처럼 분담이행으로 컨소시엄을 짤 수 있게 하면 된다. 효율을 중시하는 민간과 글로벌이 분담이행을 하는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분담이행이 활성화되면 중소사는 강소사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대형사 또한 불필요한 분야를 정리하고 프로젝트별로 초강력 선단을 구축하여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글로벌 PMC 진출 고려해야

2회에서 다뤘던 PMC는 한국엔지니어링이 앓고 있는 내부의 중병을 치유하고 글로벌진출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발주자를 대행하는 PMC는 미국·캐나다의 주력분야로 엔지니어링 고부가가치의 화신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한국의 PMC는 건설공기업과 국토부산하 국토청이 독점하고 있다. 국토부가 대한민국정부를 대행하고, 다시 공기업과 국토청이 국토부를 대행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글로벌 시장에서는 공기업과 국토청의 역할을 엔지니어링사가 PMC라는 형태로 대행하고 있다. 즉 중간도매상을 없애고 산지직거래를 하고 있는 셈이다. 

PMC를 통한 해외진출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현재 공기업이 밖에 나가서 PMC를 수주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공기업을 없애거나 엔지니어링사와 인수합병을 통한 민영화 하는 것이다. 전자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채용하지 않은 철밥통 공무원에게는 불가능한 미션이다. 이제껏 비슷한 노력을 했지만 되려 엔지니어링사에 피해를 끼쳤거나 실적을 냈다고 해도 티끌에 불과했다. 간혹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무능한 권력자인 공조직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는 모든게 도로아미타불이었다. 결국 후자가 답인데, 이는 정권차원의 결단으로 엔지니어링사업을 진정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키우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PMC는 설계, 자재, 시공 등에 미치는 파급력이 막대해 만약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공기업을 민영화해 세계 PMC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면 엔지니어링이 전자, 조선, 자동차에 비견될 수 있는 산업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익율 1% 사양산업 엔지니어링, 부패 몰아내고 규제 철폐해야

사실 한국의 엔지니어링산업에서 저임금, 저이익 구조가 지속되는 것은 낮은 엔지니어링대가가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뜨는 산업인 K-POP의 영업이익률은 40%를 상회하는데, 엔지니어링사는 1~2% 수준이다. 사실상 사양산업이라는 말이다. 직장커뮤니티 블라인드를 살펴보면 IT, 대기업 등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기업은 높은 연봉과 임금에 필적하는 성과급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엔지니어링사는 층층시하 마다 연배들이 포진해 있고 갑자기 날아온 전관들은 엔지니어링 능력도 없이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엔지니어를 처벌대상과 벌점부과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도 큰 문제다. 글로벌시장에서는 엔지니어를 우리사회의 안녕과 발전을 가져오고 해외 최전선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창조지식전문가로 바라보고 있다. 

결론은 엔지니어링대가를 높여서 임금이던 이익이던 챙겨야 산업이 다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 현재 공사비요율로 획일화된 대가산정방식을 글로벌에서 통용되는 실비정액가산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기업의 실질임금을 반영한 직접인건비, 공내역 또는 순수내역입찰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또 기획재정부에 총사업비관리지침과 다수의 발주처에 의해 잘못 산정된 사업비도 정상화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추가업무와 가시설설계 등 발주처의 부당한 요구를 단칼에 잘라낼 수 있어야 한다. 

사실상 결과적 평등을 가져오는 운찰제, 그리고 결론은 로비로 끝나버리는 종합심사낙찰제 등 한국형 입낙찰제도는 조속하게 글로벌스탠다드로 대전환해야 한다. 특히 발주처 먹여 살리는 QBS의 허상을 타파해야 한다. 즉 글로벌 시장에서 하듯이 실적과 가격이라는 계량화된 지표만 평가하는 QCBS를 국내 입찰시장에 도입해 각종 악습을 타파하고 해외진출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엔지니어링산업이 지식기반 창조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 스스로가 확고한 설계철학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평가절하 되고 있는 타당성사업만 봐도 그렇다. 글로벌에서 타당성조사에 20억원의 사업비를 책정한다면 한국공식은 2억원이고 실제는 2,000~3,000만원을 받고 있다. 엔지니어링 업무에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타당성조사는 앞단의 영역으로 가장 중요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발주자는 타당성조사를 위해 글로벌 수준에 맞는 대가를 지급하고 충분한 시간에 걸쳐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해야 한다. 타당성이 없으면 매몰비용이 발생해도 사업을 중단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잘못된 타당성검토는 잘못된 설계를 낳고 결국 막대한 금액이 들어가는 시공과 유지관리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다. 최근 논란이 된 서울~양평간 고속도로만 해도 제대로된 타당성조사와 확고한 설계철학 그리고 엔지니어의 권위가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한국ODA사업에도 타당성조사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한다. 기분에 따라 실시설계나 시공에 뭉텅이 원조자금을 지불하는게 한국형ODA의 특징이다. 같은 자금으로 마스터플랜, 타당성조사 등 앞단의 Technical Assistance(TA)에 투자를 해야 향후 연계 발생될 실시설계와 시공에서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부터 마스터플랜과 타당성조사 자체를 경원시하다보니 TA의 ODA활성화는 요원한 일이 되고 있다. 또한 글로벌스탠다드라는 관점에서 설계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 야만스러운 문화는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이밖에도 설계독립검토-IDC의 도입, 시공단계에서 설계업무 인정 그리고 해외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해충돌방지와 설계내용의 연속성 준수 등 조달절차의 개선이 시급하다.

▲한국적 해석 배제한 온전한 글로벌스탠다드 전환 필수

8편에서 다뤘던 것처럼 한국 건설산업의 이중성인 한국형 글로벌스탠다드에 대해 매스를 가해 온전한 글로벌스탠다드로 전환해야 한다. 우선 해외 디자인빌드에는 없는 개념인 심사위원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2000년도 초반 본격화된 턴키는 초기에는 설계기술력에 의해 낙찰여부가 결정됐지만 이내 심사위원의 로비가 핵심이 됐다. 턴키는 한국의 부패지수를 높이는 망국병이 됐고 건설산업의 이미지를 시궁창으로 만들었다. 역설적으로 글로벌스탠다드와 같이 QBS 심사위원제인 턴키를 가격요소인 QCBS로 전환해야 엔지니어링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가격보다 로비가 엔지니어링의 가치를 더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식민지시대의 폐단으로 지목된 일본식 설계코드를 글로벌시장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설계기준으로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한국의 설계기준은 기술적인 부분보다 각 규정들이 구속력과 처벌위주로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성능기반의 창조지식형 설계로 이미 전환돼 있으니 하루빨리 설계기준을 글로벌로 바꾸고 성과품도 영어로 작성돼야 할 것이다. 

▲산업부는 성공하고 국토부는 왜 표류하나

대한민국은 개발시대에 풍부한 일거리, 관주도의 사업추진으로 GDP 10위의 선진국에 도달했다. 건설인프라가 사실상 완성이 된 상황에서 엔지니어링산업의 미래는 역시 글로벌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이전 시대는 농업과 제조업이 9대 1이었다면 산업화시대는 비율이 역전돼 농업·제조업의 비율은 1대 9가 됐다. 문제는 한국의 엔지니어링산업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제조업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서비스산업 즉 지식기반이 90%, 제조업이 10%다. 미국의 엔지니어링은 PMC와 FEED, 민자사업으로 진화해 산업화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한단계 진화한 지식기반시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엔지니어링의 나아갈 길은 자명하다. 산업화의 수렁에 빠진 엔지니어링을 지식기반으로 끌어올리고 나아가 4차산업혁명, 즉 창조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그 전에 위에서 열거한 대한민국 엔지니어링의 폐단을 혁명적으로 타파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분야는 많다. 반도체, 전자, 자동차, 플랜트, 원전, 조선, 석유화학이 바로 그것이다. 굳이 정부부처를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세계 선도산업은 사실상 산업통상자원부가 관장을 하고 있다. 통상 국토부가 업계를 대하는 방식이 규제라면 산업부는 진흥에 맞춰져 있다. 엔지니어링산업은 과학기술부에서 산업통상자원부로 주무부처를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법령, 시행규칙만으로 업계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국토부고, 또 대다수의 발주처가 국토부에 포진하는 점도 인지부조화다. 국토부가 건설기술관리법을 건설기술진흥법으로 개정하며 제시한 3대 비전이 10년이 지난 현시점에도 왜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지 글로벌스탠다드 관점에서 분석하고 조망해 보았다. 글로벌스탠다드는 글로벌시장에서 강자가 실천하고 있기에 강자와 경쟁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법과 제도, 기준이다. 그 출발점은 정부가 일을 시키는 방식과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이 글로벌 눈높이에 맞는 법과 제도로 정상화되어 힘찬 도약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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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 2023-12-08 09:32:49
기사에서 열거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엔지니어들이 일치단결해 협단체와 공무원을 압박해야 합니다.

삼안맨 2023-12-07 09:39:29
연재를 죽 읽다가 집대성한 이번편을 보니 흩어져 있는 우리 업계의 폐단이 일렬종대로 머리속에 정리가 되네요. 고맙습니다.

예수 2023-12-06 18:41:37
아멘

감탄 2023-12-06 13:26:43
시리즈를 읽을때마다 감탄하고 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다 바꿔 2023-12-06 12:54:44
건설엔지니어링이 살 수 있는 길은 소관부처를 국토부에서 산업부로 바꾸는 것이다. 지식기반의 창조산업과 고부가가치 글로벌산업의 소관부처는 산업부가 정답이다. 자, 연판장을 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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