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연재⑧]글로벌에서 통용되지 않는 한국형 디자인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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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연재⑧]글로벌에서 통용되지 않는 한국형 디자인빌드
  • 정장희 기자
  • 승인 2023.11.08 09:38
  •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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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디자인빌드, 정성적 요소 비집고 들어갈 틈 없어
부패의 성을 쌓아 완성된 한국형 턴키, 모두가 공범
기술보다 영업, 엔지니어링 분야별 지분율도 불합리

한국에서 디자인빌드를 인지하게 된 것은 오일쇼크로 중동 산유국의 건설시장이 호황을 맞기 시작한 1970년 초반이다. 당시 실시설계일괄입찰이라는 국제적인 계약방식을 처음 접한 정부는 해외경쟁력 제고를 위해 1975년 ‘대형공사 계약에 관한 예산 회계법 시행령 특례규정’을 제정하며 디자인빌드를 도입했다. 1977년 국내 최초로 디자인빌드가 발주되고, 1996년에는 턴키제도 활성화방안이 만들어지면서 급속히 확대됐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설계평가의 공정성과 심의위원의 전문성 그리고 로비에 취약성을 보이면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적어도 턴키 초기인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엔지니어링사의 기술력이 당락을 좌우했다면,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는 건설사의 로비력이 당선의 성패를 갈랐다. 한국형 턴키는 당초 해외 경쟁력을 키운다고 도입한 디자인빌드에 심사위원제도를 끼워 넣으면서 변질됐다. 즉 국가의 부패지수를 높이고, 엔지니어링사를 건설사의 하청업체로 전락시킨 것이다. 

▶글로벌 디자인빌드 기술-가격-공정 동시에 잡아
한국형 디자인빌드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 역시 글로벌스탠다드와 맞지 않다는데 첫 번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디자인빌드는 미국에서 개발돼 중동을 통해 글로벌시장에서 통용되고 있는 계약방식이다. 발주자 입장에서 사업의 규모가 크고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 리스크가 예상된다면 시공자에게 권한과 리스크를 함께 넘기는 디자인빌드로 발주한다. 글로벌시장에서 디자인빌드 발주 체계는 1단계에서 PQ평가로 Short-list가 만들어지고, 통과자에게 입찰안내서-RFP가 발부된다. 이후 Short-list 통과 컨소시엄은 기술제안서-TP와 가격제안서-FP를 동시에 제출한다. 여기까지 디자인빌드의 외형적인 절차는 국내와 비슷하다. 이후부터가 다른데, 해외에서는 제출받은 TP를 개봉한 뒤 발주자와 PMC가 사전에 시공사와 개별미팅을 하고 제안서를 심도있게 평가한다. 

TP평가에서 몇 개 컨소시엄이 통과자가 된다면 FP를 개봉해 최저가격-Lowest Cost를 제시한 회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다. 우선협상자는 RFP와 계약문서를 놓고 발주자와 협상을 한 뒤, 계약을 체결한다. 통상 엔지니어링사가 맡는 PMC는 탁월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 발주처와 동등한 입장에서 평가절차에 개입한다. 주요업무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된 상황에서 TP를 상세하게 평가하고 평가보고서를 작성해 발주처를 보좌하는 것이다. 단 PMC는 TP의 통과-Pass 또는 탈락-Fail만을 결정할 뿐 최종수주는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글로벌 시장의 디자인빌드 낙찰자 방식은 결국 설계자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대안제시로 공사비를 얼마나 절감했느냐가 핵심일 수밖에 없다. 한국시공사들이 해외EPC나 디자인빌드에서 한국설계자를 배제하는 이유로 “한국의 설계자는 한국형 턴키에 익숙해서 고급설계는 잘 하지만 공사비 절감을 위한 창의적인 대안 제시는 못하기 때문”을 꼽고 있다. 만약 시공사가 합리적 근거 없이 최저가로 수주했다면 시공과정에서 PMC가 RFP상의 요구조건에 의해 철저하게 품질관리를 요구할 것이다. 결국 저가수주한 시공사는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시장 디자인빌드에서는 품질요구조건을 만족하는 합리적인 공사비를 제시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반면 한국형 디자인빌드는 TP와 FP를 동시에 제출하지만 FP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 한때는 가격점수가 기술점수를 뒤집는 사례도 있었지만, QBS라는 명분을 들어 TP에서 단 0.1점이 차이나도 7~10점을 벌려놓는 강제차등점수를 도입해 FP에 의한 낙찰자 결정을 원천 차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오직 심의위원의 판단에 따라 낙찰자를 가리게 됐다. 극단적인 로비전이 횡횡했고 엔지니어링사에 의한 기술적 변별은 무용지물이 됐다. 

▶부패가 부패를 증식, 한국형 턴키
일단 턴키가 발주되면 심사위원 명단을 온갖 인맥을 통해 획득하려 든다. 만약 심사위원이 특정이 되면 막대한 현금을 제시하며 자신에게 높은 점수를 줄 것을 부탁한다. 사실 심사위원이 특정되지 않아도 평소에 심사위원풀을 관리하기 때문에 이심전심으로 심사위원이 높은 점수 를 주면 성공불 형식으로 후지급하면 그만이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반드시 지방대생을 채용하는데 해당학교 교수나 출신을 로비하기 위함이다. 사장부터 사원까지 모든 건설사 직원은 모두 로비스트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또 로비에 사용되는 현금은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공식적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전문건설사 등 하도급사에게 전가해 음성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했고, 하고 있다. 이는 민자사업도 마찬가지고, 엔지니어링분야에서는 종합심사낙찰제가 턴키의 잘못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심사위원에 의한 정성적 평가의 폐단에 주목해왔다. 때문에 전문성 있는 컨설턴트인 PMC에게 심사위원 역할을 맡기고 최종낙찰은 TP를 통과한 자 가운데 가격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낮은 가격은 곧 기술이고 발주자의 예산을 아끼는 것은 자본주의의 최대 미덕이라고 글로벌 시장은 인식한다. 그렇다면 “PMC에게 영업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물을 수 있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컨설턴트는 자신을 직업적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기사-Knight로 인식하고 있는데다 그런 불명예를 갖는 순간 엔지니어로는 생명력이 끝나기 때문에 PMC에게 영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술력과 가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글로벌 디자인빌드가 있음에도 왜 한국은 부패를 가중시키는 턴키 심의위원을 수십년째 고집할까. 당연히 글로벌 시스템이 공정하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 오랜 시간 공정에서 멀리 떨어져서 로비에 의한 낙찰자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즉 부패가 편하다는 것이다. 또 턴키 심의위원제는 공무원, 교수, 연구원들에게 비단 현금뿐만 아니라 전관, 연구지원, 채용 등 방대한 이익과 권위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정책담당자 입장에서 굳이 자신이 손해를 입고 영향력이 떨어지는 글로벌 기준을 가져올리 만무하다. “솔직히 국가세금을 아끼고 완벽한 시설물을 완공하고 공정한 제도를 정착시키는게 나-정책담당자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겠나.”

▶이상한 턴키 평가배점 배분-분야별 권력지도
한국에서 일단 턴키로 발주하려면 복합고난이도 공종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상징성과 예술성, 창의성이 요구되는 즉, 장경간 특수교량, 3,000m이상 터널, 하저터널과 해저터널, 철도차량기지, 공항 Air Side, 항만 계류시설 등이다. 만약 경간장 100m이상의 해상교량이 턴키로 발주됐다고 해보자. 해상교량의 공사비가 90%고 도로공사비가 10%라면 해외에서는 수주의 당락을 결정하는 교량설계사에게 설계를 맡기고 도로설계는 자체적으로 처리하거나 교량설계사에게 맡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통상 주 턴키공종과 관련이 없는 도로나 철도가 주관을 하면서 설계비의 50% 이상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구조, 토질, 시공 등이 15~20% 씩 지분을 나눈다. 교량설계 때문에 턴키로 발주됐지만 정작 업무의 주인공은 도로와 철도가 되는 셈이다. 

도로나 철도등 주관부서는 입찰단계에서 대관업무나 조사업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사업을 수주해 실시설계 단계로 들어서면 지분은 전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주관부서는 할 일이 없어지고, 구조, 지반 등이 대부분의 설계를 수행해야 한다. 결국 주관은 적은 노력으로 큰 이익을 가져가고 구조, 지반은 높은 업무량으로 오히려 적자가 발생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벌어가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구조, 지반 엔지니어들의 영업능력이 PM부서인 도로, 철도에 상대적으로 미치지 못해 발생하는 셈이다. 즉 한국은 영업으로 시작해 영업으로 끝나는 구조다보니, 전통적으로 영업능력이 높은 세력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로 변질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특수분야 기술력은 쇠퇴하고 엔지니어링 가치는 소멸되는 것이다. 결국 한국형 턴키는 로비고 영업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해결책은 도로, 철도 업무는 턴키 대상 주공종이 아니므로 턴키설계나 평가대상에서 제외시키면 된다.   

▶고비용구조 한국형 턴키, 모든 것은 이미 결정돼 
글로벌 디자인빌드는 발주자가 권한과 리스크를 함께 시공자에 넘기는 계약방식이다보니 입찰에 참여한 시공사에게 비교적 유연한 자세를 가진다. 즉 발주자는 시공사의 요청이 있거나 발주자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Addendum-추가사항을 수시로 발부한다. 모든 시공사에 돌리는 알림, 회람문서다. 또 입찰 도중에 2개 이상의 컨소시엄으로부터 입찰연기 요청을 받으면 대부분 수용한다. 또 기술제안서가 수주에 결정적 역할을 하지 않다보니 성과품도 단순하고, 설계보상비도 없다. 당연히 합동사무소도 차리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발주처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입찰연기는 없다. 또 기술제안서를 공들여 만들어야 해 성과품이 많아진다. 특히 보안을 위해 합동사무소를 차리고, 사전설계비 또한 많이 소요된다. 나름대로 간소화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턴키 참여는 고비용 구조로 글로벌 기준에 맞춰 더욱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건설업계에는 입찰서류가 제출되면 경쟁사들간 또는 발주처의 중재로 상호간의 성과품을 교환하는 이상한 풍습이 있다. 외국인들은 설계사의 저작권이 있는 성과품을 시공사 마음대로 바꾸는 것에 놀라고, 설계사의 반발이 없는 것에 기겁하며, 이를 발주자가 중재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는다. 엔지니어링적 가치가 땅바닥에 버려진 한국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또 하나 어안이 벙벙한 일은 턴키심사위원들은 심사장에 들어올 때 이미 평가순위를 결정하고 들어온다는 점이다. 때문에 심의 당일 날 아무리 질의 답변을 잘했다고 해서 절대로 순위가 바뀌지 않는다. 심사위원들의 이런 행태는 이미 여러 가지 형태의 영업에 매수되지 않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설계자들이 심의 당일 날 의미도 없는 공통질의와 답변을 없애달라고 할까.
 
한국형 턴키는 정확히 2000년 초반 이후 20년간 부패와 부패가 산을 이루며 성장해왔다. 국토부는 시시때때로 턴키 심의제도를 바꿨지만, 글로벌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부분 수정만 가해왔다. 즉 창이 뚫을 만한 방패만 양산한 것이다. 결국 답은 심의위원제도를 없애고 글로벌 디자인빌드를 그대로 도입하면 된다. 결과는 로비도 영업도 필요 없어지고 설계경쟁력이 되살아나 글로벌 시장에 제대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간단한 방법을 정책담당자가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것은, 정책담당자가 왜곡되고 부패한 한국형 턴키제도의 최대 수혜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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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08:02:49
설계사 권익에 대해서는 조용
지들끼리 싸울때는 시끄럽네

성공시대 2023-11-15 11:41:13
턴키 심의 뿐만 아니라 KOICA, 수출입은행, KIND 사업의 평가방식도 바꼈으면 합니다. 최저가에 금액은 모두 정해져있거나 이것 조차 업체들끼리 입을 모으기도 하고, 기술평가는 기사 처럼 평가위원들이 심사전 부터 순위를 정해놓고 있는거 아닌가요? 정책담당자가 뭐 본인들이 결정하겠어요? 이렇게 보면 뜯어 고칠게 한 두가지가 아니죠.

엔지니어 2023-11-12 14:18:54
대부분 내용을 동감하는데 잘못된 내용도 있네요. 턴키사업시 PM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몇몇 회사에서 기자분이 말씀하신데로 구조, 터널분야에서 PM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결국 PM업무를 도로, 철도 업무로 착각하는 구조, 터널 분야 기술자가 많아요. 설계 전반적인 과정을 이끄는 것만 PM 업무라 생각하는데 위치도작성부터 관계기관 협의를 통하여 최적안을 도출하는 업무도 PM이 하는 업무죠. 그런데, 구조, 터널분야가 PM을 맡으면 도로, 철도 기술자가 대관업무와 PM 부속업무를 당연히 해주길 바라죠. 구조, 터널분야가 PM을 하면 도로, 철도 기술자들은 PM이 제시하는 노선계획과 공종 설계만 해주면 됩니다. 당연히 PM 전반적인 업무를 구조, 터널분야에서 수행한다면 맞는 내용입니다.

동명 2023-11-10 23:11:08
똥그만 싸고 그나마 이런 기사 나왔다는데 고마워하고, 글 퍼올라 전파나 해라

다 바꿔 2023-11-10 14:14:13
턴키대상공종에 선형분야가 포함되어 있나요? 그렇다면 턴키대상공종에 30km 이상인 일반도로나 일반철도공사도 턴키대상공종에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3km이상의 장대터널때문에턴키가 발주되었다면 장대터널만 평가하면 되지 왜 선형이 포함되나요? 해외에서 장대터널로 디자인빌드가 나오면 이미 선형은 확정되어 있고, 장대터널에만 국한해서 평가를 하는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하실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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