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연재⑨]글로벌과 일치하지 않는 대한민국 설계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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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연재⑨]글로벌과 일치하지 않는 대한민국 설계기준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3.11.20 13:39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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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미국+유럽 혼재된 갈라파고스형 한국설계기준
법적 구속력 높아 매뉴얼엔지니어로 전락해
해외시장 진출위해 코리안스탠다드 설계기준 변혁해야

대한민국의 설계기준은 글로벌스탠다드가 아닌 각국의 설계기준을 섞어 나름대로 재해석한 코리안스탠다드라고 할 수 있다. 한국형 기준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볼 수 없고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역시 글로벌 기준과 안맞아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주제인 ‘글로벌과 일치하지 않는 대한민국 설계기준’편에서는 도로, 철도, 항만, 하천, 교량, 터널 등 6개 분야의 설계기준을 놓고 국내와 글로벌로 비교해 봤다. 이번 기획은 특히 분야별 현역, 원로엔지니어의 견해와 조언을 근거로 작성했다.

▲일본설계기준에 미국, 유럽기준 섞인 한국기준 
우선 철도분야는 대한제국시기에 일본이 경인선을 필두로 일제강점기에는 경부선, 경의선, 경원선, 호남선 등 다수의 철도를 부설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철도설계기준이 그대로 한국철도설계기준의 근간이 됐다. 해방 이후 미국과 유럽 등 다양한 선진국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또 국내 실정에 맞춰 수정된 것이 지금의 철도설계기준인 것이다. 

반면 글로벌에서는 유럽철도표준과 세계철도연맹기준-UIC, 미국철도기준-AREMA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당연히 국내 기준과 다르다. 비근한 예로 철도교량은 올해부터 글로벌 기준을 받아들여 한계상태설계법을 적용하고 있지만 철도터널이나 암거구조물은 아직도 기존 강도설계법을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한계상태설계법이 올해 도입되다보니 설계 실무자들의 명확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아 보편적 적용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도로 역시 일본의 설계기준을 차용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국내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현실에 맞도록 지속적으로 개정·보완돼 발전해 오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에서는 미국의 AASHTO와 FHWA-연방도로청 기준을 대다수가 채택하고 있어 국내와 글로벌 기준이 일치한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 도로교 설계기준은 재료별로 해외설계기준을 다르게 적용해 왔다. 콘크리트교는 초기 ACI-code에서 현재는 EURO-code로, 강교는 일본강교설계기준에서 미국의 AASHTO 기준으로 변경해 적용하고 있다. 도로교는 글로벌시장에서 통용되는 미국과 유럽 기준을 적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도로교 설계기준내 설계철학이 다른 한계상태설계법과 하중저항계수설계법이 혼재돼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항만분야는 1999년 일본설계기준을 인용한 ‘항만및어항설계기준’을 사용하다가 2005년 국내 연구성과를 반영해 새롭게 설계기준을 개정했다. 이후 현실에 맞게 지속적으로 보완해 발전시키고 있지만 역시 유럽과 중동, 동남아 시장에서는 대부분 발주처가 미국과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하천과 터널도 일본설계기준이 근간이고 이후 국내 실정에 맞춰 보완해 오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하천설계기준은 미국육군공병단, 터널은 EURO-code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결국 도로, 철도, 항만, 하천, 교량, 터널 등 대부분의 분야가 여전히 국내와 해외설계기준이 이원화 돼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유연성 떨어지고 법적 구속력이 주류, 매뉴얼엔지니어링 한계
국내 설계기준이 해외와 맞지 않은 근본원인은 역시 일제강점기로부터 한국의 SOC산업이 태동한데 기인한다. 해방 이후에도 설계기준은 일본식 고등교육을 받은 교수와 엔지니어가 만들었기 때문에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망령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한 학자들에 의해 기준이 바뀌었고 자체연구를 통해 보완을 거듭하며 한국형 설계기준을 마련했다. 하지만 한국설계기준은 일본+미국+유럽이 혼재된 것으로 여전히 글로벌 기준과 거리가 있다. 

이러한 한국설계기준은 곧 해외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아무리 국내실정에 맞춰 발전시켰다지만 글로벌 기준과 동떨어진 것은 동떨어진 것이다. 한국의 플랜트, 원자력, 조선업이 세계 최강인 이유는 글로벌스탠다드의 설계기준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준이 그 자체로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세계시장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는 기준과 다르다는 것이다. 산업화가 마무리된 한국은 결국 해외시장이 미래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글로벌 설계기준에 우리를 맞춰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은 국가건설기준센터까지 설립하며 글로벌 기준에 맞추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일본설계기준을 근간으로 하여 미국과 유럽이 섞인 형태에 지나지 않고 있다.  

국내 설계기준의 최대 문제점은 세부형상과 치수까지 구속하는 일본기준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점이다. 즉 국내 기준이 성능기반의 가이드가 아니라 무조건 준수해야하는 법적규정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설계기준은 국내 연구 성과와 선진국 기준을 수용하며 많이 개선됐지만 유독 구속력 있는 법적 효력만은 변화되지 않았다. 글로벌 설계기준의 큰 특징은 방향성을 제시하는 성능중심의 가이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엔지니어들은 구속성이 강한 기준으로 인해 매뉴얼엔지니어로 전락하고 있다. 엔지니어링산업은 창의력이 가장 중요한데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하천설계기준에 의하면 하천을 횡단하는 교량의 경간장은 계획홍수량의 범위에 따라 결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또 반드시 이 규정을 준수해야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하천설계기준에는 계획홍수량에 따른 경간장 기준이 없다. 다만 교각설치에 따른 상하류의 통수능과 수위상승 시 제방의 여유고를 만족한다면 경간장 구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일본하천설계 기준과 동일하다. 미국의 가이드처럼 엔지니어는 본인 스스로의 분석과 근거에 의해 판단할 수 있는 창조적 활동이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는 규정에 얽매여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설계철학 정립과 발주자 유연화 필요해
 설계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준의 제정 이유와 변천된 근거, 그리고 개정사유다. 국내 설계기준은 기준 변천의 이력 관리가 전혀 되고 있지 않다. 왜 규정이 바뀌었는지, 외국 규정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그 규정의 실험 결과들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근거와 참고문헌이 거의 없다. 특히 외국의 규정을 인용했으면 그 인용사유와 근거가 해설이나 부록에 포함돼야 하는데도 대부분 생략돼 있어 설계자들의 불만과 지적을 받고 있다. 

기준과 관련된 부실은 단연 국가건설기준센터에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기준을 취합 ·정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설계철학의 정립이 선행돼야 한다. 글로벌건설기준 구축이 센터본연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글로벌 기준에 맞는 철학을 제시하고 이를 계층구조화해 도로, 철도, 항만, 구조, 상하수도 등 각 분야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글로벌 기준이라는 일관성을 획득해 체계적으로 전파하는 것이 핵심이다. 

설계기준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발주자의 변화도 필요하다. 국내 발주자는 해외 발주자와 달리 사업별로 특별한 설계방법이나 요구조건이 없다. 단지 국내 설계기준의 규정과 해당 발주처가 가지고 있는 설계규칙에 위배되지 않는 설계만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글로벌 시장에서는 발주자가 각 사업의 특성에 맞게 설계기준을 상향 또는 하향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설계자는 발주자와 협의해 발주자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키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설계를 할 수 있도록 설계기준을 제시하고 승인하는 과정이 따른다. 

한 예로 해외에서 구조물의 내진설계를 수행할 경우 발주자가 지진에 대한 우려가 심하다고 판단해 기존의 설계기준보다 상향된 설계를 원할 때가 있다. 이때 설계자는 발주자의 의견에 맞게 지진강도를 상향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발주처의 승인을 받아 설계를 진행한다. 성능기반 설계인 경우에는 각 한계상태별로 발주자가 원하는 성능기준이 존재하게 된다. 만약 강진이 발생할 경우를 상정할 때 발주자A는 구조물 붕괴가 안 나는 정도의 수준, 발주자B는 구조물 손상을 최소화하는 수준 등 각기 다른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글로벌스탠다드는 발주자의 요구조건에 따라 설계를 다르게 진행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설계가 동일한 설계기준을 갖지 않고 프로젝트별로 달리 수립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국내는 설계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함을 넘어 법적 구속력까지 가지고 있어 발주자나 설계자나 권한과 책임이 축소돼 있는 상황이다. 달리 말해 한국에서 발주자와 설계자가 글로벌 시스템대로 하다보면 설계기준 변경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설계기준은 글로벌스탠다드와 거리가 먼 기형적인 형태로 발전해 왔다. 우리가 모방했던 일본의 설계기준은 이미 글로벌설계기준과 선진국형의 성능기반 설계기준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우리만 갈라파고스형 설계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설계기준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글로벌에서 통용되는 설계기준을 정립하고 실제 국내사업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통제나 규제보다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설계기준도 재정립해야 한다. 코리안스탠다드로 국내의 산업화를 이룬 것은 인정하지만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결국 글로벌스탠다드 설계기준으로 전환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설계기준의 수용을 주창하면서도 한국적 현실과 문화의 반영을 당연시하고, 한국적 현실과 문화를 투영하여 글로벌 설계기준을 왜곡시키는 한국형 설계기준을 지향해서는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한국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의 혁신과 선진화는 한국형 설계기준을 온전한 글로벌스탠다드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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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 2023-11-22 10:29:44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해보면 외국은 윗글에서 제시된것처럼 AASHTO 나 EURO code를 기반으로 그대로 사용하거나 적용하는 국가에 맞도록 해외의 한가지 설계기준을 약간 보완하여 사용하기에 구조물의 두께나 높이가 우리나라보다 많이 심플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여러나라의 설계기준을 참조하였기에 제일 안전한 구조물을 설계 할 수 있지만 한개의 설계기준을 사용하는 것 보다 구조물 공사비 상승 및 미관적인 면에서도 안좋게 되죠

불의를보면꾹참어 2023-11-21 09:59:07
엔지니어링 정책 연구원 뺨치는 수준의 능력자!

크리에이티브 2023-11-20 20:16:29
정기자님,훌륭하십니다.
건설엔지니어링제도혁신위원으로
강력 추천합니다!!!

진우엔 2023-11-20 19:49:15
연재한거 책으로 만들어 팔아라. 교화용으로

엔진 2023-11-20 17:13:12
항상 우리나라 설계기준을 보다보면 해외꺼도 같이봐야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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