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연재⑩]설계철학 부재, 원전산업과 조선업이 최강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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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연재⑩]설계철학 부재, 원전산업과 조선업이 최강인 이유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3.11.29 11:08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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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조선업, 시작부터 글로벌스탠다드 시동
건설업,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끼어
경쟁력 낮은 건설엔지니어링, 한국형 초일류 엔지니어링사 등장해야

수주산업은 수요자의 주문에 의해 목적물을 생산하는 업종이다. 대표적으로 건설, 원전, 조선, 플랜트가 있다. 이들 중 한국원전은 안전성과 경제성 그리고 기술력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조선업은 고부가가치 차별화 전략으로 세계 1위를 십수년째 고수하고 있고 플랜트 또한 중동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지역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반면 건설업은 중국, 인도, 터키 등 후발신흥국에게 가격경쟁력을 상실했고 고부가가치 영역인 PPP와 PMC는 유럽과 미국의 독점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설업은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끼어있는 넛크레커-Nut Cracker 상태로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특히 엔지니어링산업은 건설산업 중에서도 해외경쟁력이 낮은 편에 속한다. 원전, 플랜트, 조선산업이 어떻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반영해 엔지니어링산업의 경쟁력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원전, 플랜트, 조선 세계 최강…건설엔지니어링만 지지부진

원전산업은 1978년 고리1호기의 상업운전을 시작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 미국에서 경수로를, 캐나다에서 중수로를 도입해 고리, 영광, 울진원전을 건설했다. 한국전력기술은 미국의 Westing House와 함께 원전설계를 수행하며 기술력을 키웠다. 당연히 설계코드는 미국설계기준을 적용했다. 또 모든 서류와 성과품을 영어로 작성했다. 이 당시 핵심기술은 핵증기공급계통 설계기술인데 한국전력기술은 이를 전수받아 원자력기술 국산화를 이뤘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미자립 핵심기술중의 하나인 원전설계 코드가 완성되며 한국전력기술은 비로소 원전설계기술의 자립을 이뤄냈다. 한국은 원전의 설계부터 기기공급, 건설, 시운전 및 운영까지 원자력산업의 모든 부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셈이다. 이를 통해 1400MW급 출력의 1400 Advanced Power Reactor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신고리 3·4호기와 UAE원전 건설에 적용했다. 현재 원전산업은 한국, 프랑스, 미국이 세계 최강이다.

2003년 한국의 조선산업은 세계 조선시장에서 과거 45년간 1위를 지켜온 일본을 수주량, 건조량, 수주잔량에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2009~2010년 중국에 잠시 1위를 내줬지만, 2011년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해 2023년 현재까지 세계 최강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의 조선산업이 세계 1위가 된 배경은 세계조선산업 1차 침체기인 1980~1990년 동안에 생산성 향상을 위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전문인력을 집중 육성시켰기 때문이었다. 특히 생산시설을 확대하는 결단을 내리는 등 역량강화를 철저히 했다. 이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2차 위기가 찾아왔을 때는 고부가가치 선박과 해양플랜트의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세계1위를 굳건히 지켰다.

한국의 플랜트산업은 1990년대 초 동남아 플랜트EPC 시장에 진출한 뒤 2001년 100억달러를 넘는 실적을 기록했다. 또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산유국의 발주가 늘자 2007년까지 매년 40%의 성장률을 보이며 급속히 커졌다. 플랜트산업의 성장은 유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면 매년 7%의 높은 성장이 기대된다. 2023년 기준 플랜트시장 규모는 2조3,000억달러다. 한국의 주요 시장은 중동의 석유화학 플랜트와 동남아의 발전 플랜트로 해외건설 수주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이 가운데 담수화 플랜트와 가스처리, 발전소 플랜트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원전, 조선, 플랜트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이유는 토목·건축과 다르게 설계나 시공에서 법·제도를 통한 규제가 거의 없었고 처음부터 글로벌스탠다드로 시작해 지금까지 유지했기 때문이다. 즉 해외와 동일한 발주프로세스인 설계-조달-시공의 EPC방식 적용과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설계기준을 채택했다. 또 모든 서류와 성과품에 영어를 공용화해 해외나 국내나 동일한 성과품을 제출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 엔지니어링산업은 건설산업의 부문별 국제경쟁력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분야로 평가 받고 있다. 2022년 기준 해외 수주실적은 산업설비 42%, 건축 28%, 토목 19%이고 건설엔지니어링은 6%에 불과했다. 특히 올해 1~3분기 실적은 2022년 동기대비 22% 급락했다. 물론 20년 전 점유율 1~2%와 비교하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 또한 고부가가치 영역 의 시장개척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닌 국내용 ODA사업의 확대 덕이 컸다.

▲글로벌 초일류 엔지니어링사와 강소사 동반 성장해야

엔지니어링산업이 해외에서 경쟁력이 취약한 이유는 국내 발주자에 의한 국내 법·제도하에서 사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또 과도한 업역 보호는 엔지니어링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었고 그 결과 글로벌시장에 노출될 기회도 줄어들었다. 특히 한국만의 갈라파고스형 설계기준과 턴키, 설계종심제, 운찰제와 같은 독특한 발주프로세스, 해외와 다르게 엔지니어가 영업을 해야 하는 특이한 제도, 그리고 영어 미사용이 맞물려 해외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엔지니어링산업이 글로벌시장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플랜트와 조선업, 원전산업을 벤치마킹해야 하는 셈이다.

개발도상국이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선진국이라면 정부보다는 기업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결국 초일류 글로벌 기업이 이끌어간다고 할 수 있다. ENR 매출액을 기준으로 매년 선정하고 있는 세계 225대 건설엔지니어링업체를 국가별로 살펴보자. 2023년 상위 10위권은 미국,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호주 기업이 포진해 있다. 특히 미국은 상위 225대 업체 중 81개사로 시장점유율은 23.4%, 2위인 캐나다는 4개사 19.6%, 3위 영국 4개사 8.5%, 4위 네덜란드 5개사 8.2%인 반면에 한국은 삼성엔지니어링과 도화를 포함한 11개사로 0.9%에 불과하다.

여기서 특이할 만한 점은 캐나다와 영국, 네덜란드는 225대 건설엔지니어링 업체에 포함된 기업 수가 4~5개사로 한국보다 훨씬 적은데도 놀라운 매출액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캐나다는 4개 업체가 세계시장의 19.6%를 점유해 미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캐나다는 세계 1위의 WSP와 6위의 SNC-LAVALIN, 7위의 STANTEC, 19위의 HATCH와 같은 극소수의 초일류 글로벌 건설엔지니어링기업들이 해외엔지니어링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각각 그 나라를 대표할 만한 초일류 글로벌 건설엔지니어링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 초일류 글로벌 건설엔지니어링기업들도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력 확보와 함께 기업규모를 더 크게 키워나가고 있다. 현재 한국의 대표 건설엔지니어링사인 도화의 2022년 해외 매출액은 올해 세계 69위로 평가받았지만 세계 1위인 WSP 해외매출액 67.6억달러의 1.8%(1.22억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초일류 글로벌 엔지니어링기업과 비교해 볼 때 아직 한국 엔지니어링기업의 매출규모는 어린아이 수준이다.

선진국의 일반적인 건설엔지니어링 산업구조는 극소수의 초대형, 초일류 글로벌 건설엔지니어링기업과 절대다수의 전문화로 특화된 중소 건설엔지니어링사로 나뉘어 존재한다. 한국도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의 혁신을 위해서 글로벌스탠다드를 도입해 초대형 초일류 건설엔지니어링기업의 탄생을 위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글로벌시장에서 통용되고 있는 분담이행방식 등을 통해 중소건설엔지니어링사의 전문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코리안스탠다드는 정부주도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건설엔지니어링업체의 보호와 육성이 필요했던 시대의 산물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GDP 10위 경제대국이다. 따라서 선진국에 맞는 민간주도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이 불가피하다. 또한 국내 건설시장이 성숙단계에 들어서면서 한국 건설엔지니어링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해외 건설엔지니어링시장 개척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의 건설제도를 글로벌스탠다드로 전환하는 일은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결정적으로 높일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전략이다. 특히 선진국에 걸맞는 설계철학의 재정립, 해외와 동일한 입낙찰제도 및 발주 프로세스의 적용, 글로벌 설계기준 채택과 모든 성과품에 영어 공용화 적용은 해외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장 시급히 추진해야 할 방안과 대책들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선진국과 글로벌시장에서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글로벌스탠다드 도입을 통해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이 원전과 조선, 플랜트산업과 같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건설산업의 미래를 논할 수 있고 또한 건설산업의 재도약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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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3 2023-11-30 15:55:17
건설은 자격증 만능주의 때문에 아무것도 안돼, 플랜트 조선에서 자격증 보는거 봤나

원호연 2023-11-29 22:43:39
남자 역시 글로벌이지

탈조선 2023-11-29 16:38:18
선배님들 먼저 탈조선하겠습니다.

갈라파고스적 엔지니어링 2023-11-29 14:57:27
우리나라 토목엔지니어링 전문회사중 도화를 포함한 Big6 회사들이 국내 1억이하의 일반경쟁 시장에서 수주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오너든 월급쟁이 사장이든
아무리 수주전쟁이라도 엔지니어링 생태계를 파괴하면서까지, 제 살 깍아먹지는 말았으면 한다.

고고 2023-11-29 13:31:30
왜 우리는 조선처럼 못하나 준나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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